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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l 16. 2024

무진 즐기세 그려, 낙화도 꽃이려니

저마다 색다른 아취 간직한 남도의 여러 정자를 만나봤다.

그중에도 이처럼 풍류 멋들어진 정자는 그리 흔치가 않았다.

언덕 위의 무진정, 막힌 데 없이 탁 트인 공간인 데다 정자를 둘러싼 주변 경관이 무진장 아름답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8호로 조선시대 선비문화가 만들어낸, 절제미 돋보이는 정자 중의 정자다.

조선 전기의 문신 무진(無盡) 조삼(趙參)이 후진 양성을 하며 여생 보내려고 건립하였다.

함안 조 씨 조삼은 생육신 중 한 분인 조려의 손자 되는 분이다.

왕위를 찬탈한 세조에 반발해 대쪽 같은 충절과 의리의 표상으로 불의한 현실을 등지고 낙향한 조려.

생육신의 고결한 뜻을 기려 제향 올리던 사당은 훗날 서산서원이 되었다.

예전 양반가 선비는 이리 품격과 지조 지키며 살았는데 오늘날 그만한 지위에 있는 이들 세계관은?

감탄사 발하게 하는 풍광은 암벽 위에 오연히 솟은 무진정뿐만이 아니다.

무진정 앞에는 이수정이라는 인공못이 양편 너르게 이어졌으며 연못가에는 수십 그루 노거수 왕버드나무 휘늘어졌다.

이수정 못물이 투명히 맑았다면 금상첨화이련만 틉틉해 보여 좀 개운찮긴 하나 녹음 되비친 반영은 그럴싸하다.

그 가운데에 육각형 누각인 영송루(迎送樓)가 서있는데 근자에 만든 듯 한껏 위엄차나 솜씨 어설프다.

선대들이 남긴 고졸미까지야 기대하지 않는다 해도 비경 품은 주변과의 조화 아랑곳 않은 막무가내다.

나무그늘 서늘하니 이 운치로운 연못에서 초파일 기려 펼쳐진다는 놀이.

함안만의 특별한 전통 민속인 이수정 낙화 놀이는 국태민안을 기원하며 이 자리에서 행해지던 마을 축제다.

이름처럼 연못가에 꽃잎 흩날리는 매화나 도화를 즐기는가 했는데 화목이라곤 지금 막 꽃잎 벙그는 배롱나무뿐이다.

목백일홍 꽃잎 하롱하롱 지는 팔월 어느 날 기차 타고 와서 취기 어린 시정에 다시 잠겨볼까.

이곳 낙화놀이는 한지에 숯 가루를 넣고 꼬아 만든 낙화봉을 줄에 매달아 불 붙이면 숯가루가 붉은 불꽃 되어 흩날린다고.

까만 밤에 장관을 연출하는 낙화놀이는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33호로 지정되었다.

대리석 다리를 건너 언덕 오르면 무진정의 대문인 동정문(動靜門)에 이른다.

열려있는 문을 지나면 정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을 인 소박하고 단아한 기와집이 기다린다.

가운데에 있는 마루방 띠살문에는 창호지 단정하며 마루방을 둘러싸고 전후좌우 툇마루를 놓았다.

자재로운 통풍을 고려해 사방 모두 들창을 달았다.

여름날 누마루에 높직이 올라앉아있는 상상만으로도 시 한수 저절로 읊어질 법하다.

굵직히 둥근기둥마다 필체 수려한 주련이 달렸다.

무진정 인근에 모셔진 노비대감의 비각도 퍽 이색졌다.

그 배경인즉, 무진 선생의 고손자를 모시던 노비 하나가 정묘호란 시 의주에서 전사한 주인의 부음을 본가에 전하고는 투신하였다.

충신의 집에서 충노가 났음을 기려 이에 신분을 대감으로 칭하는 비각을 세워 그의 충정을 후세에 전했다.

무진정 울안에는 주련 해설문도 서있고 담벼락 가에 주세붕 선생에 대한 안내글이 자상하게 쓰여있다.

조선 중기의 대학자 주세붕의 문집 무릉 잡고(武陵雜稿)에 무진정기(無盡亭記)가 실려있다.

맑은 바람이 저절로 불어오고 (淸風自來)

밝은 달이 먼저 이르니 (明月先到)

반걸음을 옮기지 않아도 (不出跬步)

온갖 경치가 모두 모여 (萬像咸集)

진실로 조물주의 무진장이라 하겠다 (信乎造物者之無盡藏也).

이에 더 무슨 말을 덧보태리.

아취 고아한 시흥에 공연히 횡설수설 잡설로 누 끼칠까 저어 돼 이만하기로.



주소 :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괴산 4길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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