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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ug 01. 2024

수렵채취인 놀이터, 김녕바다

장마 끝나자 연일 폭염이 기승을 부린다.


비자림에 가려고 차를 탔는데 먼데까지 온 김에 김녕해수욕장부터 들렀다.


물빛 투명히 맑고 수심 얕아 가족단위 피서객이 주로 찾아와 즐기는 김녕이다.


민트블루 마린블루 터키블루 피콕블루까지 결결의 바다색깔 유난히 고와 서쪽 금능해변과 함께 마음이 쏠리는 바다다.


마침 태양 이글거리는 쾌청한 날씨, 아이들은 방학을 맞았고 휴가철이라서인지 붐비는 피서객들로 활기를 띤 김녕해수욕장.


먼바다에는 유람선이나 제트스키가 지나고 그보다 수심 적당한 바다에선 스노클링에 취해 물속 들랑날랑.


아이들은 거개가 튜브를 끼고 신나게 함성 지르며 물놀이하지만 바로 앞 얕은 물가에서는 고개 수그린 채 뭔가를 잡는 이들 의외로 흔하다.


저마다 목하 채집삼매경에 빠져있다.


아무래도 우리 몸에는 수렵시대 DNA가 각인돼 있나 보다.

한여름 해수욕장에서 식량감을 구할 리야 없으나 진지한 그들 표정 지켜보는 일도 자못 흥미롭다.

놀러 온 여행객이 아니라 제각기 하루치 일용할 양식거리를 구해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이라도 벌이 듯 아주 열심들이다.

물론 잠깐의 재미일 따름이긴 하다.

그들에게 저마다 귀하게 태어난 해양 생명체에 대한 존중감을 설할 필요까지야 없겠다.

대부분은 집에 돌아갈 때 잡은 포획물을 방생해 주고 가니까.

어차피 가정에서 키우기 어려운 바다 생물이기도 하고, 물론 먹을 만한 양도 아니므로.

성산 내수면 개펄에서 주로 조개잡이는 하지만 금능해수욕장이나 김녕해변에서도 나름 즐길거리가 기다린다.


투명한 물속에서 이름 모를 아주 쪼맨한 물고기 떼가 우르르 쪼르르 이리저리 나풀대면 아이들 동작이 날래진다.


족대나 뜰채를 들고 바닷속을 주시하다가 그물망으로 잽싸게 훑어 고기가 잡히면 이 난다.

채집통이나 장난감 양동이 심지어 비닐봉지에 바닷물을 넣어 거기다 수확물을 담는다.


아주 의기양양하게.

그 안에는 자그마한 게, 새우, 고둥이나 보말 따위가 들어있다.


채취물을 들여다보는 눈빛이 반짝댄다.


자랑스럽다는 듯이.


본능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면 달리 설명될 길이 없다.

아이들만 그러는 게 아니라 어른들도 신기한 듯 물속을 연신 들여다본다.

저마다 자못 신명이 올라 흐뭇한 표정들이다.



바다에 놀러 갔다가 마침 물때가 맞아 미역이나 톳 또는 바지락이며 보말 잡는 사람들이 있으면 덩달아 채취를 하곤 했다.


그래서 어느 철, 어느 바다 어디에서 무엇이 나오는지 대충 안다.

해물만이 아니다.

어딜 가면 고사리를 끊어올 수 있고 어디 어디에 달래가 많으며 깨끗한 쑥이나 양질의 돌나물 번행초 방풍 등 자연산 식재료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훤하다.

천상 촌사람이 제주살이 이태 만에 습득한 나름의 노하우랄까.

하기사 어촌계 해녀들의 생업권 보장을 위해 일반인의 해루질을 단속한다지만 놀이 삼아 한 줌이다.


이를 유독 즐기는건  어쩌면 나만 촌사람 유전자 뼛속까지 각인돼 촌티 못 벗어나서 일 수도 있겠다.


21세기 현대를 살면서 여전히 구습에서 탈피 못한 미개인, 진화를 멈춘 원시인이 바로 나니까.

아니란다.

학자들의 오랜 연구 결과가 이를 증명한단다.

우리 몸에 각인된 DNA 때문이란다.

인류 역사를 훑어보면 기실 농경을 시작한 것은 불과 1만 년 전이란다.

호모 속의 역사는 약 200만 년이 넘는다니 까마득 먼 과거다.

사피엔스 종의 역사만 해도 30만 년가량이 된다고 한다.

그 기간 내내 우리는 수렵 채집인이었다.

우리 유전자는 거기에 맞춰져 있다는 것.  

아무튼 DNA 지도에 입력된 대로 충실한 집사처럼 사는 나.

남들은 그런 거에 전혀 관심 없는 이도 있을 테지만, 그 진진한 재미를 몰라서 안 하는 경우도 있으리라.

그들이라고 오랜  수렵시대 몸에 밴 기질이 완전히 사라졌을 리 없으므로.


오늘 김녕에선 그러나 DNA도 맥을 못췄다.


맹렬한 염제의 기세에 눌려 바다에 발도 안 담가보고 사진만 찍고는 냉큼 비자림으로 내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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