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량화 Mar 20. 2024

섶섬이 사라졌다

섶섬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사단은 아니다.

야금야금 조망권이 가려지더니 마침내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거처가 내 소유 건물이라면 진짜 어처구니없는 정도가 아니라 빡치겠다.

처음 이 집에 와보고 단번에 계약했던 이유는 첫째도 둘째도 전망이 좋아서였다.

앞창 너머 서귀포 앞바다에 뜬 섶섬이 한눈에 들어오고 현관문만 열면 한라산이 마주 보이는 장소라니.

이사 후 옆집 여선생과 저녁을 같이 먹는 날이면 스카이라운지  따로 없다며 우리가 누리는 축복에 기꺼워했다.


짙은 해무로 가려졌거나, 거친 폭우로 잠시 숨었다면 날씨 들기 기다리면 되지만 앞 건물에 완전 잠식당해 버릴 섶섬.  


남창에 전개되던 근사한 조망권은  이제 잊기로 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던가.


저 아래 빼뚜름 잡초 무성하던 자투리땅에 어느 봄날부터 신축 공사가 시작됐으니 구경꾼 노릇이나 밖에.


서귀포 도심 건축물은 고도제한선이 13층까지다.


혹시나? 그러다 설마? 하다가 공사장 앞에 붙은 안내문을 얼핏 봤다.


다행히 9층짜리 오피스텔을 짓는다기에 12층에 사는 터라 안심이 됐다.


그렇게 눈앞 자투리땅 옹색한 공지에 건축시공 현장이 차려진 건 지난해 이다.


가끔 눈발 흩날리는 중에도 지하 깊숙이 파고 들어가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새벽부터 들려오는 굴착기 굉음은 날카롭고 시끄러웠다.


땅을 파고 다지고 배관 작업에 콘크리트 작업 등등 기초공사가 좀 복잡하랴.


한 달 넘어 그 공사는 계속됐으나 그나마 창을 닫고 사는 철이라 견딜만했다.


마침 동백꽃 유채꽃 찾아다닐 즈음이라 아침이면 나가 저녁답에 귀가했다.


좋은 핑곗거리까지 생겨 주야장천 밖으로 만 싸돌아다녔다.


공사판 앞을 지나다가 다시금 커튼 월에 붙여진, 시청 건설과로부터 받은 건축승인 내용을 어봤다.


어마 무시라! 요 솔아터진 대지에 지하 2층 지상 9층짜리 건물이 들어선다고?


그 당장 번개처럼 스쳐가는 한 생각.


건축물이 완공되면 서귀포 앞바다에 뜬 섶섬과 제지기오름이 마주 보이던 시야는 어찌 되누?


내 집도 아니면서 조망권 타령으로 은근 마음이 복잡해졌다.


별 걱정을 다 하네! 심란해봤자다. 알 게 뭐야! 놀러나 가자.




땅을 다지는 작업은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맞아, 어떤 일이든 기초공사가 탄탄하게 잘돼있어야 하니까.


세 방향 빙 둘러 기존 상가건물과 주택이 조밀하게 들어서 있는 땅이다.


벽을 맞대게 된 건물주도 있는데 저만치 위에서 내려다보면서야 군입 뗄 입장이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공사가 진행될수록 저 집주인들 진짜 앞으로 스트레스 꽤나 받겠구나.


불구경하며 불에 타버릴 집이 없어 좋아했다는 거지 부자 얘기가 우스갯 감만은 아니었다.


드디어 일층 공사가 시작됐다.


날마다 뚝딱뚝딱, 와장창 벽돌과 철근이 부려지는가 하면 하얀 안전모를 쓴 조그만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파란색 차일막이 빙빙 둘러 쳐지고 철근이 바닥에 촘촘 박히더니 합판이 덧대졌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건축현장을 목도하긴 첨.


대형 크레인이 우뚝 솟아 일출 장관을 훼방놓으며 전망 그림을 곱다시 버려 놓았다.


에라, 모르겠다. 뒷짐 쥐고 구경이나 하자.


예전 위태위태 등짐 져 나르던 자재를 2.5톤  크레인이 단숨에 해결해 주는데 하긴 무슨 같잖은 타박이고.


그때까지만 해도 한번씩 내려다만 봤지 사진에 담을 생각은 전혀 못 했다.


해가 긴 봄, 쑥쑥 자라는 식물처럼 건물은 한 층씩 기세좋게 치고 올라갔다.

 

오월부터 유월까지 날씨는 날마다 오리무중, 짙게 낀 안개에다 비마저 오락가락.


소음 탓을 하며 날마다 들로 산으로 내빼던 발길이 묶이고 말았다.


공사현장은 안갯속에서도 작업을 지속해 나갔으나 폭우가 쏟아지면 도리 없었다.


거의 날마다 비가 오다시피 하는 궂은 날씨.


건축이 지연될수록 건축주는 대출이자 등 부담이 가중돼 조바심이 날 게다.


그렇다고 조급한 마음에 서둘러서도 절대  안되는 일.


부실시공은 엄청난 재난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70년 초 어느 날 길거리에 뿌려진 호외에는 언덕배기에서 무너져내린 오 층짜리 아파트가 대문짝만 하게 박혀 있었다.


노후 아파트도 아닌 준공 4개월 된 새 아파트였다.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낸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는 부정 비리에 따른 부실 공사로 인한 사고였다.


하지만 근본 원인은 뭐든 빨리빨리 속도 제일주의 그리고 졸속 행정이 문제였다.


그 외에 무단 구조변경에 따른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만으로 그쳤는가?


근자의 GS건설 사고를 통해 설계 감리 시공 어느 한 가지만 부실해도 큰 사고로 이어진다는 걸 재확인했다.


작은 하자가 엄청난 사고로 연결되었으니까.


크게 이슈화된 사고는 건설사와 기존의 자이 아파트 브랜드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입혔다.


그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아래 건축현장을 눈여겨보게 됐고 사진을 찍어두기 시작한 게.


특히 철근 공사를 하거나  콘크리트 타설작업 시 신경이 더 쓰였다.


사고 발생의 주원인이 철근 빼먹기와 우중 콘크리트 타설이었기 때문.


타설이라는 단어 뜻도 이때 첨 알았다.


하루하루 건축현장을 들여다 보노라니 나름 특이한 글감이 되고도 남겠다 싶었다.


세심한 관찰이 자연스레 따랐다.


작업이 새로울수록 신기방기해 호기심이 부쩍 늘어났다.


작업 인부들은 그들을 이리 주시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모르리라.


하긴 현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자의에 의해서 건, 타의 건 간에 초정밀 레이더망에 걸려들어 있으니까.


지난 행적이 구글 지도에 고스란히 새겨지는 세상을 사는 우리이니까.




뼈대 격인 철근이 그리도 많이 들어가니 건물이 잘 지탱되는 거였구나.

대형 크레인이 물어다 내려놓은 철근 수북, 벽제 골조를 박는데 그 많은 양이 다 소진됐다.

마치 가시 많은 준치 생선처럼 골조가 매우 조밀하게 짜여지곤 했다.

하루는 이른 새벽, 여명이 트기도 전인데 어떤 사람 홀로 와서 건물 바닥에 깔린 골조를 일일이 점검하며 뭔가로 더러 묶기도 하였다.

보통 일곱시부터 작업이 시작되므로 아직 인부들이 출근하기 전, 현장감독이 미리 와 현재 진행상 문제는 없는지 상황을 확인하는 듯 했다.

블랙홀처럼 뻥 뚫린 사각진 공간에서 사람들이 하나씩 올라오면서 그 사람을 향해 인사하는 걸로 미루어 짐작이 얼추 맞지 싶었다.


올여름 염제는 유례없이 지독스러웠다.

24시간 에어컨을 켜고도 덥다고 난리들이었다.

더위를 별로 안 타는 나조차 한낮에는 밖에 나서길 꺼릴 정도였다.

더군다나 폭염경보 발령 문자가 연신 날라와 노약자는 특히 온열증 조심하라며 낮에는 아예 꼼짝 말란다.

땡볕 하도 강렬해 머리꼭지 숱이 줄어들 지경이었다.

놀면서도 헥헥대는데 그럼에도 공사현장 인부들은 그늘 하나 없는 데서 작업 중이다.

물론 정오부터 한 시간 점심시간이 있지만 오후에도 네댓시까지 계속되는 일이다.

시에스타가 이럴 때야말로 절실히 요구되는 시스템이 아닐까.

요즘 인부들 거개가 동남아인들로 구성돼 있다시피 하다.

아무리 아열대 지역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라도 적응도야 높겠지만 인간 신체 구조는 다 마찬가지.

땀샘이 그들이라고 더 많이 분포돼 있을까.

저마다 살아간다는 게, 생존이라는 게 고군분투의 연속으로 얼마나 격심한 자신과의 투쟁이 수반돼야 하는가.

짠한 생각에 잠겼다가 문득, 사우디로 리비아로 건설 현장 파견 노동자되어 나가면 집 한 채를 벌어온다고 했던 과거사가 떠올랐다.

열사의 땅에서 비오듯 땀 흘리며 휘몰아치는 모래바람 맞으면서 외화벌이 하던 사람들은 한해 지나 새카맣게 탄 얼굴로 귀국했다.

당시 개발도상국이었던 우리도 산업역군이란 미명 아래 그리 살았구나, 그렇게 힘들게 살아냈구나.

젊은 시절의 그들과는 동질의 억척스러움을 공유하며 근면과 내핍생활이 몸에 밴 동시대를 살았던 터다.

산업전사들에게 묵념이라도 올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면 요새 애들은 웃겠지만...

 

 
골조를 (아마도 철사로 엮어서) 고정시킨 다음 합판으로 감싸주는 걸 지켜보면서 한사람 한사람 자기 맡은 바 역할에 열심임이 느껴졌다.

진지하게 맡겨진 제 몫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숭고하다.

이런 말이 전해내려 온다.

세 사람의 벽돌공이 귀맞춰 벽돌을 쌓아 올려 성전을 짓고 있었다.

그 셋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동일한 질문을 했다.

첫째는 벽돌을 쌓는다고 대답했고 두번째는 건물을 짓는다고 했으며 세번째는 하느님의 집을 짓고 있노라고 답했다.

얼핏 세번 째 벽돌공이 훌륭하게 여겨지겠지만, 또 그렇게 주입시켜 왔지만 우열을 비교해 가르는 것도 교만이 아닐까.   

가족들을 위한 밥법이 수단이든, 기술공으로 직업적 일을 하든, 사명감을 갖고 천직에 임하든, 다 똑같이 존귀하다.  

정당한 노동행위라면 숭고함에 있어 높낮이가 있을 수 없다고 여겨진다.

그처럼 저 아래서 묵묵히 엎드려 작업에 임하는 그 누구 하나도 건성으로 설렁설렁 일을 대충 하지는 않았다.

이제는 사방에서 일거수일투족을 무시로 감시하는 세상이 아닌가.

그럼에도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내 집 일하듯 하나부터 열까지 철두철미 꼼꼼스레 한다면야 사고가 왜 나랴.

그날은 몇 층인지 바닥을 덮는 날이었다

천정에 철근을 깔다시피 촘촘 얹고 합판을 덮어 그 위에다 콘크리트 타설을 해주면 된다.

바로 그날 갑작스레 소나기가 쏟아졌다.

창밖을 내다보던 나까지 걱정이 됐다.

이미 콘크리트를 붓고 고무래로 반반하게 다지는 중인데 어쩌나.

비가 계속 오자 인부들이 우비를 입고 현장으 올라와서 콘크리트 위에다 대형 비닐을 덮었다.

질퍽거릴 양회 반죽이니 쑥쑥 발이 빠질 터라 다들 긴 장화를 신었다.

그나마 하늘이 도와 비는 일찍 그쳤고 이튿날 어느새 콘크리트는 단단히 굳어있었다.





가을 들어 공사현장 앞을 지나다가 현재 몇 층까지 진행된 상태냐고 물었더니 칠 층 째란다.

바로 옆 7층짜리 건물이 아래로 축 처진 걸 보면 이 건물은 유달리 한 층 높이가 높은 거 같았다.

어느새 섶섬 하단을 꽤 갉아먹었는데 아니 그럼 아직도 두 층이나 더 올려 건물이 완공되면 섶섬은?

그때부터 완전히 포기한 섶섬이긴 하다.

대신 쪼르르~ 자구리해안으로 내려가서 섶섬을 보면 되지 뭐!

조석으로 바라보던 섶섬이 당장 내 시야에서 사라졌을 뿐 그 섬은 항상 거기 존재하니까.

층수가 제법 올라와 그새 7층에 이르렀다.


시간은 기초작업이 오래 걸리지 그에 반해 층수 올라가는 건 비교적 빠르다.


그즈음 일하는 분들이 하루하루 부쩍 커졌다.


이제 섶섬이 문제가 아니라 건물이 앞을 탁 가려 답답해졌다.

이미 여기서 살 작정으로 일 년 더 연장도 해둔 터, 시야 답답하면 그 대신 밖으로 나가면 된다.

걷기를 즐기는 데다가 사철 기후 온화하고 자연환경 더없이 뛰어난 제주섬이 아닌가.

무의식적인지 버릇인지 모르나, 매사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전환하는 능력을 가진 덕에 오케이! 괜찮아! 금방 생각을 돌렸다.

그제야 보였다.

건축현장 옥상에서 마무리 공사에 열심인 사람들 모습을 보자 정신이 확 들었다.

아! 아!!! 아크로바트에 다름 아닌 저 치열한 삶의 현장.

섶섬타령이 무색해지며 숙연해졌다.

작가의 이전글 暮色(모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