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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ug 01. 2024

섭지코지, 저물녘 노을에 스며들기

제주도 전역에 폭염주의보 발효, 야외활동 자제를 당부하는 안전 문자가 계속 뜬다.

장마 지난 뒤 삽상한 바람이 기를 누그러뜨리는가 했는데 열대야까지 가세해 혹서 맹위를 떨친다.

화통 속 같은 한낮에는 나갈 엄두를 못 내다 폭염 좀 수굿해진 오후 섭지코지로 향했다.

노을을 보기 위해서다.

거기까지는 이동시간이 꽤 걸린다.

늦으면 성산 밤바다에 뜬 고깃배들의 집어등 불빛도 덤으로 감상할 수 있겠다.

뭉게구름 시시각각 움직이며 빚어내는 형체들 꽤나 흥미롭다.

서북쪽 하늘을 장악한 두터운 먹구름층 사이로 빛 내림 현상도 보여준다.

생각잖게 얻은 구름의 특별 향연이 고맙다.

놀멍 쉬멍 시간 셈하지 않고 사진 찍으며 유유자적 거닐었기에 놓치지 않은 정경들이다.


 


제주 동남쪽에  불쑥 튀어나온 곶인 섭지코지는 성산 일출봉을 배경으로 한 해안 풍경이 일품이다.

바다 쪽으로 길게 흘러내린 화산암이 파도에 깎이며 빚어낸 절경지 섭지코지.

섭지코지는 현무암보다는 강도가 중간 정도인 조면현무암으로 이루어진 낮은 구릉지대이다.

작은 언덕으로 오르면 초원 위에 동화 같은 코지 하우스가 초입에서 반긴다.

올인하우스로 불리다가 리모델링을 거쳐 달콤한 아이스크림이나 과자처럼 보이는 귀여운 건물이다.

해안 절벽길 따라 걷다 보면 제주도 기념물로 지정된 사각형 우뚝한 협자연대가 무뚝뚝하게 기다린다.

조선시대 왜구의 침입을 알리던 봉수대로, 위급상황을 이웃 마을로 전했다는데 현재 상부로 오르는 계단은 차단됐다.

비교적 원형이 잘 보전된 협자연대는 북쪽의 오소포연대와 성산봉수대, 서쪽의 말등포연대와 횃불과 연기로 교신하였다고.

거기서 전면 이백 미터쯤의 거리에 봉긋한 오름 형태가 아닌 언덕 비슷하게 생긴 붉은오름이 맞아준다.

붉은오름 내부는 검붉은 화산송이로 이루어졌으나 무너진 자리 외에는 초지 무성하다.


거친 파도에 의한 쉼 없는 침식작용으로 부서져 내려 원형을 거의 상실한 화산체이다.

해발고도 33m의 붉은오름 정상에는 방두포등대가 세워져 있으며 오름 자락 아래 바닷가엔 선돌바위가 자리 잡고 있다.

화산섬 제주에 산재해 있는 360여 개 기생화산 가운데 유일하게 중심부를 드러낸 게 특이하게도 선돌바위란다.

불빛 이글거리며 타오르다가 꺼져버린 '촛불 심지'에 해당되는 곳이라고.




 

 
오름이라기보다 언덕에 가까운 붉은오름 앞면엔 아주 크게 비어있는 공간 곳곳에 검붉은 내부가 드러나 있다.

저러다가 슬금슬금 주저앉아 마침내 바람 빠진 풍선처럼 납작하게 꺼져버릴 것만 같다.

산정으로 올라가지만 발밑이 저릿거려 1980년부터 점등에 들어간 방두포등대만 보고는 금세 내려왔다.

그래도 높은 데서 바라보니 전망터로는  최고다.


노을 스며드는 서쪽도 낭만적이지만 음영 짙어지는 동쪽 경관은 더 근사하다.


바다 건너 일출봉 자태가 이 방향에서 보니 단아하기 그지없는 데다 슬몃 고개 디민 우도봉도 반갑다.


그 외에 일본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유민 미술관이 든 글라스하우스와 그네 포토존이 내려다보인다.


푸른 바다와 성산일출봉이 한눈에 는 인기 있는 포토 프레임인 그네다.


올 적마다 줄이 길게 서있던 그랜드 스윙이 비어있기에 올라서보니 열적고도 싱겁다.


건축예술에 문외한이긴 하나  유려한 풍광 안에 왜 하필 일본 작가의 웅비하듯한 건축물이 들어섰을까?


아무리 노출 콘크리트 건축법으로 독보적 위치를 점한 세계적 건축가라 할지라도 그 아름다운 장소를 내어준 까닭은?


대체 그 작품이 어떤 미학적 의미와 가치를 지녔는지를 따지기 전, 지나친 명성 쏠림현상은 아닌가 여겨지게 된다.


등대에서 내려와 섭지코지 끝머리로 가다가 뒤돌아보면 붉은오름과 선돌바위가 이번엔 너부죽 코를 세우고 땅바닥에 엎드린 코끼리처럼 보인다.


아니 끝 모를 사막을 건너다 기진해서 쓰러진 쌍봉낙타를 닮은듯하여 짠해진다.


이쯤에서 실없이 선돌 바위에 얽힌 전설 따라 삼천리나 훑어본다.


동해 용왕의 막내아들이 인근 해안에서 노닐던 선녀에 반해 결혼하게 해달라고 아버지에게 간청했단다.


아들에게 용왕은 치성드리며 백일을 기다리라는 조건을 내걸었고 정작 백일 날, 거센 바람과 높은 파도 때문에 선녀는 올 수가 없었다.


그러자 슬픔에 잠긴 아들은 결국 선채로 망부석이 되었고 애틋한 그 바위는  이름이 선돌 바위가 됐다고.


노을 보러 왔던 사람들 어느새 귀갓길 재촉하며 빠르게 총총 걷는다.


금세 해 지고 설핏 제주의 푸른 밤이 깔려든다.


저만치 검푸른 성산 밤바다에 어선 불빛 점점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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