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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l 07. 2024

유타에서의 7박 8일

-캘리포니아에서 네바다-유타-애리조나를 한여름 7박 8일 다녀온 수박겉핥기식 메모-

자이언캐년

출발 첫날은 라스베이거스를 거쳐 15번을 타고 첫 번째 목적지인 자이언캐년을 향해 내처 달렸다.

샌프란에 사는 조카네와 한국에서 온 언니 내외와 함께 지난해에도 서부 여행을 다녀왔다.

진짜 트레킹다운 트레킹의 진수를 즐길 수 있는 자이언캐년을 당시 그냥 패스해 버려 다녀온 뒤 두고두고 아쉬워했던 터였다.

미국 내 수만 개 유명 트레일 중에서도 Top 10에 드는 내로우 구역이다.

자이언캐년을 관통하는 Virgin River를 거슬러 오르며 단어 뜻 그대로 좁고 긴 협곡을 따라 물길을 걷는 내로우 트레킹.

거기에서 시원하게 물놀이도 하고 싶었고 서브웨이 구역의 선녀탕 같은 소(沼)와 폭포도 가까이서 체험하고 싶었다.

아울러 암벽들이 위풍당당하게 둘러선 자이언의 스펙터클한 장관을 다시금 새로이 느껴보고 싶었다.

몇 년 전 주마간산 격인 단체관광으로 슬쩍 겉만 훑은 내 얄팍한 안목으로 '볼 게 없다'라고 단언해 버렸다.

그 바람에 바로 옆 동네 브라이스캐년까지 왔다가 무시하고 그대로 통과하면서 물길 트레킹의 진수를 놓치고 만 자이언캐년.

자이언캐년이야말로 주마간산 격으로 돌아봐서는 그 가치가 평가절하되기 딱 십상이겠다.

직접 캐년의 야생 속살을 헤집고 들어와 날것 그대로의 자연을 실제 체감하지 않으면 그저 장엄한 위용 자랑하는 거대 바위산일 따름이다.

작년엔 사전 정보검색 미흡으로 우린 30분 거리인 허리케인에 숙소를 잡았더랬다.

돌아와서 뒤늦게,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땐 자이언 품속이나 마찬가지인 스프링데일 숲 속에 지천인 캠프 그라운드에서 야영할 참이었다.


그러나 야영장 예약은 한달 전에 했어야...


델리게이트 아치

자이언에서 2박을 한 다음 15번을 타고 북상하다 70번으로 옮겨 타고 일로 서북진을 계속했다.

Fishlake National Forest와 Manti-La Sal National Forest를 가로질러 아치스와 캐년랜즈 여행 거점인 모압을 향해 달렸다.

갑작스러운 뇌우와 강풍을 동반한 소낙비가 양동이로 쏟아붓듯 험하게 퍼부어대는 변화무쌍한 여름 날씨였다.

자이언의 네로우에서는 집중폭우 만나 저체온증으로 잠시 긴박감을 맛봤는데 7천 피트 고지의 황량한 산을 넘는 중에 만난 기상이변이다.

뇌성을 동반한 우박, 그것도 완두콩만 한 우박이 쏟아지며 차체를 한참 난타해 대는 바람에 더럭 겁이 나기도 했다.

그만큼 한여름 기후대 그중에서도 사막이나 고지대에서의 변덕스러운 날씨는 예측불허 과연 종잡을 수가 없었다.

변화무쌍한 기상을 골고루 맛보며 드디어 모압에 닿자 아직 구름 속의 해가 한 뼘쯤은 남은 시각이었다.

바로 이웃인 아치스 초입에 들러 선셋을 구경할 수는 없을지라도 일단 수인사를 트기로 했다.

저마다 하늘로 향한 붉은 기암괴석들에 감탄하다 어둠살이 내릴 무렵 숙소에 돌아와 여장을 풀었다. 긴 하루였다.

이튿날은 아치스의 수많은 아치 가운데서도 유타의 랜드마크인 델리게이트 아치와 밸런스 아치를 둘러보았다.

하도 여러 장소를 이동하며 쏘다닌 터라 이날도 은하수와 별밤은 다들 너무 피곤해 다음날로 미뤘다.

메사 아치

이번 여행 구성원은 어린이 둘에 칠십 중반 둘 거기에 나 그리고 사십 대 후반인 조카, 이렇다 보니 두 시간 이상 장거리 트레킹은 제외시켰다.

새벽에 일어나 일출을 본다는 건 아예 꿈도 꾸지 못할 상황으로 처음부터 무리한 계획은 잡을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아치스에서 역시 걷기를 겁내 데블스 가든이며 에인절 정원도 멀찍이 차로 스쳐 지났다.

출발 시부터 노래하다시피 한 트레킹 위주 여행, 그러나 트레킹을 오전에 한 두어 시간하고 나면 무더운 한여름 날씨라 지치기부터 했다.

피곤하기도 하거니와 일단 숙소에 돌아와 수영장 들어갔다 하면 오후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되기 일쑤였다.

모압에서만 4박 5일 머물면 느긋하겠지 싶던 일정이나 캐년랜즈의 방대함에 진작에 그만 주눅이 든 우리.

지명부터 Canyon에 따라붙은 land에 S가 추가된 Canyonlands이겠나 싶었다.

캐년랜즈 국립공원은 워낙 넓은 데다 거칠어서 오죽하면 세 지역으로 나눠 놓았을까.

콜로라도 강과 그린리버가 합류하는 지점의 북쪽인 Island in the sky, 콜로라도 강 동남쪽의 The Needles부터 섭렵했다.

서쪽 오지로 교통이 불편하다는 The Maze 중 셋째 날은 숙소에서 삼십 분 거리인 '천상의 섬'에 들기로 했다.

천상의 섬 가는 길

겨우 2차선 도로만 내었을 뿐, 후세들이 개발하도록 거의 손대지 않고 남겨둔 미답의 자연은 무한대로 광막했고 황량하다 못해 창망했다.

곳곳마다 감탄사를 자아내게 하는 숨겨진 비경들 무수해 다만 두 손 모두어 합장하기  차례다.

발아래 일망무제로 펼쳐진 각양각색의 캐년과 지평선에서 아물거리는 낭떠러지 절벽이며 어딜 가나 만나는 기기묘묘한 바위산들은 경이 그 자체. 그 절경 중 극히 일부인 한 조각만 뚝 떼어다 한국에 붙여두고 싶을 정도였다.

두 시간 하이킹 코스인 그랜드 뷰 포인트에 올라 콜로라도 강줄기가 유구한 세월 동안 이루어낸 기괴스러운 색감의 협곡을 마주해 보았다.

일출 사진으로 이미 잘 알려진 메사 아치까지 둘러보고 나니 운석이 떨어진 자리라는 돔은 아쉽지만 접고 말았다.

차가 닿는 주차장에서 일행 모두 더 이상은 꼼짝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압에서의 넷째 날은 일찌감치(그래봤자 아홉 시 넘어) 어제와는 반대 방향인 니들스로 향해 달렸다.

저 멀리 인디언 천막 같은 모형의 butte와도 만나고 병풍처럼 둘러쳐진 무수한 침봉들을 접견했다.

그러나 차에 주유하는 걸 깜빡하고 온 우리였다.

그 바람에 불안스러이 기름을 체크해 가며 숙소로 아슬아슬 귀환해야만 했으나 그 덕에 오후 다시 아치스에 오를 수 있었다.

아치스에서 거듭 선셋과 은하수 흐르는 별밤을 즐기면서 노소 어우러져 한바탕 인디언 샤먼 춤까지. ㅎ

인디언의 성지라는 모뉴먼트밸리

드디어 모압을 떠나는 날, 아치스에 작별 인사를 보낸 다음 아스라한 지평선에 들어섰다.

밀밭 눗누런 농장 지대와 붉은 메사와 그린의 초원과 산자락에 물결무늬가 색색으로 염색된 풍경들을 일별하고는 달렸다.

차는 191번을 타고 직진하듯 남하했다.

끝없는 아니 끝 모를 광야를 달리다가 163번으로 바꿔 타자마자 두 시간 반 만에 모뉴먼트밸리에 닿았다.

황야 한가운데 나있는, 서부영화로 익히 알려진 그 길에 접어들고도 나바호 인디언 자치구인 밸리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척박하고 황량하고 막막한 사막의 붉은 성지 모뉴먼트 밸리 비지터센터까지는 그처럼 한참이 걸렸다

캐년랜즈에서 속살 깊숙이 더듬으려면 필히 사륜구동이 필요하겠으나 모뉴먼트 밸리는 일반 승합차로도 이동이 가능했다.

붉은 먼지를 일구며 열한 개나 되는 뷰 포인트를 차곡차곡 돌기 시작했다.

하늘 향해 치솟은 단아하고도 웅장한 이곳 상징물들 가까이 접근하여 붉은 단애를 올려다보니 벅차오르는 감격으로 속이 다 울렁거렸다.

불타듯 강렬한 태양을 전신으로 받으며 억 겹의 세월 동안 모래바람에 깎여 만들어진 대자연의 서사시가 묵직하니 들려오는듯했다.

또각거리는 말발굽 소리에 섞인 늙은 인디언의 휘파람 소리가 진하게 배어 있는 듯하였다.

갈 길이 바빠 고작 서너 시간 머무른 후 뒤로 한 모뉴먼트 밸리의 뷰트와 메사인 붉은 벙어리장갑 한 쌍.

그리고 세 자매 또는 환영한다는 의미의 W로 해석되는 붉은 바위기둥들만은 뇌리에 깊이 각인시켜 두었다.

세도나의 벨락

가도 가도 아득하게 보이는 지평선뿐인 사막 길을 네댓 시간 달리자 비로소 침엽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스름 무렵에야 Flagstaff를 지나 세도나로 진입하자 때마침 뇌성이 요란스럽고 폭우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내처 붉은 바위산만 마주하다 온 터라 베가스에서 여행 마무리를 하기로 하고 도중에 세도나는 생략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허나 보통 예약된 숙소를 48시간 전에 해약하면 위약금이 붙지 않는데 그곳은 백 불씩이나 Chage 해 그럴 바엔 차라리 머물기로 한 세도나.

그런 속 사정이 있다 보니 내심 억지춘향 격으로 들른 세도나다.  그 점 언짢았던지 환대는커녕 내내 죽창같이 퍼붓는 폭우, 마치 문전박대라도 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밖에.

아무튼 간밤의 거친 비바람을 말갛게 밀어낸 세도나의 아침은 청량감마저 들 정도로 산뜻하니 화창했다.

고작 오전 잠시 채플과 예술인촌만 둘러보고는 제대로 볼텍스 기운도 느껴볼 짬 없이 서둘러 갈 길 재촉해야 했으니. 이는 일곱 시간 넘어 걸리는 귀갓길이 녹록잖았기 때문이었다.


조슈아 트리가 선 저 건너 만년설 하얀 하이시에라 연봉과 황막하기 그지없는 데저트 지역의 40번을 타고 서남진을 이어갔다.

바스토에서 15번 도로에 잠깐 올랐다 싶었는데 어느새 조슈아 트리 낯익은 풍광의 동네에 들어서 마음이 자못 푸근해졌다.

캘리포니아-네바다-유타-애리조나를 주마간산일지언정 2천2백 마일을 섭렵한 대장정 마치고 귀가했다.

딸내미가 수고 많았다며 푸짐한 바비큐감에 와인을 준비해 놓고 기다려, 우리는 무사히 마감된 여름 여행을 자축하며 건배!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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