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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l 17. 2024

해몽과 이몽

장마 기간에 만나는 푸른 하늘과 햇빛은 이산가족 상봉 같은 반가움이고 어쩌다 받아 본 축복처럼 고맙기만 하다.

태양빛이 금쪽같이 아까워 이웃동네까지 천천히 걷기로 했다.

발목뼈를 다쳐 보름여만에 바깥나들이를 하려니 다리가 약간 휘청거렸다.

아직 균형감각에 자신이 없어 오뚝한 바닷가 오솔길 대신 편편한 도로변 산자락을 따라 걸었다.

한치 빈 공간이나 틈새도 없을만치 온갖 방초 우거진 잡목숲은 녹음 욱욱했다.

칠월 숲 언저리는 30대 한창 젊은이처럼 무성하게 벋어 오르는 칡덩굴로 더할 나위 없이 기운차 보였다.

얼마 전 아들하고 차를 타고 가다가 곁을 따르는 숲을 보며 "저 산은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겠네" 하자 "등산로 아니면 접근할 엄두도 못 내요" 했다.

그 정도로 아마존 밀림 못잖게 숲 조밀한 한국이라, 기존에 열려있는 산길 외엔 멋대로 진입할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한 숲이 대견스러웠다.  

무심코 발길은 산기슭 공한지, 축대 쌓아 택지를 만들고 있는 언덕길로 이어졌다.

주변 노대지마다 토사 유실을 막는 방제용이듯 튼실하게 받쳐주는 칡이 한창이었기 때문이다.  

칡덩굴 그새 칡꽃이 폈던지 제 발치에 보라색 흔적 남기고 가뭇없이 졌고 허공으로 무수히 내민 촉수마다 얼크러설크러 진 채 압도하듯 건강미 흘러넘쳤다.   

온누리 삼라만상이 한껏 푸르른 한국의 산야에서 새삼 느꼈지만, 특히 여름철 칡만큼 왕성한 생명력의 원형을 드러내는 식물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그때 칡덩굴 위로 고추잠자리 떼가 어지러이 날아다니는 게 보였다.

공터 가장자리에 무궁화 한창이기에 아니 벌써? 했는데 고추잠자리까지 제철인 양 떼 지어 날다니...

무궁화꽃 피면 찬바람 난다고 했거니와 보통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나타나는 고추잠자리인데 여름이 무르익어가는 7월 중순에 고추잠자리 떼라니...

자유로이 창공 선회하는 잠자리를 사진에 담아보려고 폰을 드높이 올리고는 한참 동안 잠자리 떼만 주시했다.

녀석들은 어찌나 기민한지 순간포착 기회를 호락호락 허락하지 않았다.

두 다리를 삼각대처럼 펼치고 한 십여분을 그런 자세로 꼼짝하지 않고 서있었으리라.

노란색 지게차가 입구에서 멈칫거리기에 이쪽 길로 들어서려나보다 싶어 한켠으로 비켜섰다.

그러자 지게차 운전자는 얼른 손을 흔들어 아니라는 사인을 보내더니 차창을 내리고는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부터 했다.

사모님께 명함 하나 드리고 가려구요, 깔끔하게 생긴 젊은이는 그렇게 말했다.

필요하면 전화 주세요, 하며 내미는 명함을 받아 드는 순간 상황이 정리됐다.

3.5톤에서 20톤까지 상시 처리할 수 있는 지게차 다량보유...

생활에 도움 되는 실속이라고는 한 푼어치 없는 허황된 사람 실없이 잠자리 떼나 좇고 있는데, 치열한 삶의 현장 그 일선에 나선 젊은이 눈에는 내가 땅 보는 안목 높은 복부인이거나 집장사하는 돈 많은 싸모님으로 보였던 모양.

실소를 금치 못할 해프닝, 착각은 자유이고 아는 만큼 보인다지만 잘못된 해몽(解夢) 아닌 완전 뜻이 다른 이몽(異夢)도 유분수다.

거리에서 광고전단 나눠주듯 오죽 답답하면 달리던 차 멈추고 명함 한 장 전해야 하는, 경제 어려운 작금의 현실이 상기돼 마음 한편 착잡해졌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헌법의 중함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특별한 날, 76주년을 맞는 제헌절이다.


5대 국경일이면서 공휴일이 아니어서일까, 국민적 호응도가 낮아서인지 태극기를 게양한 집이 거의 없다.


경축식은 국회의사당에서 열렸다지만 영 허술한 국경일이다.


어버이날에 찾아오지도 않는 자식 기다리는 부모 마음처럼, 전국가적으로 기려 지지 않는 제헌절, 씁쓸하다 못해 퍽 서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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