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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l 30. 2024

가는 세월

한 십 년 전쯤 페이스북을 처음으로 했었습니다.


북이 일반인에게 확대되기 시작한  2006년 초, 일찌감치 손자의 안내로 가입을 했지요.

페북을 시작한 이유는 웹상에 블로그 외의 또 다른 소통 창구를 갖고 싶어서였어요.


블로그 포스팅보다는 운영 관리하기가 훨 간결한 이점도 있었구요.

과연 지평이 무한대로 확대되더군요.

인터넷 접속만 가능하다면 기존의 아는 사람들과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다니 오작교와도 같았지요.

소식 끊긴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해주는 사이트였기에 페이스북은 퍽 매력적이었습니다.

하나 둘 옛 인연을 찾다 보니 '알 수도 있는 사람'이 줄줄이 사탕처럼 딸려 나오더군요.

학연 지연까지 엮여 나오면서 어언 통로가 비좁을 지경이 되더라구요.

주로 취미와 관심사가 같아 8~90년대를 함께 한 부산시대의 지인들이 반색을 하며 다가왔지요.

미국 가더니 종무소식, 내동 침묵만 지키자 대체 어디서 뭐 하고 지내나 궁금하던 차라 많은 벗들이 찾아왔습니다.  

친구 수가 단박에 수십 명에 이르러 창구가 날마다 왁자하니 번다해졌습니다.

짬짬이 하는 페북 놀이는 무척 달콤했습니다.

허나, 세탁소를 하느라 하루 12시간 일더미에 묻히기 예사인 판에 도저히 불감당이었습니다.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여유라고는 퇴근 후 혹은 일요일에나 가능했던 시절이었거든요.

아쉬운 대로의 교류이지만 또한 주말뿐일지언정 '나 여기 살아있음'의 존재 증명만은 페북이 착실히 해주더군요.

그런 중에 페이스북이 실명 등록제인 까닭에 개인 정보 유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비밀 거리도 없는 데다 털어봐야 먼지 밖에 나올 게 없는 지극히 평범한 단순 생활자로 통장도 얇으나, 그래도 정보가 샌다는 건 찝찝하더군요.

어차피 제대로 운영 관리를 못할 바엔 이참 저 참 아예 접는 게 나았지요.

얼마 전 예전 수첩을 펼치다가 페북 비번을 찾았기에, 오랜만에 페이스북을 열어보고는 세월의 무상함을 통감했습니다.

전에 친구 맺기로 연결되었던 분 다수가 보이질 않아서였지요.

십 년 여의 시간이 결코 짧지만은 않았나 봅니다. 특히 나이 묵직이 들어가는 입장에서는요.

처음 한동안 페북에 몰두하다가 곧 접었기에 공백기가 긴 까닭이기도 하겠지만요.


우연히 재접속하고 보니 사라진 이름들이 너무 많아서 가는 세월 아무도 막을 수가 없구나, 심사가 추연해졌답니다.

마치 무도회의 수첩을 넘기듯 애연한 감회는 어쩔 수가 없었답니다.

부산대학에 근무하며 평론가였던 꼿꼿한 김준오 교수님, 싱거운 농을 잘하던 김중하 교수님, 시인 이해주 교수님은 미국까지
신간 시집을 보내주셨는데 이미 유명을 달리하셨더군요.

그즈음까지만 해도 한창때라 불원간 저 역시 금방 나이 들어 쇠하리란 걸 깨우치지는 못했습니다.

세월의 이끼가 더께 지지 않은 채 늘 그대로 일 줄만 알았던 어리석은 오만 혹은 무지 탓이었지요.

문학평론을 하신 묵직한 김천혜 독문학과 교수님, 세미나와 겹쳐 참석을 못 하신다며 제 아들 혼사에 부인을 대신 보내신 소설가 이규정교수님도 어느덧 80대가 되어 지금은 고문에 오르셨데요.

그래도 아직은 생존해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웠습니다.

문단 말미에 있던 당시, 동래구청장이셨던 채낙현 수필가, 문협 회장이던 구연식교수님도 세상을 뜨셨고, 그때 이순을 넘기신 분들은 이제 다들 원로 대접을
받거나 이미 타계하신 분이 적잖았습니다.

아아, 순간 절로 제행무상을 곱씹게 됐습니다.

그 시절 한창 활발히 활동하던 시인 소설가 아동문학가 수필가 들 중 다수가 주거지를 옮기거나 칩거하는지 근황을 알 수 조차
없더군요.

한 달에 한 번은 만나던 여류문인들 역시도 세월을 비켜가지 못하고 속절없이 노인으로 하얘진,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누구가 시간을 거스를 수 있겠나요, 타국살이 하며 저 혼자만 나이테 굵게 보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더라구요.

요즘 협회원들 프로필을 찬찬히 살펴보니 그때 40대이던 사람들은 지금 거의 중진그룹에 속해있고, 그 외 대부분은 낯선
이들뿐이었습니다.

뚜렷하게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것이지요.

미국에 은거한 지 그럭저럭 17년,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가볍지 않은 세월만 그간 무심히 흘러갔다 싶어 허망해집니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가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라는 시구처럼 한번 가면 오지 않는 세상의 시간들이 씁쓸했습니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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