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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ug 02. 2024

상사화, 상사화, 제주 상사화

희한한 상사화도 다 있네!

제주에 와서 처음 본, 색다른 빛깔이라 영 낯선 상사화다.

요샌 식물마다 선택교배로 유전형질을 바꾸는 품종개량이 하도 빈번해 이 상사화 역시 그런 줄 알았다.

허나 아니었다.

육지와 멀리 떨어진 섬이란 특성에 따라 제주조릿대가 따로 있듯 제주 상사화는 본시부터 꽃색깔이 이러하다고 했다.

황미백색 상사화는 처음 봤기에 낯설었지만 제주 상사화야말로 우리나라 토종 상사화라고.

상사화, 상사화, 제주 상사화. 너도 잎과 꽃이 영영 못 만나는 그리움으로 애가 타 지질린 낯빛이더냐?

상사화 / 김영천



세상의 모든 풀꽃들이

다 이루는 일을

그 하찮은 일을



애기똥풀꽃이나 쇠비름이나

구절초,

며느리밥풀꽃.

개망초까지 다 하는 일을



아-아, 그리움처럼

너무







잎과 꽃의

사이



상사화는 유년기 추억의 현을 터치하는 꽃이다.


장광 옆 상사화 늘씬하게 꽃대 올리는 여름.


앵두나무에 붙은 쐐기를 보고 흠칫 놀라 물러서며 밟았던 난초잎 같은 한 무더기 연한 식물.


잎과 꽃이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상사화(相思花)였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그리워 만 하는, 영영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란 꽃말을 가진 상사화다.


봄 내내 무성하던 잎새 시나브로 주저앉아 스러지고 늘씬한 대궁 꽃봉오리 물고 올라올 즈음이면 여름이었다.


마당가에 선 감나무에서 매미가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한여름.


무더위 아랑곳 않고 의연하게 꽃대 세워 살구색 고운 자태의 꽃, 대궁마다 몇 송이씩 피어나던 상사화.



그늘막 밀대 방석 한편에서 외숙모는 쪄온 삼 껍질을 벗겼고 나는 속살 흰 겨릅대 끄트머리 둥글려 잠자리 채 만들어 거미줄 걷고 다니느라 분다웠다.


8월이면 고추잠자리가 곧 날아다닐 터였다.


 아득해서 그리운, 갈 수 없어 더 가고 싶은 그 나라.


이미 먼 먼 옛이야기되어 흔적조차 희미해져 가는 오십 년대의 여름.


논고랑 쫄쫄쫄 물꼬를 따라 버들잎 배 띄우고 놀다 뱀을 만나 질겁한 적도 있었다.


 매미소리 자지러지는 밤나무에 올랐다가 벌에 쏘이고 말잠자리 잡으려다 부들 우거진 둠벙에 빠져 허부 댄 일이며.


봇도랑에 어레미 받치고 풀섶 훑어 붕어를 잡고 소류지에선 소금쟁이 방개와 친구 하던 그때.


머리 쫑쫑 땋아 댕기들인 다음 곱게 놀아라, 당부하신 외숙모 당부 금세 잊게 하는 놀잇감은 사방에 널려 있었으니.



망개 잎 오그려 받아 마시던 바위틈 석간수의 시원함 만이랴.


모든 게 달기만 하던 그 시절, 못 먹어서도 아니었다.


후사가 없던 외숙 댁은 방앗간을 운영해 생질녀에게 만큼은 사철 쌀밥에 계란 톡 깨 넣거나 하다못해 왜간장에 참기름 넣고 비벼 늘 고신 내를 풍기게 했으니까.


당시 대부분은 애 어른 할 것 없이 베 보자기 덮어둔 보리밥 시렁에서 꺼내 후드득 물 말아먹으면 그만이던 세월이었다.


강된장에 상추쌈이거나 풋고추만 있어도 찬밥 더운밥 안 가렸다.


하물며 열무김치 노각 무침 오이냉국 곁들이면 그야말로 성찬.


무짠지 머위 잎이 입맛 돋우는가 하면 땀방울 떨구며 먹는 밀국수엔 송송 썬 애호박 푸르고 햇감자 달큰했다. ​



겉보릿가루를 당원 물에 타 마시던 시절 얘기다.


이즈음 먹거리에도 복고풍이 유행이라 신토불이 웰빙 자연식에 섬유질 식품이 대접받아 뜨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든다.


 누구네 논에는 어느새 벼가 패었다느니, 누구네 집 돼지가 새끼를 몇 마리 낳았다느니 하는 게 화젯거리인 평온한 마을.


꼬끼오 닭소리에 아침이 열리던 당시라 조기교육 열풍은 물론 환경공해 따위 알지도 못했다.


그저 자연의 순리대로 너나없이 순박하게 살았던 사람들.


다만 자식농사에는 욕심이 커 아낌없이 뒷바라지들을 했다.


마치 그것만이 삶의 목적이자 가치이듯이.​



아이들이야 장날 쌀금이 무슨 상관이며 소판 돈이 얼마인들 대수랴.


그저 들강아지되어 뛰놀기에 바빴다.


놀기도 고단해 저녁밥 먹기 바쁘게 곯아떨어지기 예사.


뿐인가, 술빵에 취해서 빵을 입에 문 채로 잠에 빠지는 아이도 있었다.


먼 데서 우렛소리 울리고 이어서 소나기 한줄금 들이치면 마루에 배 깔고 어슴푸레 드는 낮잠이야 사실 꿀맛이었고.


한숨 자고 부스스 일어나 눈 비비다가도 피사리하고 온 행랑아재 장딴지에서 떼낸 거머리 모아 댓진 침주기에 신바람 올랐다.



동네가 한바탕 왁자한 날은 둠벙 물 퍼내고 미꾸리 붕어 양동이로 주워 담느라 부산스러웠다.


임시로 공터에 건 솥에선 김이 오르고 둘러앉은 두레반 위에는 집집에서 추렴한 음식들, 쓱쓱 치댄 겉절이에 부침개며 막걸리 푸짐했다.


대지를 한껏 달군 폭염이 수그러들 무렵, 시퍼런 논배미에서 청승스럽게 뜸부기 소리 이어졌으며 악머구리 떼 지어 밤새울 채비를 서둘렀다.


반딧불이 두엄가를 유영하는 여름밤.


독 오른 쑥대를 쳐다 모깃불 놓으면 매캐한 연기는 하늘까지 닿았다.


베 홑이불 감고 살평상에 누워 바라본 밤하늘. 총총한 별 무리 사이로 미리내는 안개처럼 보얗게 흘러갔다.


아아, 아득히 멀어져 버린 그리운 그 시절.


찜 쪄대는 무더위가 여간 아니라서 녹음 그늘로 이어진 숲 속, 중산간 마을에 자리한 절물오름을 다녀왔다.

절물자연휴양림이 있고 절물 약수터로 널리 알려진 절물오름이다.

해발 697m의 기생화산인 이 오름은 봉우리가 둘이라 전망대도 두 곳이다.

큰 봉우리를 큰대나오름, 작은 봉우리를 족은대나오름이라 부르며 원형의 깊은 분화구 주변은 잡목과 활엽수 울창하다.

각종 나무들이 우거진 숲길 따라 걸으면 한여름이라도 그늘 서늘하고 노루가 풀을 뜯는 생태체험도 하게 된다.

큰대나오름 기슭 생이소리길 쪽에 사철 시원하게 펑펑 솟는 용천수가 절물 약수터로 길 건너편에 약수암이라는 절이 있다.

정상에 조성된 전망대에 오르면 멀리 제주 바다와 빙 둘러 솟아있는 여러 오름들이 빚어내는 능선이 멋진 풍경을 이룬다.

구름 몇 점 거느린 한라산도 마주 보인다.

절물오름 등반로는 1.6km로 한 시간 정도면 왕복이 가능하다.

너나들이길은 잘 다듬어져 있는 편편한 데크길로 3km  구간이며 약 1시간 30분가량 소요된다.

장생의 숲길은 흙과 화산송이가 깔린 힐링길로 11km, 왕복 3시간 이상 걸리는 숲길이므로 2시 이후는 출입을 금한다.

자연휴양림 입구 삼울길에는 4~50년생 쭉쭉 뻗은 삼나무가 울울창창 하늘을 가리고 미칠 하게 잘 생긴 곰솔 숲도 볼만하다.

울멍줄멍 숱한 여러 오름들 막힘없이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는 오름의 하나가 절물오름이지 싶다.

인근에 사려니숲길, 한라생태숲, 봉개동왕벚나무 자생지, 민오름탐방로, 노루생태관찰원, 절물자연휴양림이 가까이 있다.

육지에서 피는 보통 상사화 꽃색이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해 상사화라고도 불리나 이름 엄연히 다른 석산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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