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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l 30. 2024

물꽃 찾아보려 잠수함 타다

생래적으로 할 줄 아는 운동이라곤 걷기뿐이다.

게다가 운전대만 잡으면 어깨가 경직돼 운전도 못하는 천상 미개인이다.

그래서 택한 곳이다.

한라산 품 안에 오름 숱하고 섬을 빙 둘러 올레길 나있어 걷기 최적화된 제주도이므로.

이민살이 이십여 성상, 이미 노매드의 이력도 붙었는데 타고난 역마살이 또 도졌던가.

2021년 가을, 아는 이 하나 없는 생판 낯선 서귀포에 들어왔다.

검색 끝에 무조건 교통 좋고 가로등 밝은 중앙로터리 인근에 자리를 잡았다.

이태 넘게 살며 하늘만 번 하면 제주 곳곳을 종횡무진 쏘다녔다.

동으로 서로 혹은 한라산을 좌우로 넘나들며 사통팔달 들쑤시고 다니니 신명 한번 제대로 지폈다.

이게 바로 참다운 실존인 야, 진짜 사는 맛이 났다.

어절씨구 좋구나 좋아! 날마다 흥이 올랐다.

하루하루 재미가 진진했다.

매순간 행복의 연속이었다.

다이돌핀이 팍팍 샘솟았다.

나날이 말 그대로 화양연화였다.

성산읍에서 환해장성로를 따라 바다 끼고 걷던 어느날이다.

그날 역시 어깨에 날개라도 돋은 양 사뿐히 이십여 킬로 넘게 걸었다.

신양리를 거쳐 온평리 신산리 삼달리 신풍리 신천리...

다음 날 연달아 표선에서 남원 태흥리에 이르렀다.

그러나...짙푸른 바닷가에서 절로 탄식이 터졌다.

겉보기엔 멀쩡하나 속 골병 깊이 든 바닷속 형편을 듣고 나서다.

태흥리 해안에서 오징어를 말리고 있는 한 노인으로부터 바닷가에 둘러선 양식장으로 인한 폐해 전말을 듣게 됐.

양식장이 스물네시간 쏟아내는 오폐수로  인근 해역이 하얗게 죽어가고 있다는 데야.

그외에도 연안 생태계를 오염시키는 여러 종의 하수 방류로 백화현상이 심화되면서 사막화가 급속도로 진행돼 가는 안타까운 바다.

그로부터 얼마후 제주 해녀를 다룬 다큐영화 '물꽃의 전설'을 보게 됐다.

이 영화는 서귀포 삼달리 앞바다가 무대다.

바다를 생존의 터로 삼은 제주 해녀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다.

아흔이 넘은 할머니 현순직 상군 해녀와 서른몇에 해녀가 된 막내 해녀 채지애가 주인공이다.

삼달리 바다에서 물질을 하는 현역 해녀인 두 사람도 제주 사람이고 감독 고희영도 제주 출신이다.

제주에서 제주사람들이 만든 영화를 특별 상영하던 날.

슈퍼 블루문이 뜬 특이한 밤이었다.

제주도의 최고령 해녀인 현할머니에게는 혼자만 아는 비경의 '들물여'가 있다.

여든일곱 해 물질을 하며 숨겨둔 바닷속 '비밀 곳간'인 장소다.

전복과 소라가 가득 널린 풍요의 바다로, 아름다운 물꽃이 피어나는 환상적인 그곳.

하지만 워낙 수심이 깊은 데다 조류가 세서 웬만한 상군 해녀들도 접근하기 어렵다.

이제 그녀는 나이가 들어 힘이 부쳐서도 더는 물여에 가지 못한다.

가 본들 그 바다 또한 양식장에서 밤낮없이 흘려보내는 오폐수로 이미 사막화가 깊어지고 있을 게다.

감태나 파래, 미역 다시마 같은 갈조류가 뿌리내릴 수 없어 이를 먹이로 삼는 어패류들도 자라지 못한다.

갈조류와 어패류가 깃들지 못하는 바다에 고기떼 역시 깃들 수가 없다.





용궁이 있다는 신비로운 해저는 이미 깊이 병들어 골골대느라 생명체를 보듬을 수 없는 형편.

백화현상이 나타날 정도로 황량해진 바다라  해녀들의 물질 영역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미 상군해녀는 은퇴했음에도 매양 바다를 바라보며 예전 그 들물여를 그리워한다.

오랜날 깊은 숨 참으며 헤엄쳐 드나들던  바위 벽에 함빡 피어있던 물꽃 여전히 가슴에 품고 사는 현 할머니. 

여덟살부터 물질을 해왔다는데 구십을 훌쩍 넘겼어도 현역이고 싶은 상군해녀다.

영화는 어느 날 마을에 막내 해녀들어오면서 시작된다.

상군해녀 할머니와 막내딸같은 애기해녀, 두 사람은 물질 경험나눠주고 익히면서 살뜰한 정을 쌓아 나간다.

다큐를 찍는 6년 사이 바다는 점점 더 빠르게 사막화되어 갔다.

이 영화는, 바다가 더 이상 버텨낼 수 없어 안간힘쓰면서 살려달라고 외치는 탄원서에 다름 아니다.

안타까운 그 현실을 감독은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었던 것이리라.

나아가 가뭇없이 소멸돼 가는 것들에게 바치는 조사이기도 하리라.

더는 버틸 여력이 없다고 말없이 호소하는 제주 바다.

광부들은 작업 전에 미리 유독가스에 민감한 카나리아를 탄광 안으로 들여보낸다고 한다.

전신으로 바다속 생태계를 낱낱이 체득한 해녀들이야 말로 해저로 날린 카나리아라고 감독은 말한다.

해녀들은 누구보다 절실하게 바닷속 생태계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는 사람들.

소라 전복 잡아 자식들 먹이고 공부시킨 삶의 터전이었던 바다가 이젠 더는 건져올릴 게 없다는 현실 앞에 해녀들은 억장이 무너진다.

수질 오염으로 바다가 죽어간다고, 회복불가 상태로 바다가 위험지경에 빠졌다고 영화가 대신 외쳐대고 .

고희영 감독은 첫 장편 영화 '물숨'으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수상을 했으며  

이후 제33회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인 ‘물꽃의 전설’을 여러해만에 완성시켰다.

그러는 동안 세월은 계속 흘러갔다.  

머잖아 백수에 이를 고령에도 정정하신 상군해녀인 현 할머니는 물질 경력이 87년.

허리 반듯하고 총기 또렷한 그분은 비밀 곳간인 들물여에 펼쳐진 환상적인 물꽃의 전설을 못잊어 하신다.

그분이 기억하는 물꽃은 분홍색 산호인 ‘밤수지맨드라미’로 멸종위기에 처한 해양보호생물이다.

산호초을 때만해도 수중촬영 화상도는 매우 선명했다.

그런데 어쩌다 그 아름답던 바닷속이 사막화되어 진분홍 고운 물꽃은 전설이 돼버려야 을까.

영화의 여운은 쉬 잊혀지지 않았고 서귀포 앞바다 해저에 대한 호기심은 점점 더 증폭돼 갔다.

서귀 포구 앞 문섬과 범섬 주변의 산호초 군락은 스쿠버 다이버들에게 최고의 인기  포인트로 알려져 있다.

산호초 사이로 색상 화려한 열대어 노니는 수중은 황홀하기 짝이 없다는데.

수영도 못하는 입장에 스쿠버는 감히 엄두조차 낼 수가 없는데 무슨 수로 바다 속을 들여다 보랴.

그러던 중 수중 탐방의 기회가 왔다.

환경단체의 반대로 몇년째 운항이 중단됐던 서귀포잠수함 관광이 한시적으로 재개된 것.

한라산 자태 오랜만에 또렷한 아침이었다.

날씨 좋은날이 오후 예약을 하고 사무실에 가 승선신고서를 작성해 창구에 제출했다.

도민 할인을 받아 티켓을 52.000원에 현장 구매했는데 탑승 티켓 정가는 65.000원이며 전체 관광시간은  한시간 이십분이었다.

새연교 앞 선착장에서 일단 셔틀 배를 타고 이동하는데 바다 위에 연꽃처럼 뜬 범섬, 섶섬, 문섬, 새섬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중에도 문섬은 범섬과 함께 문화재청이 지정한 천연기념물로 보호구역에 속한다.

타고온 배가 문섬 가까이로 바짝 다가가 잠수정이 대기하고 있는 바지선으로 옮겨탔다.

거기서 잠수함 승선 전에 서비스 차원에서 기념사진을 한장씩 찍어줬다.

바지선에서 올려다 본 문섬 기슭에는 푸른 숲과 어우러진 주황색 꽃이 곳곳에 피어있었다.

나리꽃인가 했는데 의외로 능소화라고 했다.

잠수정에 올라 작고 가파른 통로 사다리를 통해 잠수함 내부로 내려갔다.

둥근 창이 양측에 나있는 탑승선 좌석은 직원의 안내에 따라 배치 받은 다음 앉았다.

탑승 중 주의사항 등 안내방송을 들을 수 있는 모니터 외에수심 표시 계기가 전방에 장착돼 있었다.

머리 위 천정 둥근 뚜껑이 닫히자 잠수함은 하강을 시작했다. 

처음엔 해조류만 흘러다니더니 점차 내려갈수록 돌돔 놀래미 자리돔이 왔다갔다 빠르게 움직였다.

다만 유감인 것은 기대만큼 물빛이 맑지가 않았다.

역시나 우려했던 대로다.

마치 관리가 잘 안된 수족관을 쳐다보는 느낌이었다.

내려갈수록 산호초가 보이는 심해는 어두워 라이트가 켜졌으나 여전 시계는 희뿜했다.

이날 종일 날씨는 쾌청했음에도 바다 아래는 시야가 맑게 트이질 않았다.

과거 원양선으로 활약하다 좌초된 난파선이 나타났는데 여기가 그나마 인상적이었다.

바다 밑 40미터에 가라앉은 난파선은 바다목장이 되어 해조류와 적산호가 자라고 물고기떼 깃들어 살아가고 있었다.

생각같아선 쇠붙이인 배라서 염분에 녹슬면서 산화돼 오염원이 될 거 같았는데 오히려 생태계를 살찌우는 서식장 역할을 했다.

인공어초인 일종의 바다숲을 형성, 어패류들에게 서식환경을 조성해 주는 바다목장 격 이었다.

거기서 그 귀하다는 다금바리도 볼 수가 있었다.

다금바리는 과연 태도 점잖고 의젓했다.

얼마전 캘리 친구가 방문해 대접했던 다금바리라 낯이 익었다.

 사이 한시간이 후딱 지나 잠수함은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쉽지만 바위틈 다금바리 눈여겨 던 걸로 만족하기로 하고, 남태평양 같은 해양 생태계를 꿈꾸기엔 수많은 삶의 양태가 복작대는 섬이란 환경의 열악함을 수긍기로 마음을 바꿨다. 2024 여름


사막화로 치닫는 서귀포 바다를 되살리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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