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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l 29. 2024

롱우드 가든의 귀족 냥이

백주 대낮이다.


그것도 관람객이 드나드는 기념관 현관 앞 통행로다.


오가는 사람마다 희한해서 한마디씩, 짐짓 건드려도 본다.


꿈쩍도 않는다, 죽은 듯이 늘어져 오수에 빠진 고양이.


암튼 몰겄다, 나는 그래도 잘 뿐이다.... 식의 뱃장 한번 끝내준다.


포즈라니... 세상 젤로 편한 자세로 자유와 평화 그 자체를 즐기는 냥이.


프랑스 가계의 듀퐁가 고양이답다.


진짜 고양이야?


소심하고 조심성 많고 민첩한 고양이는 간곳없고 오뉴월 개팔자 흉내 내며
늘어지게 잠만 퍼질러 자고 있는 쟤, 고양이 맞아?


듀퐁가 저택을 지키는 냥이는 낮엔 늘어지게 잠만 자고 밤이면 야행성답게 롱우드 가든을 쏘다닐 터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펜실베니아 평원.
둔덕 정도의 산모롱이 휘돌면 질펀히 깔린 옥수수밭, 해바라기밭.

미국 와서 제일 먼저 거의 넋이 빠질 정도로 엄청난 규모에 놀라고 문화적 충격 크게 받은 곳이 롱우드 가든이다. 


난생 첨으로 그런 대단한 정경을 접해보았으니까.

5 에이커에 달하는 똑 고른 잔디밭에 펼쳐진 중앙의 분수정원 산책로는 클래식한 분위기로 압도해 왔다.

2천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국 내에서조차 유명했던 조명이 있는 음악분수라는 걸 처음 본 곳이기도 하다.


전에 유럽여행 중 런던이나 파리에서 궁정 내의 대정원을 감상했고 한국에선 남해 외도 비너스 가든을 가본 안목 정도로야 당연  놀라울 밖에.



야외 음악회가 열리기도 하는 탁 트인 중앙 분수대 전경이다.

아래로 굽이쳐 내리는 폭포를 즐기는 동양인의 심성과 달리 하늘 향해 치솟는 분수를 좋아하는 서양인의 품성에서
동서 문화의 차이를 읽어낸 오래 전의 이어령선생 글이 생각난다.


곳곳에서 기운차게 뿜어대는 폭포 물줄기 시원스러운 칠월.


모처럼 가져본 한유로운 시간이니
삼나무가 줄지어선 녹음 그늘 따라 한량없이 걸었다.
 
롱우드 가든 식물원을 만든 이는 피에르 듀퐁.


그 이전 이 터에 첫 삽질을 고 나무를 가꾸기 시작한 이는 퀘이커 교도인 피어스 가문이다.


1730년 프랑스 풍의 저택을 언덕 위에 짓고 이백여 년을 여기서 살던 그들은 뒷날인 1906년 이 일대를 듀퐁가에 판다.


듀퐁은 숲이 울창한 1천50 에이커의 땅에 실내외 정원을 조성하여
세계에서 수집한 1만여 그루의 식물들을 심어 오늘의 아름다운 가든을 탄생시킨다.


생전에 병약했던 부인을 위해 만든 가든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지상에서 가장 큰 꽃다발을 선물' 받은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그려보기도 했는데.


기념관이 된 당시의 대저택에는 가족들 사진이 걸려있었고 주방 집기며 가죽으로 된 이민 가방도 전시돼 있었다.


듀퐁은 프랑스의 화학도로 연구실의 스승이 혁명의 혼란기 때 단두대에서 처형되는 것을 보자 모국을 뒤로하고 신대륙으로 떠나왔다.


낯선 땅에 정착해 뿌리 굳건히 내리기 까지의 이민자의 삶이란 곤고하기 마련.


그러나 나일론을 개발한 피에르 듀퐁은 세계대전 중 화약과 폭탄 제조를 독점하며 화학 관련 기업으로 가문이 크게 융성한다.

미국 초창기 자동차 산업에도 주목해 GM에 출자했으며 농약과 비료, 도료, 합성섬유 및 합성수지를 개발해 듀퐁크게 부를 쌓았다.

펜실베니아 지방은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가이없이 이어지는 초록 평원의 연속이다.

분명 풀밭은 아닌데 몽글몽글한 수목들이 푸른 융단처럼 고르게 좍 깔려있다.

낙하산을 타고 떨어져 내려도 상처 하나 없이 풀섶에 폭신하게 싸 안길 거 같기만 다,

산맥은커녕 봉긋한 산도 없는데 숲이 끝모르게 펼쳐졌다니?

그런 지역이 펜실베니아로, 필라델피아 전원지대는 '미국 정원의 수도'라는 별칭에 걸맞게 원예학적 자산이 풍부한 곳.

수백 년 묵은 참나무 소나무 전나무 너도밤나무 플라타너스 거목이 수두룩 빽빽하다.


롱우드 가든의 야외 숲을 거닐다 보면 별유천자에 빠져 시간 개념이 모호해진다.


한창인 긴 대궁 원추리 꽃그림자 되비치는 푸른 호수를 지나 세코이어 줄지어 선 이태리 풍의 분수정원을 만난 다음 연못가에 닿는다.


소풍객 저마다 카메라를 꺼내 들게 하는 곳, 모네의 그림이 오버랩되는 연못 주변이야말로 사진 찍기 좋아 이 자리에서 딸이랑 포즈를 잡았더랬지...


또 한번은 독립기념일 연휴에 새로이 부임한 신부님을 모시고 찾은 적도 있다.


애띤 신부님은 사진에 취미가 있었던지 내 카메라로 연꽃을 찍었는데 그때 꽃사진 기법을 어림잡아 터득하기도..


오랜 불자임을 들어 아는 신부님이 불명이 뭐냐고 물었다.
 
무량화란 불명을 정식으로 받기 전엔
한때 연향심이라 부른 적도 있다고 하자 무량화가 더 어울린다 했더랬지.


이렇듯 워터릴리 가든에서 온갖 종류의 수련들 속에 머무노라니 홀연 떠오르는 여러 추억.


거기서 이 세상 모든 것의 시작과 끝, 만남과 별리, 끈  닿은 인연을 거듭 숙고해봤.


유럽의 귀족문화인 싸롱문화가 번성하며
그 토양에서 수많은 예술가들이 탄생되었듯 그와 흡사한 방식으로 롱우드 가든 역시 운영되고 있다.


가령, 가든 경내에 있는 그리스 풍의 공연장이며 드넓은 무도회장에서는
세계적으로 명성 있는 관현악단이나 발레단을 초빙해 특별 공연을 갖기도 한다.


장미를 위한 음악회가 열리는가 하면 지난 크리스마스철엔 아이스 쇼가 펼쳐졌었.


꽃에 취해 한참을 다 보면 묵직해지는 다리.


아픈 다리도 쉴 겸 시원한 조망권 즐기며 잠시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야외 음악회가 열리기도 하는 중앙 분수대 전경에 취해있는 그 망중한의 여유라니.


 세계적인 명성을 보유한 브랜디와인 평원에 자리한 롱우드 식물원(Longwood Gardens)이다.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의 전통이 조화를 이룬 롱우드 가든은 규모가 4.25 km²에 이르는 하나의 타운이다.

이끼 낀 계류 그 사이로 폭포가 내린다.


너르고도 짙푸른 숲에 나뭇잎 저마무성해서 극락조 소리 들릴 듯 밀밀하기 그지없는 열대.


잠시 아마존 밀림에 든 듯 착각하게 만든다.


매시간마다 들리는 영롱한 종소리의 향방을 좇아보니 저만치에 타임벨 흘러나오는 망루가 서있다.


음악과 함께 춤을 추는 분수대를 지나 인공호수 건너니 양치식물이 군락을 이뤄 이끼 푸른 칠월 숲.


하루 나들이 코스로 알맞은 롱우드 가든은 철 따라 준비된 각종 이벤트로 늘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곳이다.


중앙홀을 중심으로 펼쳐진 실내 정원에 지금은 화려한 글라디올라스와 칸나가 피었

지만, 가을이면 국화축제가 열린다.

이 안에 40개에 달하는 실내와 실외 정원과 거대한 온실듧즐비하다.


롱우드 가든에는 5천여 개의 난초가 서식하는 오키드룸(Orchid Room), 바나나 하우스(Banana House), 양치식물 통로(Fern Passage), 열대 테란스(Tropical Terrance), 어린이 실내 정원 등이 준비돼 있다.  

그 외 아카시아 통로(Acasia Passage)와 실버 가든(Silver Garden)과 북미에서 가장 큰 초록색 벽도 마주할 수가 있다.

이 초록벽에는 만 칠천 종류의 식물이 자라고 있어 탄성이 절로 터진다.

더불어 사철 다른 주제의 컨셉으로 마련되는 축제 중 크리스마스 시즌은 특히 황홀하기조차 다.


겨울 시즌 롱우드 가든 야경이 너무도 멋지다는 풍문만 듣다가 겨울밤 그중에서도 특별한 제야에 롱우드 가든의 구경꾼들 속에 섞여 순백으로 반짝이는 별세계에 환호하기도 했다.


그외에도 장미시즌 릴리 시즌에 찾아 향수통에 빠진듯 매혹적인 향에 취해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그곳.


뉴저지 체리힐과는 두 시간 거리로 이곳은  현재 롱우드 재단과 미국 농무부가 공동 운영하며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관리하고 있다.
 

주소: 409 Conservatory Rd Kennett Square, PA 19348


https://youtu.be/U7rkUBkhgdE?si=5Eu3o1pbgIp2IzI3

ㅡ고양이 사진 두 장 외의 사진은 롱우드 가든 사이트에서ㅡ


https://brunch.co.kr/@muryanghwa/285 -청이를 롱우드 가든에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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