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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l 10. 2024

버킷 리스트 - 십 년만 젊었더라면

몇 년 전에 맨 아래와 같은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때 쓴 내 버킷 리스트는 가보고 싶은 여행지 일색이었다.

지금이라면 결이 다른 내용을 썼을 것이다.

생명 받아 태어났으면 거두어들이는 날 반드시 있다.

시간의 올가미에 어차피 목이 걸린 바에야, 딛고 선 양동이를 걷어차 버리기 전 꼭 해보고 싶은 일은?

십 년만 젊었더라면 필시 꿈같은 그 일을 해보고 양동이를 걷어찼으련만.

Before And After, 버킷 리스트는 안데스 여행을 기점으로 소위 전과 후로 나뉘게 된다.  

세월이 만든 또 하나의 매듭인 고희를 맞아 아들딸의 배려로 마추픽추에 갔었다.

단단히 준비하고 갔더랬는데 의외로 고산증도 전혀 겪지 않았으며 음식도 대충 입에 맞았다.

일 주간의 페루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뒤 한동안, 새록새록 그리워지는 쿠스코 산하가 자꾸 눈에 삼삼 밟혔다.

친체로, 파삭, 모라이.... 황토 들녘 여기저기 핀 분홍 감자 흰 감자 보라 감자 꽃 색깔도 다양하던 산촌.

붉은 흙의 따신 품 안에서 알 굵어갈 감자랑 옥수수 쪄 먹으며 욕심 없이 에 동화되어 자연인으로 살 수 있다면....  

정보 검색을 해보니 이주는 물론 미국 패스포트로 몇 년 지내는 건 충분히 가능했고 미국 대비 주거비나 생활비도 아주 저렴했다.

현지에 살고 있는 한국인과도 통화해 보고 내심 장소를 물색하는 등 대강의 얼개를 짰다.

그건 거의 막무가내 치달림이라 어느 날 슬쩍 딸내미에게 의중을 밝혔다.


삼 년만 페루 인디오마을에서 살다오고 싶은데...

단박 핀잔이 돌아왔다.

먼 나라 가서 살다가 덜컥 아프기라도 할라치면 병원도 신통찮은 곳에서 뒷감당 어찌할 심산이냐고.


캘리에서 페루야 바로 발치인데 뭘!


지구본도 안 봤어? 지구는 둥글다구.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건너가는 거야, 적도를 넘는다구. 직항 비행기로 리마까지만 가도 여덟 시간 반이나 걸리는 거리야.


가깝다는 내 말에 빡친  딸내미가 속사포를  퍼부었다.

아무리 건강하다 해도 그 나이에 산골에 들어가 인디오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게 가당키나 하냐며.

그런 발상 자체가 어이없는 데다 막상 무슨 일이라도 생길 경우 대체 누구 성가시게 할 작정이냐며.

오래전 언젠가 딸내미에게 농담처럼 진담 담아, 설산 히말라야 크레바스에 빠져도 좋으니 가보고 싶다 했다가 폭포 같이 쏟아붓는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몽상가처럼 무슨 망발이냐며 된통 퉁박을 들었던 그 얘기까지 딸내미는 소환해 냈다.

해서 쿠스코에서 살아보기 프로젝트는 그다음부터 일절 입에 올린 적 없이 혼자만의 공상으로 끝났고 얼마 뒤 한국으로 리턴했다.

정말이지 십 년만 젊었더라면......

연어가 귀향이라도 하듯 마치 고향땅 같은 그곳에 가서 한 삼 년 순한 표정의 잉카인들과 흙에 묻혀 살아보련만. 2020



                    발바닥 간질여대는 버킷 리스트


버킷 리스트, 그중에서도 여행 목록이 아주 빡빡하게 차있어서 좋다.

그만큼 나를 기다려 주는 미지의 영역이 많다는 뜻이니까.

즉, 아직 못 가본 지역이 무수히 많아 설렘을 안고 찾아갈 곳이 천지 삐까리로 널려있다는 얘기다.

캘리에서 멀지 않은 중남미 각국이 발치에서 살살 발바닥을 간질린다.

어서 오라고 바람을 넣는 것이다.



널리 알려진 잉카 문명이 남긴 신비의 공중 도시 마추픽추, 아즈텍 최대 유적지인 피라미드도 보고 싶다.

기적의 현장 과달루페 성당도 궁금하다.

특히 돌에 새겨진 넙데데 큰 두상 어루만지며 너부죽한 코를 통해 몽골리안 후예의 동질성을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얼마 전 LA 자연사 박물관에 갔다가 마치 부록처럼 복도 구석탱이에 초라하게 껴있는 마야, 아즈텍, 잉카 문화를 만났다.

그들의 유물을 잠깐 접하면서부터 호기심은 부쩍 더 자극받았다.

나의 버킷리스트에 따라 언젠가 한 번은 꼭 찾을 것을 대비해 미리 학습해 두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멕시코 유카탄반도 일대를 중심으로 BC1000년경에 시작된 마야 문명권.

오랜 기간 황금기를 구가하다가 AD10세기에 이르러 갑자기 사라졌다.

유카탄반도에서 문명의 꽃을 활짝 피운 마야는 건축술을 비롯 조각과 벽화 등에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거기다 자신들의 문자 체계도 구축하고 있었다.

일찍이 수학과 천문학에 통달해 그레고리력보다 더 정확하다는 마야력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마야 문명은 스페인의 군대가 들어오기도 전에 자멸해 버렸다.

멸망한 이유는 가뭄, 전염병, 타민족의 침입 등 여러 가지 가설이 나오고 있으나 다 추측일 뿐 여전히 미스터리다.




13세기 경 북쪽에서 이주해 온 종족인 메히카인이 멕시코 중부 텍스코코 호반의 인공섬에 도시 세우면서 아즈텍 제국이 탄생됐다.

마야인의 후예들에 의해 AD1200년경에 지금의 멕시코시티를 중심으로 아즈텍 문명을 일구며 멕시코 전역을 지배했던 제국이다.

1519년 스페인에서 건너온 코르테스와 아스텍 황제 몬테즈마 2세가 궁전에서 만난 몇 년 후, 역사에서 사라진 아즈텍 문명.

그들이 남긴 문명은 흔적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철저히 파괴되고 말았다.

아즈텍은 1521년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허망할 정도로 어이없이 멸망당했다.

탐욕스러운 스페인의 강한 군사와 오래 핍박당한 인근 부족들의 적의 어린 증오심에다 전염병이 창궐하며 단숨에 무너져 내렸다.

날카로운 흑요석 검만으로는 총을 당할 재간이 없었는 데다 내적 문제 역시 심각했다.

아즈텍의 인신공양 관습과 과도한 공물 요구에 치를 떤 주변국들이 등을 돌린 결과였다.

민심이 이반 하면 어느 정권도 살아남기 힘듦을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한다.



불가사의한 문명의 하나인 잉카문명은 기원전 1250년 경부터 안데스산맥 부근에 부족국가를 형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1438년 부족국가는 통일된 잉카제국으로 번성 발전하였다.

잉카는 안데스산맥 원주민인 케추아족의 언어로 ‘태양의 아들’이란 뜻.

태양신을 숭배했던 잉카인들은 마야나 아스텍 인들과 흡사한 의식을 치렀다.

매일 해가 지는 시각에 에너지를 충전시켜 다시 태양이 떠오르도록 하기 위해 살아 있는 사람의 심장을 신전에 바쳤던 것.

신전과 궁전 벽을 황금으로 치장할 정도로 화려했던 잉카 문명 또한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황금을 찾아 나선 스페인 군대의 침입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페루 전체와 칠레 일부를 통치하던 잉카제국은 1533년 스페인 정복자들로 인해 멸망당하였다.

단지 63명의 기병과 200명의 보병만으로 피사로는 잉카의 왕 아타우알파를 무릎 꿇렸던 것이다.
 

               

                        신전과 궁전 벽을 황금으로 치장할 만큼 화려했던 중남미 문화권



페루에 있는 마추픽추는 잉카 문명의 흔적이 가장 완벽하게 남아 있는 세계적인 유적지다.

마추픽추는 잉카어로 오래된 산 또는 남자다운 봉우리라는 의미라고 한다.

2,300미터의 고지, 험준한 산자락의 가파른 절벽에 기대어 꼭꼭 숨어 있는 도시엔 신전과 궁전과 시가지가 펼쳐져 있다.

수십 톤은 됨직한 바윗돌들을 어디서 가져왔는지 또 어떻게 그리도 정교한 건축물을 축성할 수 있었는지도 미스터리란다.

산을 계단식으로 깎아 옥수수와 약초를 재배하던 경작지도 윤곽이 잡힌다. 그로 미루어 인구수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된다.

잉카 사회의 주요 범죄는 도둑질과 거짓말과 게으름이었다.

엄격한 규율로 관리되는 백성들은 정부에 불만을 품었을 테고 이를 역이용, 내분을 조장하므로 피사로는 쉽게 잉카를 무너뜨린다.



아즈텍의 피라미드는 근처에서 손뼉을 치면 새소리가 난다니 얼마나 신비로울까.

피라미드 신전은 천문학과 기하학 역학 풍수지리를 망라한 불가사의 그 자체인 건축물.

 '태양의 피라미드' '달의 피라미드' 등 수효도 많고 기능도 다양하다고 한다.

피라미드의 네 면은 절기를 상징하며 계단은 91개씩으로, 북쪽은 제단을 포함 92개로 365일을 나타내는 걸로 풀이된다.

그 모두를 눈으로 직접 쓰다듬으면서 유구한 세월 변함없는 일월 묵묵히 지켜본 장엄 피라미드를 한 계단씩 올라가고 싶다.

지치면 잠시 층계에 걸터앉아 하늘 우러르며 해와 달의 신화를 다시 궁굴려보고 싶다.

그전에, 가톨릭이 중남미에 뿌리내리게 된 배경도 상세히 찾아보고 고산 적응도 미리 해두어야겠지.

또 한 곳 나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카미노 길, 언제인가 그 여정을 꼭 걸어보고야 말리라.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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