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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ug 01. 2024

가죽을 붓 삼아 그린 혁필

내설악 구불구불 휘감아 올라 미시령 휴게실에 닿았을 때는 먹물 퍼지듯 어둠살 흥건했다. 오세암에서 본 초롱한 별떨기와 은하수가 다시금 생각나는 밤이다. 진하게 달인 약차 한 잔에 소슬한 밤 기운을 다스린 뒤 차는 굽이돌고 돌아 속초를 향해서 내려가고 있다. 저 아래 속초 야경이 휘황하고 더 멀리 점점 흔들리고 있는 불빛은 오징어잡이 배이리라. 저물녘 부대에서 퇴근한 아들이 맞바로 차를 몰아 강원도 별식 맛 보여 드리겠다며 나선 길. 맷돌 손두부며 산채 맛은 아주 담백하고도 깔끔했다.


죄도 우도 힘찬 선으로 호기롭게 솟구친 산세 장엄한 설악의 위용이 호위하듯 내처 따르고 있다. 창끝 세운 채 전열 가다듬는 진지 같은 긴장감이 감돈다. 절로 이는 외경심. 과연 설악은 산악미의 진수를 아낌없이 보여주는 산중의 산이었다. 대단하십니다, 허공 향해 벅차오르는 감회로 단지 이 한마디뿐. 설악의 장관 앞에 자연스레 두 손 합장하고 머리 조아릴 따름이다.



청명한 시월의 하늘 아래 막 단풍이 익어가는 산자락도 절경이지만 골골의 폭포며 투명한 담과 소는 문자 그대로 선경이자 비경. 백담사에서 출발, 가야동 계곡 거슬러 대청봉에 올랐다가 천불동 계곡 타고 신흥사로 내려온 이틀에 걸친 산행의 뒤끝이다. 질리도록 접한 산이건만 이 밤, 검은 윤곽의 설악은 여전히 낯설다.



속초 시가지에 접어들자 어쩐지 들뜬 분위기가 느껴진다. 쿵작거리는 음악소리. 왁자지껄 사람들 떠드는 소리. 가는 날이 장날이라던가. 마침 설악제 개막실 날이라니 구경 한번 걸게 하지 싶다. 가뜩이나 동서남북 분간도 안 되는 초행길의 얼떨떨함인데 빙빙 돌며 규칙적으로 빛줄기 내쏘는 등댓불마저 사이키 조명 같아 어지럽다. 허공에 뜬 애드벌룬. 대형 태극기가 묵직하게 펄럭이며 축제 기분 고조시킨다.



가로 양편에 늘어선 청사초롱을 대신한 오징어 모형등 이채롭다 싶더니 차 문을 열자 온 데서 어항 특유의 비린내가 진동한다. 행사장은 해변에 면해있는 모래사장. 물결처럼 밀려다니는 인파로 하여 판이 무르익어가는 중이다. 가설무대에서는 밴드소리 드높게 노래자랑 열리며 그 한편으로는 그네터 높직하다. 씨름장, 널뛰기, 투호놀이 판도 어우러진다. 오동씨만 봐도 춤춘다는 민족이라서인지 분위기 고조되자 다들 흥청댈 눈치다.



불빛 눈부시게 밝힌 가건물에 줄을 이은 팔도 명물 장터는 일반 장날 견줄 수 없이 볼거리 푸짐한 야시장터. 노점에는 별별 만물이 다 쏟아져 나왔다. 반딧불 같은 야광 장난감이며 번데기와 솜사탕에다 대패로 밀어주는 엿장수도 한몫. 울긋불긋 아동복에 갖가지 주방 물건들도 널려있다. 와중에 한 건 올리려는 야바위꾼까지 그야말로 난장 북새통이다. 그 곁, 구경꾼이 둥글게 몇 겹 둘러싼 틈새를 들여다보니 아! 놀랍게도 여태 혁필을 치는 사람이 다 있었네.





어릴 적, 미장원보다 이발소가 더 가깝던 시절. 상고머리를 치러 이발소에 가면 웨이 조잡한 기계에 머리캉 끼어 어찌나 따꼼하던지 찔끔 눈물 뺀 기억이 난다. 이발사 아저씨 무안할까 봐 슬쩍 눈가 문지르며 보곤 한 그림. 밀레의 만종과 나란히 걸려있던, 원색이 어쩐지 촌스러운 그림이 혁필 그림이었다. 글씨인 듯 그림인 듯 휘갈긴 '家和萬事成'이니 '修身齊家'  '富貴多男' 등의 글귀 같은 게 꽃과 나비 청솔과 하나로 어우러져 있던 그 그림.  장방형 액자에 담겨있던 정경이 아스름 되살아났다.



우물가의 두레박도 된장 뚝배기 보글거리던 놋화로도 이젠 일상에서 구경할 수가 없는 세월. 근대화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사라져 버린 것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기억에서조차 가물가물 잊혀 가는 풍물들. 가뭇없이 스러져 가도 누구 하나 아쉽게 뒤돌아보려 하지 않고 그냥 과거 속의 초라한 삽화쯤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들. 굳이 불편하고 궁색하고 서러웠던 그 시절을 되돌리고 싶은 이 없어서일까. 옛것이라면 미련 없이 내던져 버리던 때, 그렇게 먹감나무 장롱이 포마이카 농에 밀려 사라졌다.



뿐만 아니다. 양악에 밀려 자리를 내준 우리의 소리가 아니던가. 새로이 전통의 가치에 눈 떠가는 이즈음의 문화정서. 그런 면에서 영화 서편제는 우리의 정곡을 옳게 찔렀다. 더욱이 이 영화에서는 효과적으로 혁필 그림이 등장한다. " 소나무  송자라, 소나무에 학 두 마리를 그렸으니 학은 천년을 사는 영물이라 학처럼 오래 살라는 뜻이고, 해처럼 밝으라고 해도 그려 넣었다." 눈먼 소리꾼 송화에게 그림 설명을 해주는 그녀 아버지의 옛 친구는 혁필로 입에 풀칠하며 떠도는 사람이다. 지금은 거의 자취 감춘, 해서 혁필이라는 단어조차 생경할뿐더러 젊은 세대는 아예 구경한 적도 없는 낯선 그림 혁필.



수염 덥수룩한 장년의 남정네가 모래판에 보자기 한 장 펼친 위에다 여러 겹의 백지 깔아놓고 쓱쓱 그림을 그리고 있다. 희미한 간다라 불빛이 장방형 종이 위를 비춘다. 바닷가에서 구한 돌이듯 길쭘한 해석 두 개가 문진 역할을 한다. 화구래야 변변찮다. 네모진 조그만 통속에 되직한 오방색 물감이 대여섯 종류. 가죽으로 다듬은 너비 다른 붓 몇 개가 전부다. 등잔불 가물거리는 어둠침침한 방을 환하게 꾸며주는 장식적 기능에다  주술적 기능을 보탠 혁필 그림, 참 용케도 명맥을 이어왔구나 싶다. 수입이 괜찮은 것도 아닌 데다 그렇다고 대접받는 예인도 못 되는, 한갓 장바닥 떠돌며 푼돈이나 버는 가난한 화공.



미술사의 어느 장에도 오른 바 없으며 한글사전에 단 한 줄의 언급마저 없는 혁필이다. 따라서 역사나 뿌리를 정확히 알 수가 없는 바 추측건대 양반가의 文字圖에서 파생된 서민들의 그림이라 여겨진다. 이름 없는 민초에서 민초로 그 맥이 이어져 왔으나 민화로도 분류되지 않는 듯 아무튼 위치가 애매모호하다. 이 점 나 역시 도서관에 가서 자료조사를 할 만큼의 성의도 안 보인 데다 아는 게 적은 과문 탓이라면 오히려 다행이겠다.



"자~ 이렇게 숲이 창창해야 호랑이가 드는 법. 범이 한바탕 용맹을 떨치려면...." 그림 못잖은 유창한 달변으로 음양오행에 근거한 사설이 길다. 먹물로 그리듯 단숨에 일필휘지 날릴 수는 없으나 속성 그림인 편인데 심오한 인생철학 곁들인 사설이 따르다 보니 시간이 좀 걸린다. 이름 자에 범이 들어가는 한 중년은 화공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입이 쭘하다. 성명 석자 완성되니 호랑이 노니는 소나무 숲이요, 새 아침 해가 형형히 솟는 한쪽엔 황룡이 꿈틀댄다. 용호상박 장면이 아니라도 범상치 않은 기상이 느껴진다. 끝으로 청산이라는 호를 얹고는 척하니 낙관도 찍는다. 그 품이 아주 당당하다.



물감 마르기를 기다리는 아주 짧은 동안, 펼쳐진 그림에서 홀연 걸출한 산을 본 듯하다. 그렇다. 암릉 기운찬 설악의 어느 봉우리가 잠시 떨어져 나와 마실이라도 와 있는 듯했다. 자연의 정밀묘사와는 거리가 멀지만 글씨체만으로도 신기하게시리 바위가 상징적으로 표현돼 있다. 모필의 섬세함을 따라갈 수 없는 대신 혁필은 선이 강건해 뵈는 필체 자체가 곧 바위인 셈이다. 기암괴석으로 솟구치며 치달린 호방함에 보는 나도 절로 어깨가 펴진다. 그 바위에 기대어 청죽이 자라고 난꽃이 핀다. 호젓한 정서다. 감싸듯이 허리 튼 소나무 푸른가 하면 하늘에는 태양빛이 부챗살처럼 퍼진다.



적당히 안배시킨 두 번째 바위 뒤에서 마악 머리 디미는 호랑이. 몸통은 숲에 가려 보이지 않건만 그래도 숲에서는 새 몇 마리 솟아오른다. 마지막 바위 아래로 구름이 일고 비늘 세운 황룡이 여의주를 희롱한다. 여기에도 여백은 넉넉하다. 힘과 속도를 조절하며 재빨리 긋는 획마다 순간적으로 의미를 담아내는 창의성과 예술성이 놀랍다. 단번에 후딱 그려낸 그림 한 장, 손재주 좋은 솜씨가 볼수록 신기하다. 조선 후기 문장가인 유한준 선생 말대로,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知則爲眞愛) 사랑하면 참이 보이나니(愛則爲眞看)...



남의 그림일망정 구경만으로도 마음 흡족해지고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구경꾼도 흐뭇하니 자연 그림 임자 입이 헤벌쭉할 만도 하다. 그가 종이를 둘둘 말아 쥐자 마술처럼 단숨에 숨어버리는 설악의 암릉. 술렁거리는 인파 너머 저만치, 별 영롱한 청남 빛 하늘 아래 설악은 칠흑의 윤곽으로 그저 묵연히 서 있다. 1997





PS: 이제는 한국민족문화사전에 상세히 나와 있는 혁필이다. 문화예술단체에서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하고 혁필의 맥을 이어온 분을  명인으로 선정한 바도 있다.


발표한 지 이십 년 후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 비치에서 이 그림 그리는 사람을 봤다. 그들(미국인)은 이를 레인보우 캘리그래피(rainbow calligraphy)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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