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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l 16. 2024

피삭은 작은 마추픽추

지역명부터 신성한 계곡, 왠지 경건한 자세로 대해야 할 것 같았다.

뷰 포인트에서 하차해 언덕 아래를 조망해 보니 삼태기처럼 펼쳐진 안온한 계곡에 푸른 초장 너른 데다 우르밤바강 굵은 물줄기가 한눈에 들었다.

주변을 감싼 높은 안데스 봉우리 아래 드러난 자연환경은 장쾌했으나 촌락초라했다.


다만 붉은 황토 차진 게, 아무 땅에나 묻어도 옥수수 감자 무성할 듯 토질 퍽 비옥해 보였다.

문득, 그곳에 황토방 같은 친환경 짓고 한유로워 보이는 풍경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그 생각 한동안 골똘해 아주 안데스로 이주할까 싶은 청사진까지 구체적으로 그려봤는데.

 
딸내미가 참으셔! 아스셔!  아프면 우짤끼고! 단박 무질러버렸다는. ​



잉카인들이 자연석 자재로이 다뤄 이룬 석조물에 놀란 피삭이란 조그만 마을.

 지금은 안데스산맥에서 채취한 약초와 농산물이 거래되는 시장터이자 관광객 상대로 전통공예품을 파는 시장이 매일 열리고 있었다.

울긋불긋 원색이 주종 이룬 시장 구경 잠시 하다가 차에 올라 산줄기 휘돌아 당도한 유적지.


지대 높아서만이 아니라 유카이 계곡 전망은 아주 훌륭했다.

특히 마추픽추에나 있음 직한 대단지 층계 밭이며 돌로 만든 태양의 신전 터와 주거지 자취와 견고히 축성된 요새 흔적이 기다리고 있었다.

잉카 유적은 신전과 요새로 압축되다시피
신을 위한 장소와 군사적 요새부터 쌓은 다음 옹기종기 마을을 꾸몄다.

사진으로 익숙해진 마추픽추와 비슷한, 규모 작은 또 하나의 그런 마추픽추가 여기였다.

만일 마추픽추를 보고 난 다음이라면 싱거울뻔했는데, 마침 여행 일정이 점층적으로 치고 올라가게 돼있어 다행이랄까.

잉카 유적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곳은 당연히 신을 위한 제례 장소.

해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높은 자리에 성결스레 모셨다.

그 아래쪽에 주거지를 만들고 이 모든 걸 지킬 요새를 단단히 쌓았다.

한치의 틈도 없이 신기에 가까운 기술로 쌓아 놓은 쿠스코 근교 삭사이와망의 거대하고 정교한 석벽을 본 후라면 좀 허술해 보일 석축이지만 이 또한 대단해 얼핏 남한산성 행주산성이 떠올랐다.

요새의 존재 이유는 수성, 곧 생존의 터를 지키기 위해서인 만치 적에 대항해 치열한 전투 치러야 하는 장소다.

스페인 군에 맞서 죽기로 항전하던 잉카인들,

변변한 무기조차 없어 집어 들 수 있는 돌이란 돌은 죄다 적군 향해 던졌으리라. ​

피사로에 의해 1530년대 초 폐허가 된 피삭 유적지에선 벽체만 남은 석조 건물 잔해와 경사면을 최대치 이용한 농지를 둘러볼 수 있었다.

산기슭에 우아한 곡선 그리며 층을 이룬 농사 터가 시선을 붙잡았다.

계단식 경작지를 만들려면 먼저 산비탈에 돌로 축대 쌓고, 물이 잘 빠지도록 자갈 깐 다음에 흙을 덮어야 한다.

당시 잉카인들은 거름으로 쓰려고 멀리 떨어진 해안에서 구아노(guano:바닷새 배설물)를 가져다 비료 삼아 흙과 혼합해서 농사를 지었다고.

뛰어난 농경 기술과 석조 기술이 만난 계단식 밭에다 알 굵은 감자와 색색의 옥수수를 재배해 주식 삼았다.

그들의 전통주 치차는 옥수수를 발효시켜 만든 술로 첫 잔은 마땅히 태양신에게  올렸다.

고산지대에서 술은 몸에 독이더라는 걸 첫날 체험한지라 치차는 입에도 대지 않았지만 무척 도수가 높은 술이라고.

맞은편 산기슭 절벽에 자연적으로 생긴 크고 작은 동굴은 묘혈(墓穴)로 잉카인들 공동묘지였는데 스페인 도굴꾼들이 모조리 훑고 지나갔다 한다.  


벼랑에다 층층이 굴을 만들어 사자를 묻는 피삭의 독특한 장지 양식​은 그렇게 훼손돼 버렸고.

그들의 내세관은 죽어서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온다는 믿음이 깔려있었다.

따라서 어두운 동굴 속 미라 될지라도 새로운 영생의 꿈을 꾸며 누워있는 잉카의 죽은 자들 곁에는 당연히 금붙이 등 부장품이 많았을 터였다.   

 페루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원주민들은 그러나 지금은 찬란했던 황금 제국의 추억 같은 건 진작에 잊은 걸까.

인류 문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외부 문명과의 교류와 충돌이 선행되어야 한다는데 진작에 충돌만 있었고, 그 충돌의 충격에 놀라 교류를 닫아버린 폐쇄성 때문에 기막힌 불평등을 겪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급변하는 시류에 어리둥절한 채 여전 순박하기만 한 얼굴로 유적지에서 토산품을 팔거나 율조 처량한 피리를 불면서 근근 살아가고 있다.

옛 방식대로 감자와 옥수수 쪄먹으며 가난과 이웃해서.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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