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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l 25. 2024

안식년

미주알고주알 일상을 놀이터(블로그)에 시시콜콜 펼쳐놓고 살다 보니 이웃 한 분의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며칠 전 올린 가족사진에서 아들 딸 손자는 있는데 5호의 부재가 은근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분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표현을 안 했다 뿐이지 어딘가 석연찮다며 의아해했을 터다. 가장이 할 일, 이를테면  잔디를 깎고 대문  페인팅을 하고 큰 나무를 자르는 일들을 내가 직접 해냈으니까.



진작에 눈치채신 분도 있겠지만, 말 못 할 사연도 아니니 굳이 감출 거 까진 없으나 그렇다고 굳이 밝힐 필요도 없었던 개인적인 일. 이제 남편인 요셉 이야기를 할 때가 된 거 같다. 달콤한 나의 안식년도 불원간 끝날 것 같은 조짐느껴지는 요즘이니까. 숲 속 벤치에 앉아 평화로이 누린 한때의 여유 같은 휴식기, 정말이지 전혀 생각지 않았던 결혼 안식년이 뜻밖에도 내게 주어졌다. 그것도 흐르는 물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캘리포니아와는 달리 부동산 매매 성사가 정승벼슬하기보다 힘들다고 하는 뉴저지이다. 서서히 딸이 사는 캘리 쪽으로 옮겨 올 계획의 첫 단계로 집을 내놓자마자 얼떨결에 덜커덩 집이 팔렸다. 좋은 가격에 금방 집매매가 이뤄지자 지인들로부터 시샘 어린 축하인사까지 받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던 체리힐은 텍스가 턱없이 높게 책정돼, 은퇴자의 경우 이를 퍽 부담스레 여기던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인근 델라웨어주는 세금이 거의 없다시피 낮아 그쪽으로 이주를 희망하는 데, 문제는 집이 팔리지 않아 몇 년째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묶여있는 댁들이 적잖았다. 운 좋게 선뜻 집이 팔리듯이 가게도 매물로 내놓으면 그처럼 수월하게 정리되겠거니 하고 냉큼 캘리 쪽에 작은 집(뉴저지 대비 주택 가격이 서너 배 비싸서)을 마련했다.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나부터 일단 이사를 왔다. 그렇게 나의 안식년은 시작되었다.



한편 요셉은 아직 뉴저지를 떠나지 못하고 고달프게 가게를 운영하며 몇 년째 홀로 지낸다. 주말부부도, 접근금지처분을
받은 기간도 아닌데 생짜배기로 나눠져 살고 있다. 비즈니스가 정리 되지를 않아서이다. 계속되는 불경기의 여파로 매매가
여태껏 이뤄지질 않는 것이다. 반탱이에 이고 다니며 팔 수 있는 떡도 아니고, 떨이를 외치며 팔아치울 수 있는 옷가지도 아니다. 대단한 비즈니스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그냥 내던지고 올 수도 없는 노릇. 일이 성사될 듯하다가도 도중에 결렬 돼버리곤 해 요셉은 여간 실망하는 게 아니었다. 욕심이 일을 그르친다는데 크게 바라는 것도 아니건만, 아직은 때에 이르지 않았다는 듯 번번 깨지고 말았다. 그때마다 자기가 갚을 빚이 더 있어 보속을 좀 더 해야 하는 모양이라며, 하늘에서 풀어주시지 않으니 어쩔 도리 없다고 체념했다. 여기서 말하는 빚은 젊은 날 내게 진 빚으로, 신실한 기도생활 통해 자기 죄 통렬히 깨우친 요셉이다. ㅎ

   

뉴저지 친구들은 천국이 따로 없겠다며 심신 한껏 자유롭고 편해진 나를 아주 부러워했다. 전생에 나라 구한 장수인가 도대체 무
슨 복이냐면서 굉장한 횡재라도 한 듯이 여겼다. 세상천지 구애받을 거 없으니 맘 편해서 아마도 살이 퉁실퉁실 쪘을 거라고도 했다. 그럼에도 매양 그타령인 체중, 아니 나이 들수록 오히려 살이 빠진다 하면 은총이 가득하신 그대여! 하는 친구들. 비쩍 말라 주름살만 풀어놓고 산다 해도 무조건 좋겠단다. 아무나 안식년 주어지는 거냐며 그간 열심히 살았고 하느님 보시기에 잘 살았으니 주어진 특별 보너스라고 추켜도 준다. 특히 늙어가면서 더 깐깐해지고 괴팍스러워지는 남편을 뫼(!)시고 사는 친구는 내가 너무너무 부럽기만 하단다. 요즘 젊은 세대와는 달리, 나이 지긋한 층은 미국살이를 오래 했음에도 권위적인 가부장제 사고가 알게 모르게 몸에 배어있어 은연중 안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물론 전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녕 신통방통한 일이 아닌가. 전혀 기대해 본 바 없는 뜻밖의 선물, 어떻게 이런 특혜를 다 받을 수 있는지
스스로도 놀랍고 신기하다. 결혼해 살며 원한다 하여 아무나 누릴 수 없는 安息年이다. 원래 안식년제는 교수나 목회자들이 직분을 맡은 지 7년째가 되면 한 해 쉬면서, 지친 심신을 추스르고 나아가 재충전할 기회를 갖게 하는 제도이다. 안식년 즉 sabbath year는 구약성서에서 유래했다는데 칠 년마다 농사를 짓지 않고 농지를 쉬게 하여 약해진 땅심을 북돋아주
는 휴식의 시기다. 곁눈질하지 않고 한길로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다한 사람에게, 무거이 지워진 짐 모두 내려놓고 편히 쉬
라며 안식년은 주어진다. 그만한 배려를 받을 만큼 성실하게 살아온 것도 아닌데 무얼 어여삐 보셨는지 하늘에서 과분한 축복을 내려주셨다. 그 덕에 거칠 것 없이 맘껏 블로그놀이 즐기며 이틀이 멀다 하고 잡다한 단상을 풀어제쳤다. 한 사람의 정신세계 내지 두뇌영역은 한정돼 있어, 글 써봐야 맨날 엇비슷한 그타령이다. 빤한 레퍼토리에 식상할 법도 한데, 늘 관심 갖고 호응해 주시는 이웃지기님이 그래서 고맙다.  



어릴 적, 양쪽 볼로 번갈아 옮겨가며 녹여먹던 알사탕이 점점 줄어들면 아깝고도 감질나던 기분 같은 안식년. 언제까지일지 정해진 기한은 없으나, 그만하면 이제 요셉의 연금도 해제될 때가 되었으니 달달한 나의 안식년이 끝날 날도 머잖은 것 같다. 동시에 만판 자유롭던 내 놀이시간도 어느 정도 제약은 불가피해지지 않겠나 싶다. 남편은 뉴저지에, 아들은 한국에, 딸은 캘리에, 나는 딸 집에서 두 시간 거리인 외곽지에, 이처럼 뿔뿔이 흩어져 이산가족으로 사는 일도 딴은 좀 부자연스럽다. 그럼에도 안식년이 막을 내리게 됨은 솔직히 아쉬운 일이다. 허나 한편 기다려지는 것이, 차를 몰고 둘이서 대륙횡단을 하기로 했으니 이 아니 좋을쏜가~ 2016

대륙횡단 여행 계획은 폭설로 무산되었으며

요셉이 캘리로 합류한 일 년 후 나 혼자 한국을 방문했다가 전격적으로 리턴 결정. 요셉은 미국이 만고 편하다니 각각 편한 곳에서 지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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