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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l 11. 2024

omnibus ㅡ 인디오


아이러니 -1-

 
 지난 주말에 산타 클라리타에서 cowboy-festival이 열렸다. 바람 부드러이 스치고 신록 눈부신 계절에 열리는 축제 속으로의 나들이. 한 달 전에 이미 티켓을 예매해 둔 터라 가벼운 차림으로 시간 맞춰 차에 올랐다.


작년까지 이 페스티벌은 '하이눈' 등 서부영화의 산실인 '멜로디 랜치 영화 스튜디오'에서 열렸는데 올해는 장소가 건너편 올드타운 윌리엄스 허트팍으로 옮겨졌다. 소문으로만 듣던 게리 쿠퍼, 죤 웨인 등 웨스턴 스타들이 활약하던 서부시대 거리나 역마차 풍경은 접어둬야 했다. 대신 내심 기대하기는 로데오 경기였다. 길들여지지 않은 말을 타고 밧줄을 휙휙 돌리며 말이나 소떼를 추격하여 누가 빨리 올가미를 걸 수 있는지를 겨루는 로데오.


서부개척기의 미국은 황금과 마차와 총잡이의 무대였다. 미 서부 개척의 역사 그 중심에는 카우보이들이 있다. 방목지에서 소떼를 몰고 평원을 가로지르는 전설적인 서부의 거친 사나이들이 보고 싶었다. 그러나 페스티벌에서 만나보고자 했던 두 가지 기대는 모두 다 빗나갔다. 정작 카우보이 페스티벌에서는 카우보이도 로데오도 볼 수 없었으며 상가가 진을 친 거리엔 다만 구경꾼의 카우보이 모자들만 범람할 뿐이었다.


우리들에게 들소를 포기하고 대신 양을 기르라고 강요하지 말라던 인디언들. 들소를 쫒으며 치달리던 인디언들의 생활기반은 대륙횡단철도가 들어서며 무너져 내렸다. 미국인들이 흔히 내세우는 프런티어 정신은 백인 입장에서는 인내와 용기를 의미하는 진취적 이념이지만 당하는 인디언의 입장에서는 땅과 목숨을 빼앗기는 불행의 서막이었다. 역마차를 둘러싸고 아귀처럼 달려드는 인디언들. 이때 홀연히 나팔 소리와 함께 먼지를 일으키며 기병대가 나타난다. '좋은' 기병대는 '나쁜' 인디언을 여지없이 무찌르며 한바탕 추격전을 벌인다. 관객은 손뼉을 치며 환호한다. 영화 속의 인디언들은 '사람을 죽여 머리가죽을 벗기는 야만인이며 삼림 속의 늑대이니 죽여야 하는 존재'로 비하시켰다. 그러나 인디언들은 태생적으로 잔인함과는 거리가 먼 평화롭고 유순한 종족으로 식물성에 가까운 자연인이었다.


혹자는 말한다. 죤 오설리반이 주창한 '명백한 운명론'처럼 신에게 선택된 백인들은 선진국의 문명을 전파할 의무가 있으므로 미개한 땅의 주인은 언제라도 대체될 운명을 지녔다는 논리. 이 넓고 풍요로운 땅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관리를 안 하는 것보다는 세계인이 다 들어와 살며 광나게 이용하는 것이 옳다고도 한다. 그러나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내치는 상황에 자신이 처한다면 쉽게 그런 소리가 나올까. 말이 좋아 보호구역이지 유목 부족에게 한정된 땅은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듯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멸족을 촉진시키는 유형지로 내몰린 인디언들의 비극 앞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평균적 시각을 가지고 인디언들에 가한 처사를 재단해 보면?


1492년 10월 2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상륙할 당시. 북미 인디언들의 수는 최소한 6~7천만 명에서 1억 내지 1억 2천만 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허나 그들의 태반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에 가지고 들어온 질병들인 홍역, 콜레라, 장티푸스, 디프테리아, 이질 등에 감염되어 죽고 만다. 나머지 살아남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 또한 그들이 살던 땅을 지키기 위해 백인들과 싸우다 죽는다. 그 많던 인디언들이 20세기 초에는 불과 수십만 명으로 줄어들고 만 경위다. 물론 어느 땅의 주인공이든 때가 차면 바뀔 수 있다는 건 오랜 역사서를 통해 이미 익혔지만...


카우보이 축제에 카우보이는 간곳없고 생뚱맞게 남북전쟁 당시를 재연한 막사와 군인들 뿐이었다. 19세기 복장을 하고 오가는 여인들이 그나마 눈요깃감 역할을 했다. 그렇게 역사놀이를 즐기며 삶의 일상을 축제로 만드는 카우보이 후예들의 여유로운 그늘에 묻힌 인디언들이 그 축제에 끼어있다는 건 지독한 아이러니가 아닌가. 카우보이와는 천적쯤인 아메리카 바이슨 몇 마리는 뮤지엄 인근 우리에 갇힌 채이고 전통춤을 추는 인디언 역시 아무래도 너무 시니컬한 시추에이션이다. 흥청거리는 행사장 풍경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아 마치 물 위에 뜬 기름처럼 겉도는 나이 든 인디언 남자의 옆모습이 퍽 쓸쓸해 보였다.  


동병상련 -2-


이번에 한국 대통령이 신흥 경제권인 중남미 시장을 개척하는 계기가 될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마치고 돌아갔다. 귀국 후 아직 선물 보따리는 풀지 않았지만 세일즈 외교를 통해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원의 보고이자 환태평양 시대의 주인공이 될 중남미 국가의 원주민 뿌리를 거슬러 오르면 우리와 형제나 마찬가지임을 알게 된다. 1만 5천 년 전 선사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소녀 유골이 유카탄 반도 수중 동굴에서 발견됐다. 작년에 그 ‘나이아의 소녀’에서 미국의 제임스 채터스 박사팀이 유전자 특질을 밝혀냈다.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분석 결과 그 유골의 이동경로는 시베리아와 알래스카를 이어주는 베링해협을 건넌 것으로 확인되며 그간의 가설이 정설로 굳혀졌다.


중남미 인디오, 그들은 문명을 모르는 미개한 원시 종족이 아니었다. 불가사의로 남겨진 잉카제국과 마야, 아즈텍 문명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중남미 원주민의 80%는 한민족 핏줄이라고 고고학계는 한 목소리로 말한다. 인디언 마을의 토템신앙을 눈여겨보면 우리네 장승처럼 곰, 까마귀, 기러기를 숭상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곰 어머니 신화는 우리의 단군신화 그대로이다. 샤먼이 북을 치고 방울을 흔들며 정령을 부르는 거나 한국의 무당이 펼치는 행위는 똑같다. 불과 연기가 잡귀를 물리친다는 믿음도 동일하다. 이처럼 한눈에도 여러모로 우리와 닮은 점, 동질성을 느끼게 하는 그들이다. 따라서 절로 깊은 연대감을 갖게 한다.


그들 역시 같은 동북아시아인 더 정확히는 몽골리안인 데다 우리와는 뿌리가 같은 한 계통으로 상호 유사성이 너무도 많다. 물론 일란성쌍둥이라 해도 자란 환경이 다르면 성격과 품성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한다. 각자 살아온 문화 환경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근본적인 바탕, 핵만은 바뀌지 않는다. 종아리가 짧아 키는 크지 않으나 다부진 데다 넙데데한 얼굴에 코는 낮고 검은 머리에 누런 피부를 가졌다. 물레질을 하고 베틀로 길쌈을 하며 두레박을 사용할 뿐 아니라 물을 이고 다니는 그들이다. 불과 반세기 전 우리네 시골마을에서 흔히 마주치게 되던 낯익은 풍물들이기도 하다.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을 쏜다거나 고수레 풍습과 세수할 때 뒷목까지 씻는 습관이며 팔짱을 끼는 습속도 닮았다. 나무를 묶는 것을 다바리(다발의 경상도 방언)라고 하는 것도 같으며 산끈을 잡고 아이를 낳으며 그 아이를 처네로 둘러서 업고 다닌다. 그들의 언어 역시 그네 - 그네/ 꽃신 - 코신 / 낫 - 낫 /여자 - 가시나 /신주 - 신즈 /지붕 - 덮이 / 허깐 - 허갠 /나막신 - 막히신 / 여보시오 - 보시오 /이쁘다 - 이쁘나 /마을 - 리 / 아버지 - 아파치 /나 - 나, 노이, 누이 / 네 개의 바다 - 네바다처럼 비슷한 말이 숱하게 발견된다. 영국 대영백과사전에는 멕시코(맥히고)에 있는 마야(마하가야=대가야) 문명이 한민족의 문명과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인디오들은 인간. 새. 곤충. 해. 달. 별 산. 들소 나무. 독수리. 흙. 등 모두가 서로 연결된 하나의 유기체로 파악했다. 세상 만물은 내 신체의 또 다른 부분으로 모두가 나의 형제로 그들을 존중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을 존중하는 것과 같다고 여겼다. 이 세상에 네 것은 아무것도 없으므로 네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웃을 위해 무엇인가 어려운 일을 하라고 했으며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그들을 도와주라고 일렀다.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말고 누구도 슬프게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한 언제나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라고 가르쳤다. 또한 종교나 신념이 다른 사람도 인정하라고 가르쳤던 사람들. 그들이 인디언이고 인디오다.


당신(Great Spirit / Great Oversoul)이 만든 이 세상 만물을 내가 존중하게 하시고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소서!

지저귀는 새소리. 흘러가는 물소리. 황혼의 붉게 물든 저녁놀 속에 숨겨진 당신의 뜻을 깨닫게 하소서!

위대한 정령이시여! 봄 들녘에선 사향소들이 거닐고 여름이면 안개가 호수 위를 떠돌고 파란 물 위로 물새들이 울어대는 이곳보다 천국이 더 아름다울 수 있습니까?


이렇게 노래하던 그들이 역사의 그늘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럼에도 백인들이 자기 종족을 집단학살한 그 끔찍한 사건을 인디언들은 자식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 때문에 자식들이 백인들을 미워하고 나쁜 감정을 가질까 봐 끝까지 그 사실을 숨겼다고.....

우리는 -3-


미국에도 한인들이 많이 산다. 이민역사가 쌓이며 학계 의료계 문화계 체육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자랑스러운 2세들이 늘어가고 있다. 경제계에서의 위상도 괄목할만하다. 그러나 아직 정계 쪽에는 모국의 국익에 힘을 실어줄만큼한 주요 인물이 나타나지 않았다. 아베총리가 미의회에서 연설할 기회를 얻은 것은 순전히 돈 때문이라는 비판이 포브스 지에 보도되었듯 재미 일본인들이 한 덩어리 되어 정가에 펼친 로비 덕이란 말이 맞다.


삼성, 현대, 엘지가 우리를 자랑스럽게 해 주며 반기문총장이 유엔의 수장이란 점은 분명 우리의 자긍심을 높여준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전쟁의 피폐한 이미지로만 기억하는 미국인도 적잖다. 거기다 남한과 북한 구분이 안 되는 경우가 흔해, 북의 핵이 이슈로 떠오를 때면 내심 헷갈린 심중으로 우리 바라본다. 중국 일본에 비하면 국제사회에서의 위상도 그만큼 미미한 편이다.  G12에 들었다고 으쓱해 봐도 우리는 여전히 동양의 조그만 나라가 모국이며 그나마 분단국 출신이다. 솔직히 미국 내의 우리는 힘이 약한 소수민족에 불과할 뿐이다. 약한 자는 약한 쪽에 알게 모르게 서로 끌린다. 그래서인지 역사의 그늘 속으로 사라져 가는 인디언들에 연민이 깊기만 하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사실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주변국으로부터 끊임없이 외침을 겪으며 핍박과 수탈을 당하면서 살아왔다. 아마 그 때문도 있으리라, 조상 대대로 살던 땅을 내주고 보호구역으로 밀린 인디언을 떠올리면 그래서 동병상련의 애틋함이 솟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인 이끌림의 이유는 뿌리가 같다는 점이리라. 한국인과 인디언이 같은 종족인 것은 몽골반점이나 얼굴 모양 또는 습속에서만 증명된 것은 아니다. 어른은 '다마치니' 또는 화가를 뜻하는 '다 기려'처럼 발음은 물론 어순이 일치하며 문장 구조가 같고 조사 등등 우리말의 흔적이 인디언 언어에서 다수 발견된다. 언어인류학자인 스탠퍼드 대학의 그린버그 교수의 지론에 따르면 인디언의 언어는 많지만 언어군을 축소해 보면 한국어와 같은 언어 체계에 도달한다는 것.


애리조나 대학의 인종학자 스티븐 제구라 교수는 인디언의 혈액형을 우리와 동일한 A.B.O, RH 형으로 분류했다. 애리조나 주립대학의 인류학자 터너 교수는 유럽인의 어금니 뿌리는 두 개인데 반해 아시아인의 어금니 뿌리는 세 개라는 점에서 치아 모양으로 인디언의 원류를 아시아로 인정했다. 이처럼 뚜렷한 과학적 연구결과를 통해 인디언의 원류가 어디인지는 이미 밝혀졌다. 또한 윷놀이, 고누, 투호, 굴렁쇠, 자치기, 실뜨기 같은 인디언과 인디오의 풍습과 유물 등이 한민족의 그것과 아주 흡사하다는 점도 확인됐다. 독일 고고학자 훔볼트는 인디언의 신화나 기념물, 우주 기원에 관한 사고가 동아시아의 것과 놀랄 만큼 닮았다고 하였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두 대륙의 문화가 이리 유사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기원전 5세기의 태극문양이 남아있는 멕시코의 역사유물 그림에는 '820년 경 아스당에서 왔다.'는 기록이 있다는 역사 특강을 들었다. 널리 알려진 아스텍 문명의 아스텍은 스페인식 발음이며 정확히 '아스'는 '하얀'을 이르는 고어이고 당은 대지 곧 땅이다. 고조선의 첫 도읍이 아사달이고 아스당은 그와 유사한 단어다. 인디언들의 고대 언어의 뿌리는 한민족 언어에서 비롯되었다는데 언어학자들의 뜻은 일치한다. 구전으로 내려오는 민속노래가 우리네 노동요와 거의 같다는 데 놀라게도 된다. 제천 사상, 솟대, 색동저고리, 볼연지, 상투 등 비슷하게 닮은 동질성들에 기인하는가. 인디언을 보면 어쩐지 낯설지가 않고 어딘가 모를 친근감마저 든다. 결국 동병상련의 안타까움이 이는 것은 과잉된 감정의 사치만은 아니리라.



수만 년 전 시베리아를 거쳐 베링해협을 건너서 알래스카로 북미로 중남미로 뻗어나간 진취적인 우리의 선조들이었다. 보다 나은 삶의 터전을 찾아 만주를 지나 시베리아로, 거기서 베링해를 건너 대륙의 경계마저 훌쩍 뛰어넘은 활달한 기상을 지닌 한민족이다. 말을 치달리며 일찍부터 개척의 역사를 써 내린 우리의 선조들을 닮아 오늘날 오대양 육대주로 거침없이 뻗어나가고 있는 한국인들. 불굴의 의지로 도전하는 개척자, 바로 우리가 그들 중 하나이다. 이 땅에서도 충분히 주인의식을 가지고 당당히 살아가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우리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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