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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l 09. 2024

토끼섬, 국내 유일의 문주란 자생지

지난겨울, 동쪽 해안길인 종달리 거쳐 세화리 가던 중에 하도리를 지날 즈음이었다.


갈대 서걱대는 철새 도래지와 하도 해수욕장 주변으로 눈길 즐겁게 하는 카페거리가 한참 이어졌다.  


진또배기 오똑 서서  올레 21코스 품은 하도리안  길 안내하는 표지목만 재치 있는 게 아니다,


바닷가 널빤지에 앉아 그루밍 삼매경에 빠져 있는 고양이 조형물 포토존도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보다 더 신기진기하기로는 문주란 자생지인 토끼섬과 썰물 때 드러난다는 원담(갯담)인 멀튼개였다.

흥미 가득한 호기심이 술빵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때부터 기다려 온 칠월이다.

서귀포 시내 여기저기 조경용으로 가꾼 문주란 흰 꽃이 피어난 것을 보았다.


그렇다면 문주란 자생지인 토끼섬을 가 봐야겠군.


 동쪽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하늘 푸르른 날을 골라 동쪽바다 향해 달려갔다.


남원쯤 는데 멀쩡하던 날씨가 흐려지는가 싶더니만 표선에 이르자 해무 뿌옇게 밀려들었다.


비는 안 오니 그만해도 괜찮았다.


일출봉도 안개에 숨어버리고 종달리 지미오름도 발치만 겨우 드러났다.


하도리 해녀마을에서 하차해 토끼섬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따라 걸었다.


안갯속에 고즈넉이 안긴 마을길 벗어나 바닷가로 나갈수록 뭍 쪽으로 빠르게 스며드는 해무 짙어졌다.


차도에서부터 바닷가 양옆을 따라 주단을 깐 듯 무리 지어 만개한 새하얀 문주란 꽃.


야래향 꽃처럼 밤에만 향기를 풀어내는지 코끝 가까이 대어봐도 그냥 풀 내음만 났다.

구좌읍 하도리 굴동포구에 이르자 동남 방향으로 희미하게 토끼섬이 보였다.


바닷가에는 토끼섬을 배경으로 한 졸속 전시행정의 표본 같은 포토존도 설치돼 있었다.


올레길 21코스 따라 환해장성 터, 해녀불턱, 각시당집, 멜튼개 등이 연달아 나타났다.


간략히 소개하자면 멜튼개는 빌레(너럭바위)와 바닷돌을 이용한 갯담(원담)이다.


밀물 때 들어온 멜(멸치) 떼를 바위 담 안에 가두는 돌 그물 장치로, 제주도만의 독특한 천연 어로 유적지다.


환해장성은 왜구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제주섬 빙 둘러 바윗돌로 쌓아놓은 인공적 유적물이다.


해녀불턱은 동절기에 물질하는 해녀들이 불을 피워 몸을 녹이는 장소다.


또한 물질에 대한 기술을 배우거나 정보를 나누는 공간이었다.


물론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바다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곳이었으나 고무옷을 사용하면서부터는 역할이 사라져 버렸다.


굳게 잠긴 각시당집은 바람의 신인 영등할망에게 비는 당집으로 이 신당에서는 매년 음력 2월 13일 영등맞이 굿을 올렸다고.


해녀나 어부들이 바다에 나가 무탈하게 어로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마을의 안녕 위해 액막이굿을 하던 당집이다.


해녀마을 하도리에서 바다로 나가던 기나긴 물길도 차가 드나들 수 있게끔 시멘트로 매끈하게 닦여있었다.


어패류는 싱싱한 선도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므로 어획물의 신속한 운송로는 필요할 터.


그러나 해안을 시멘트로 포장하면서 따르게 되는 환경훼손 문제도 이제는 염두에 두어야 할 때다.


해녀불턱 바로 옆에는 제때 수거하지 않은 성게 껍질 수북하게 싸인 채 썩어가며 파리 떼를 불러들여 눈에 거슬렸다.


하도리 굴동 포구에서 50m쯤 떨어진 토끼섬.


'난들여'라고도 불리는 토끼섬은 하도리에 있는 국내 유일의 문주란 자생지다.


군락 이룬 문주란이 활짝 피어나면 섬 자체가 새하얀 토끼처럼 보인대서 이름 지어진 토끼섬.


칠월 즈음에 섬 전체 휘덮으며 백색 꽃 피어나 향 내뿜는다는, 문주란 자생지는 천연기념물 19호다.


이름에 난(蘭) 자가 붙었지만 문주란은 수선화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로 씨앗이 가벼워 물에 뜬다는데.

본래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문주란인데 해류 타고 흘러온 씨앗이 여기에 뿌리를 내려 왕성하게 퍼진 것으로 추정된다.

문주란은 연평균온도가 15℃ 정도 유지되어야 생장할 수 있으므로 토끼섬이 문주란의 북방한계선에 해당되겠다.


지척거리에 누워있으나 자욱한 해무로 저승이듯 아득한 토끼섬.


멀리서 섬을 바라보니 충분히 걸어서 문주란 군락지 가까이 갈 수 있을 듯 거리 만만하게 보였다.

간조 시에는 걸어 들어갈 수 있으며 만조 시에는 백사장과 동산이 분리된다고 읽은 바 있어 물가로 다가갔다.

해안가 끝자락에는 낚시꾼과 여학생 서넛이 스노클링을 하고 있었다.  


저만치 조를 짜서 손을 잡고 토끼섬으로 향하고 있는 팀이 보였다.


가슴께까지 차는 물살을 헤쳐나가더니 모래사장 가까이 갈수록 점점 얕아지는 수심.


마침내 토끼섬에 상륙한 그들이 뭐라 외치며  모랫벌을 내달렸다.


믿는 구석인 그들을 좌표 삼아 과감히 도전해 보기로 한다.


물때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나 썰물 때처럼 바닥이 계속 드러나기에 양말을 벗고 신발만 신은 채 바닷물에 들어갔다.


험한 갯바위라 건너뛰기엔 위험해 울퉁불퉁 새카만 화산암으로 휘덮힌 물길을 조심스럽게 건넜다.


종아리 정도 차는 수심이지만 몸이 쏠릴 만큼 해류 흐름이 강하게 느껴졌다.


서너 걸음으로 첫 번째 관문은 통과됐다.


두 번째 물길이 나타났다.


이번엔 일곱 걸음만에 겨우 물길을 건넜다.


약간 비칠거려졌다.


정신 수습하고 돌밭을 걸어 나가자 맙소사! 다시 바짝 눈앞에 드러난 물길은 도버해협처럼 한참 넓었다.


가늠해 보고 자시고 할 수준이 아니었다.


냉큼 백기를 들고 무조건 온 길 되짚어 퇴각을 했다.


원위치로 돌아와 가만 생각해 보니 이 나이에 웬 무모한 모험인가, 머리를 서너 번 쥐어박았다.


그 자리에서 그제사 폰을 꺼내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푹신 젖은 트레킹화(구멍 숭숭 난 그나마 여름용이라 다행)를 신은 채 터덜터덜 하도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날씨도 꾸물대고 저녁때라 수영객들은 거의 철수했으나 카약 타는 젊은이들만 노를 저어댔다.


철새 도래지 황새 모형 부지런히 풀잎을 쪼는데 물가 오리 떼는 천천히 갈대숲으로 깃들고 있었다.


하나둘 바야흐로 빗방울 듣기 시작해 갑자기 마음이 급했다.


잰걸음으로 정거장에 도착하자마자 버스가 와 무척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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