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량화 Jul 09. 2024

제주 사찰 중 으뜸인 선덕사

제주에서 가장 가람 다운 가람을 만났다.

고찰 아니어도 격조와 깊이가 있는 사찰이었다.

정갈한 기품을 갖춘 목조건축물 여러 동이 한라산 넉넉한 품에 안겼다.

선덕사가 있는 선돌 지역엔 오래전부터 눈 푸른 납자들의 수행처인 토굴이 곳곳에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백록담에서 발원한 효돈천이 폭우로 물이 불으면 사자후를 토하며 치달려 내리는 바로 그 복판이므로.

평상시엔 건천이라 암석 덩이만 계곡에 누워있으나 한바탕 거센 물줄기 지나고 나면 죄다 일어서는 바윗돌 되리니.

그리하여 한시대를 선도하는 큰 스승 그 터에서 나오리니.

하긴 선돌은 선돌 오름에서 연유하긴 했지만.

 

오일육 도로를 타고 중산간인 상효원 지나 입석동에서 차를 내렸다.

도로 건너편 선돌에 굵직한 글씨로 새겨진 선덕사 푯말이 칠월 무성한 덩굴에 싸여있다.

선덕사는 차도에서 일주문과 관음상 지나 평평한 숲길을 십 분쯤 올라야 모습 드러낸다.

초입에 <한라산 선돌 선덕사>라 쓰인 일주문이 기다리는데 한낮 햇살에 반짝대는 청기와를 이고 단아하게 서있다.

그 앞에 순하게 생긴 아기 코끼리 한 마리, 목조각품 같으나 만져보니 돌이었다.

동백숲길 조금 휘돌자 석등 거느린 관세음 보살상이 마중 나와 섰다.

그러나 인근에 절 자취는 전혀 안 보인다.

숲속으로 열린 길이 제법 너르다.

빨려 들듯 그 길을 따라 걷는다.

칠월 숲은 건강한 푸르름으로 윤기롭고 온 데서 새소리 청량히 들린다.

오른쪽으로 바위만 드러난 건천이 동행을 한다.

꽤 나이 든 고목이 계곡가에 뿌리 드러낸 채 기우뚱 쓰러질듯하다.



선돌교라 쓰인 이끼 낀 다리가 나타난다.

다리 건너 주차장이 둘씩이나 기다리고 휑뎅그렁 넓은 빈터 지나니 아직 자리 잡지 못한 불상 석등 석탑 부도 등이 엉거주춤 서있다.

현판이 걸리지 않은 문 하나 통과하자 한라산 백록담이 창천 아래 큼다막하게 드러난다.

개 짖는 소리가 왕왕 들린다.

저만치 사천왕문 근처에서 연신 개가 짖어댄다.

사천왕문 앞에는 투명한 물 찰랑거리는 그 안에 법성도를 새긴 판석이 잠겨있다.

법성도에 대한 설명문이 바로 옆에 쓰여 있지만 내용 심오해 의미 파악이 쉽지 않다.

신라 때 의상대사가 불교 경전인 화엄경을 요약하여 기하학적 도형으로 만들었다는데...

사천왕문을 지날 즈음 순하게 다가온 개가 짖기를 멈추고 지붕 그늘에 길게 주저앉는다, 마치 보초라도 되는 것처럼.

비로소 일목요연하게 드러나는 경내.

종각인 줄 알았으나 법고루, 마당 오른쪽에 묵직하게 서있고 요사채와 보광당 약수터가 왼쪽에서 졸졸 물소리를 냈다.

약수터 주변에는 연을 심은 수조 아담하며 화분의 빳빳한 잎새 싱싱했다.



층계 위 중앙 높직이 중층 구조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이 기다린다. 


우러르는 위치에 무량수전으로 불리는  대적광전이 자리 잡았다.

무량수전 주불은 비로자나불이며 좌우에는 아미타불과 석가모니불을 모셨다.

대적광전은 법신인 비로자나불을 모신 금당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고.


그 옆에 범종루 독성각 삼성각 옥칠불전 등이 전통방식대로 배치돼 있다.

선덕사 소장 묘법연화경 목판본은 제주시 유형문화재 제19호, 단지 사진으로만 보았다.




사찰은 현대의 선지식으로 추앙받는 고암(古岩) 대종사에 의해 중창불사가 이뤄졌다는데 가람 배치가 군더더기 없이 정연했다.

무엇보다 한라산 주봉인 백록담을 가리지 않고 약간 비켜 가람을 겸손스레 앉힌 특별한 안목이 돋보였다.

조계종 3. 4. 6대 종정을 지낸 분으로 '인과는 분명한 법이니 늘 조심하여 살라' 이르신 고암 스님이다.

항상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을 실천한 이 시대 고승으로 평생을 자비와 겸손의 모범 보여온 수행자 다운 무언의 가르침이리라.


 정치 지도자 연하는 사람이 외려 사회 분란을 초래하는 오늘날, 특히 울림 깊은 지혜의 말씀을 전해주실 분인데.

그러나 귀 있어도 들을 귀 있는 자만 듣고 깨달음 얻느니.

스님은 “신심이 확고할 때 계행이 청정하고, 계행이 깨끗하면 마음이 청정해지고, 마음이 깨끗하면 온 국토가 청정하다."고 했다.

과연 이 땅에 언제쯤이나 불국토는 이루어지려나.


작가의 이전글 토끼섬, 국내 유일의 문주란 자생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