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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l 16. 2024

아직 먼 그들 수준

태정태세문단세...... 한국에서 교육받았다면 누구나 구구단 외우듯 자동으로 입에 밴 조선 왕조 계보다.

페루 역사를 대략 훑다가 새삼 한국인으로 태어나게 된 행운에 감사했다.

근대사 대통령만 읊으려 해도 숨 가쁠 정도로 들고난 대통령들이 수두룩 겹 쌓인 나라, 그만큼 정국이 불안정한 국가다.

한편, 페루 거리에서는 대우버스나 현대 기아차가 흔히 눈에 띄었고 공항 사방 천지에는 삼성이 쫙 박혀있는 데다 숙소 호텔마다 전자제품은 LG가 석권하고 있어 뿌듯한 기분일밖에.

어떤 대통령이 그런 말을 했다던가, 이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건 삼성이고 현대라고.

 페루 역사 공부 잠시하고도 어지러웠으니 아마 페루 학생들 역사시험 치려면 골머리 꽤나 아팠으리라.

그만큼 복잡하고 어수선하고 파란만장한 페루 역사였다.

고대사는 고대사대로 피로 얼룩졌으며 3백 년 식민지 당시는 수탈과 핍박 속에 고통받아온 페루다.

이웃 나라 명민한 장군 도움으로 남미 각국이 그랬듯 덩달아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고도 근대사 역시 혼란으로 점철되었다.

그 후에도 들쑥날쑥한 정세는 안정되지 않은 채 빈번한 쿠데타와 정변으로 수도 없이 많은 별들이 뜨고 졌다.

후진 군부독재국 페루가 공화정 되어 민정 이양 정부가 된 지는 그리 오래지 않다.


도시 외형은 유럽 판박이나 한국의 70년대보다 훨씬 뒤떨어진 시스템과 생활환경인 데다 현재도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부정부패.

상부조직이 곪았으면 하부조직도 연쇄적으로 당연히 썩어 들게 마련이다.

바뀌어봤자 여전 비리의 온상인 부패 정치권의 틈바구니에서 고초 겪으면서 시달리자니 민생은 이래저래 고달플밖에.

3선 꾀하다 비리에 연루돼 실각한 동양계 후지모리 대통령은 영어의 몸인데 그의 딸이 저지난해 대선에 출마했다.

그러나 아슬아슬한 표차로 낙선되었으니 분명 재기를 도모할 것이다.

페루 역사 들여다보면 숱한 장군이 들락거린 대통령 궁 주인자리인 데다, 부자지간이나 직속 부하가 이어받는 경우 흔했던 대통령 자리다.

2선으로 권좌를 오래 지킨 아버지 덕에 대통령 궁에서 지낸 그녀 역시 작심한 바 확고하리라.

새 뉴스를 덧붙이자면 현 대통령 쿠친스키는 옥중에서 건강을 해친 후지모리를 12월 24일 인도적 이유로 사면했다.

이미 정치세력화된 후지모리 가계의 막강한 입김이 배후 작용한 바도 클 터이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윗자리 양반들 그러거나 말거나 아니랴.

민초들 먹고살기만 푼푼하면 어쨌든 괜찮으련만 높은 인플레에 실업률은 갈수록 고공행진을 한다.

하여 국민소득이 만 단위에 이르려면 까마득하기만 하다.

국민 절대다수가 빈곤층으로 가난하게 살뿐더러 빈부격차는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많이 난다.

같은 시공간인 마름모꼴 대리석 회랑 풍경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세련된 신사 숙녀들이 활달하게 지나가는 한 귀퉁이에 인디오 아낙은 아이 둘 데리고 서푼짜리 좌판을 벌이는 곳이 리마였다.

날씬한 백인 아가씨 한 끼 점심값이면 원주민 일가족 하루 먹고도 남을 테고.

농업 인프라와 광산자원이 풍부하고 사막과 바다에서 오일이 솟는 산유국인 나라다.

열대우림 안데스산맥은 물론 고대 문명이 남긴 유명 유적지에다 스페인이 세운 유럽식 위풍당당한 건축물 역시 즐비한 페루다.

뛰어난 관광자원이야말로 최고의 블루오션 전략을 펼 수 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닌가.  

그럼에도 회색의 매연 도시 리마에는 파업 사태와 시위 군중으로 줄창 몸살 앓으니,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민초 심기는 날마다 우중충할 것만 같다.

리마에서 제일 기대했던 대성당 방문도 국립박물관 관람도 느닷없이 나타나는 데모 대열로 인해 결국 무산됐다.

시위대 때문에 중심가 빅토리아 지구를 봉쇄해 이중삼중 삼엄한 경비 병력의 바리케이드가 늘어선 상태라 속절없이 접을 수밖에 없었다.

멀찍이서 건너다본 대성당 입구에는 2018년 페루를 찾는 교황 사진만 미소 띠고 있을 뿐, 삼엄하게 외곽을 지키는 병력 표정은 굳게 경직되어 있었다.

리마에서의 하루는 페루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자 피사로가 첫 주추를 놓으며 심혈 기울인 작품, 리마 대성당을 꼼꼼히 둘러보는 일정이 첫째였다.

성전 제대는 물론이고 수많은 대형 성화 테두리마다 황금칠을 했다는 대성당.

거기에는 피사로 유해가 유리관에 고이 안치되어 있다는데 그 꼴을 여태껏 묵인하다니 페루비안은 관대하기도 하지 뭔가.

조선총독부 건물을 두고 민족정기 회복을 위해 청사를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먹혀든 건 맹한 영삼아재 때다.

역사 바로 세우기란 명분으로 일제 잔재를 기어이 폭파시켜 치워 낸 전력이 우리에게는 그 외에도 다수 있다.

제국주의 침략의 선봉대로 악랄한 약탈자였던 피사로에게 호의적일 수 있는 그들 정서가 자못 희한했다.




1535년 수도를 리마로 정한 피사로는 본국의 전문가를 초빙, 계획도시로 설계해 무척 공을 들였다.

그러나 1746년 대지진의 피해를 입은 도시의 중심지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 등 도시 거지반을 재건축해야만 하였다.

실업자들인지 노숙인들인지 허름한 차림의 사람들이 서성대는 대통령 궁이 있는 산 마르코 광장과 아르마스 광장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충 둘러봤다.

도심 분위기가 스산하다 못해 하도 흉흉해 서둘러 일찌감치 자리를 떴다.

새로운 풍물 구경 허탕치고 돌아와 숙소에서 만난 현지 교민에게 거리 분위기를 전하자 그의 반응은 이러했다.

"하도 해싸니 오늘은 또 뭔 일로 데모하는지도 모르겠네요. 날마다 시위 없는 날이 없으니까요."심드렁하게 그랬다.

'함부로 상대를 판단하지 말라' 하셨지만 극히 일부에 한한 것이기를 바라며 단편적이고 제한적 견해임을 밝히며, 실제로 당한 몇 사례를 적어둔다.

물론 잠깐 일면만 본 리마요 페루인데 뭘 얼마나 알겠느냐 하겠으나 하나를 보면 열을 헤아릴 수 있잖은가.

꼭 찍어 먹어보고 씹어봐야 맛을 아는 건 아니다, 이제부터 직접 겪거나 목도한 팩트만을 가지고 몇 가지 풀어놓겠다.

페루의 낮은 민도는 차라리 문제점이 아닌 듯, 한 국가의 후진성은 현장 공무원에서부터 어렵잖이 찾아질 수 있었다.

1, 오전 오후로 나누어 하루 400명만 오를 수 있는 와이나픽추 등정을 진작에 추가 비용 내고 예약 완료한 우리는

마추픽추 안갯속 헤매다 허둥지둥 게이트 앞에 십여 분 늦게 당도하니 딱 잘라 이미 타임 오버라며 가로막는다.

여기까지는 가이드와 사인이 안 맞아 생긴 갭이라 우리 실수임을 인정한다.

그런데 가관인 게 다음 차례 등정팀 입장 시 들여보낼 테니 좀 기다렸다가 여권 제출할 때 10 솔을 끼워달란다.  

3불, 까짓 그 정도야 좋다 싶은데 우리에겐 10 솔 짜리 한 장에 100 솔 짜리 만 있었다.

재차 가서 잔돈을 바꿔줄 수 있냐니까 한마디로 NO, 그렇게 나머지도 꿀꺽해 본 재미가 심심찮게 있었던 모양인가.

페루 관광의 상징물이나 마찬가지인 장소에서 음성적으로 공공연하게 비리가 자행된다면 국가 신인도는 응당 낮춰진다.  

신성한 봉우리 와이나픽추를 그렇게 오염시키고 싶지 않아 욕심을 접고, 많이 아쉽지만 깨끗이 아듀하고 돌아섰다.  

2, 관광지마다 전을 편 가게에서 현지인들이 만든 물건을 사라고 관행처럼 여유시간을 준다.   

피삭에서다. 단단한 검은 돌로 깎은 퓨마라 하나 개를 닮은 조각 하나를 50 솔에 샀다.

95 솔 달라는 걸 무게가 신경 쓰여 살까 말까 망설이다 50 솔, 부르니 두말없이 싸준다.

상인도 가이드도 유물을 본떠 만든 것이니 공항 통과는 문제없노라 장담했다.

쿠스코 공항 보안검색대에서 엑스레이 투시기에 돌덩이가 걸렸다. 가방을 풀어 돌을 꺼내든 검색대원,

이미테이션이라고 하니 얼마 주고 샀느냐가 첫 질문, 두 번째로 한 말은 비싸게 샀다고 했다.

그런데 뭉그적거리며 돌을 내주지는 않고 지네들끼리 계속 쑥덕거린다.

리마행 비행기는 타야 하고 열불이 터져 아무 문제없으면 돌려주든지 아니면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라고 화를 냈다.

엥? 정말 쓰레기통에 넣는다. 내가 돌아서 가려 하자 한 사람이 슬그머니 돌을 챙겨 사무실로 갖고 들어간다.

뭐 이런 거지 같은 경우가? 사무실로 따라 들어가 돌을 달랬더니 눈을 멀뚱히 뜬 그 남자 왈, 버리라며?

얼른 돌을 되챙겨 가방에 쑤셔 넣고 나왔다.

리마공항에서 미국행 비행기를 탈 때는 한층 검색이 강화됐지만 전혀 아무런 시비 없이 통과됐다.

3. 리마에서 나스카 라인 투어를 하기 위해 택시 이용해 장장 다섯 시간 거리를 이동했다.

새벽 시각이라 선잠을 자다 깨어보니 깜깜하고 한적한 고속도로 어느 검문소 앞에 차가 세워져 있었다.

경찰이 여권을 보여달라 해서 꺼내줬는데 경비행기 투어를 하지 않는 동승자 하나가 여권 소지 이유가 없어 챙겨 오지 않았다.

운전기사가 밖에 나가 한동안 경찰과 얘기하다 들어와 100 솔을 들고나간다. 여권 없는 승객 태웠다는 꼬투리로 그냥 당했다.

돌아올 때도 경찰이 차를 세우더니 또 뜯어갔다. 눈 멀쩡히 뜨고 날강도한테 강탈당한 거나 매한가지다.    

과속이나 신호위반도 아닌데 다짜고짜 차를 세우고는 운전자를 밖으로 불러내더니 차 뒤에서 오래 말씨름을 하였다.  

무슨 이유인지 명목도 불분명한 채 50 솔을 빼앗긴 기사, 차 문을 닫고 운전대를 잡더니 경찰 참 나쁜 X이라 욕을 했다,

대명천지 선진국에서는 치사하고 야비하고 추접스러운 잡범 짓거리하는 그런 쪼잔한 경찰은 상상도 못 할 노릇이다.

양아치나 조폭이 금품을 갈취하는 행위를 삥 뜯는다고 한다.

공무집행 중에 삥을 뜯어내는, 후진국형 비리와 부정부패가 만연한 사회는 공신력이 바로 설 수 없는 불신사회, 병소 완전히

도려내고 소독 후 말끔하게 봉합처리하기 전까지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회다.

윗물이 맑지 못하니 아랫물도 지저분하기 마련.

아랫사람은 자리보전을 위해 상납이란 음성적 뇌물을 바치는, 이를테면 상하가 한 고리로 얽혀있는 구조다.

이를 원천 차단하고 완전히 근절시키려면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고 고속도로 순찰대가 발족된 60년대 초창기, 그 자리는 일 년 안에 집 한 채 생기는 자리라고들 할 정도였다.

순찰 경찰의 봉급 외 잡수입은 당연 불법 부당한 소득, 국민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가 정화되면서 한국에서 자취 사라진 지 오래다.

더구나 김영란법이 서슬 퍼렇게 시행 중이라니 사회 전반의 비리 청산 깨끗하게 되는 날, 한국도 선진국 진입이 앞당겨질 터다. (비정상으로 돌아가는 이즈음 정국으로 봐서는 극히 비관적 부정적으로 바뀌었지만)

결국 국가 청렴도는 한나라의 위상을 잴 수 있는 바로미터다.

경제 호조 보이는 중국이 제아무리 G2 거론하며 미국과 맞먹으려 들지만 정치체제, 삶의 질, 인권, 민도 수준으로 볼 때  선진국되기 구조적으로 어렵다.

땅덩이 크고 인구 많고 경제규모 탄탄하다 해도 하다못해 일본이나 싱가포르보다 선진국 반열의 대우받지 못하는 이유가 그 때문.

마찬가지로 남미 각 나라 산유국일지라도 도시 중심지에 아르마스 광장이 버티고 있다면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신뢰하기 어려운 정치체제라는 얘기다.

아르마스는 무기 혹은 군대를 뜻하는 단어로 어쩌면 남미 국가의 특성을 이보다 더 단적으로 대변해 주는 말이 있을까 싶다.

그만큼 총칼 앞세운 전쟁이나 쿠데타 등 정변 잦은 나라라 무인이 득세, 어디나 마을 중앙엔 기세등등한 장군 동상 버티고 서있었다.

정세 불안정한 여행지에서 만난, 배낭 메고 수개월째 남미 각국을 다닌 용감무쌍한 이들의 여행담 나아가 무용담 들어보면 한마디로 기가 찬다.

카드, 현금, 카메라, 휴대폰, 배낭까지 통째로 소매치기당하기 다반사로 대개 한 번씩은 겪어봤다는데 이게 남미 현 실상이자 수준이다.

심지어 치안 허술한 몇몇 남미 국가에선 가짜 경찰에 가짜 택시 기사가 대낮에 강도로 돌변한다거나 무장강도마저 설친다는데 이르러선 말문 막혔다.

그럼에도 날로 늘어나는 남미의 한국인 배낭족, 젊어서 '지도 밖으로 행군해 보라' 꼬드긴 어떤 사람에게도 일정 책임이 없잖아 있겠다.

그녀의 긍정적 사고와 도전정신은 높이 사나, 제자리에서 정착 안주 못하고 집시처럼 배회하는 청춘들에게 왜곡되고 미화된 여행정보를 흘린 그녀.

미답의 세계에 대해 판타스틱한 꿈만 키워줘 젊음의 황금 같은 시간 길에서 허랑방탕 낭비하게 했기 때문이다.

물론 선택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고 나아가 길을 걸으며 얻은 것도 많다고 항변하겠지만 부모 입장이 돼도 그런 여행을 자기 자식들에게 적극 권장할까.

몇 년 전 언니 친구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떴을 당시, 칠레 어드맨 가를 유랑하던 서른 중반 외아들과 연락이 안 돼 유족들이 애를 태웠다고 했다.

무슨 유행병이나 열풍처럼 낭인 아닌 낭인 되어 실없이 일 년씩 지구촌 떠도는 젊은이들 페루에서도 여러 케이스 접했기에 여간 안타까운 게 아니었다.

그 언니 아들처럼 현실 적응 못하고 분수도 모른 채 이상만 좇으며 젊음의 통과의례나 되듯 무턱대고 배낭 메고 해외로 나가 배회하는 이들.

여행이고 관광이고 travel 어원은 travail로 노고, 고생, 일이라는 뜻임에도 요새는 즐거운 기분전환이니 재충전의 시간 어쩌고 하나 간단히 말해 어딘가로 놀러 가는 것일 뿐.

누구라도 시간과 돈 적절히 허락되면 언제건 가능한 놀이요 도락이다.


남미 여행 중 현금이나 귀중품 털리는 경우 허다해 절대 튀지 않는 수수한 차림 하라는 조언 잘 따라서인지 그런 사고 안 당한 것만도 다행이라면 다행.

대신, 안 봐도 좋은 부정직하고 불의한 현장을 똑똑히 그것도 몇 번이나 목도하고야 말았다.

어쩌면 여행은 이처럼 현장 인생 공부, 세상 공부 시키는 말 없는 스승인지도 모르겠다.   2017

***벌써 칠 년 전 일이니 그동안 좀  변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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