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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l 31. 2024

더위야, 썩 물렀거라!

덥다는 소리가 밤낮없이 저절로 나오는 요즘이다.

체질이 이상해 에어컨이나 선풍기 바람조차 당최 적응이 어렵다.

더위를 심하게 타지 않는 편이기도 하지만 에어컨은 기침을 유발해 거의 안 켠다.


차 안에서도 내 쪽 에어컨은 잠그는  사람이다.


그러나 올핸 밤낮없이 더워도 너무 덥다.


이상기후 징후를 실감하고도 남을 정도로.

그간은 정 더우면 천백 고지로 가거나 치유의 숲으로 내뺐다.

그도 아니라면 해 설핏해질 즈음 슬슬 서귀포 칠십리바다로 향하게 된다.

바다에 발이라도 담가보려면 파도 거칠지 않고 얕아서 안전한 자구리 해안으로 가야 한다.

자구리이중섭 가족이 그랬듯이 주로 자녀들 데리고 물놀이 나온 젊은 층이 많다.

수영 초보자나 스쿠버 연습생들도 여기서 논다.

모래톱은 없으나 대신 반들거리는 조약돌이 깔린 해변, 좁지만 그런대로 피서객이 꽤 모인다.

차디찬 용천수 풀도 있어 물놀이한 다음 민물로 씻을 수 있어서 서귀포 시내에서 슬리퍼 끌고 와도 된다.

엊그제 고살리 탐방로 숲에서 모기에게 뜯긴 자리가 하도 근지러워 바닷물 몇 번 팔에 끼얹은 뒤 소정방으로 갔다.

길목에는 무궁화 백일홍 능소화 등등 성하에 피는 꽃들로 환했다.

비밀의 베일에 싸인 소라의 성을 지나 소정방폭포 깊숙한 벼랑길로 접어든다.


한 줄로 수직낙하하는 정방폭포 위세에 미치지 못해 소정방이다.

물길 여럿으로 갈라져 힘이 분산되기도 했지만 낙폭이 짧아 정방만큼 위용 당당하진 않다.

그 덕에 소정방은 물맞이 장소가 됐다.


이 물줄기는 샘솟아 오른 용천수 모여 모여 흘러서 품질로야 100% 수질 보증.

우리 조상들은 주변 자연환경을 슬기롭게 활용했다.

무더위가 오면 자연에 순응해 산이나 계곡을 찾아 시원한 바람을 쐬거나 물맞이하며 더위를 식혔다.

나아가 이열치열 비법으로 삼복엔 뻘뻘 땀 흘리며 삼계탕 민어탕으로 더위를 쫓았다.

더위야, 썩 물렀거라!

부채질마저 활활 부쳐댈 수 없으니 체통에 맞게 탁족이나 하는 양반님네들.

그와 달리 평민들은 쏟아지는 폭포수 아래서 뼈골까지 션해지는 물맞이를 했다.

바로 이곳 소정방폭포 같은 곳이 물맞이 장소로는 최적지.

별로 이끼가 끼지 않은 바위라 미끄럽지 않고 물살도 생각보다 그다지 세지 않다.

직접 폭포 아래 서서 물맞이를 해볼 엄두까지야 나지 않지만 슬리퍼를 벗고 두발을 물에 담가봤다.

어깨가 움찔해질 만큼 물은 차디찼다.

일 분쯤은 참겠는데 도저히 이 분을 넘기지 못하고 후딱 발을 뺐다.  

겨우 복숭 뼈에 닿을 정도만 담근 발인데도 얼음물이듯 오싹 한기가 들며 으스스 전신이 떨렸다.


짙푸른 염천에 흰 구름 두둥실, 그 아래 절벽에다 드리운 새하얀 주렴.


힘차게 쏟아지는 소정방폭포수 아래서 물맞이하며 함성 지르는 젊은 친구 몇이 신났다.


판초 빌려드릴 게 한번 해보세요. 넘나 시원해요!


손사래질 칠 일이 아니다.


이미 슬그머니 동한 호기심.


판초를 빌려 입고 살살 조심스레 폭포수 아래 바위로 접근해 들어갔다.


물기둥이 아닌 물줄기가 후드득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폭포수 비말 져 내려 수압 그다지 세지 않았으며 냉기 역시 의외로 유순했다.

 32도까지 올라간 폭염 덕인지 물맞이는 짜릿하면서도 너무너무 시원했다.


천진무구한 어린애처럼 순수한 기쁨에 들떠 절로 두 손 마구마구 흔들어댔다.

오우! 와우~~ 오블라디 오블라다!


난생처음 물맞이라는 걸 우연찮게 해 봤다.

옛 민속의 하나로 신경통 열병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지며 절벽에서 쏟아져 내리는 힘찬 폭포수의 세례를 받는다는데.

특히 무더위가 한고비에 이른 백중날 폭포 물을 맞으면 백가지 병이 낫는다 하였다.


여러 고질을 달고 사는 병약한 체질은 전혀 아니나, 다음엔 친구들 불러 특별히 백중맞이 물놀이를 해볼 참.

정녕 심신 건강한 가운데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역시 소정방폭포는 나이 든 층이 찾을만한 호젓한 피서지.

천방지축 뛰는 아이들은 공간이 좁아서도 위험한 편이다.

바로 몇 걸음 앞에 펼쳐진 몽돌해변으로 내려가 바다에 뜬 섶섬을 한동안 바라본다.

검은 절벽에 쉼 없이 밀려와 부딪는 거센 파도 하얗게 부서져 포말로 날린다.

따순 몽돌 위에 맨발로 서있으니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거 같았다.

만일 한 세기 전에 여기 점지된 생이었더라면?

당시 법도라면 감히 아녀자가 집 밖에서 외씨 같은 버선 벗고 발인들 함부로 내보였을까.

예전 아낙들은 그나마도 어둠살 내려야 용천수로 가서 물 끼얹거나 머리를 감았다지.

좋은 시대에 태어나 한세상 살 수 있었으니 이 또한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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