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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같이 눈부신 바다, 금능 협재해변

by 무량화


제주의 3대 해수욕장 중 첫째로 추켜세우며 나름 으뜸으로 치는 바다는?


제주에서 물빛 가장 오묘하게 아름다운 해변은?


단연 금능 협재해안이다.


핏줄로 이어진 동기간처럼 자연스럽게 붙어있는 바다로, 처음 보자마자 단박 반해버린 해변이 여기다.

각자 개인적 취향이사 다르겠지만 아무튼 금능 협재해변은 내가 가장 아끼는 바다라 자주 들리는 곳이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배경으로 떠있는 비양도 멋스러운 실루엣뿐인가.

연한 옥빛에서 민트 블루, 터키석, 사파이어로 깊어지는 미묘한 바다 색조.

신. 비. 롭. 다!

부드럽고 고운 흰 모래톱과 새까만 현무암이 빚어내는 흑백의 하모니, 그 격조있는 대비.

조. 화. 롭. 다!

거센 해풍에도 굿굿하게 서있는 허리 늘씬한 야자수는 또 어떤가.

볼 적마다 예가 캘리포니아야? 하와이야? 남태평양 어딘가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이국의 정취를 불러일으키는 지유분방한 백인들까지 이 바다에 모이니 절로 글로벌 시대를 실감케 된다.


게다가 너른 해변에 수심 얕은 바다라 물놀이하기 안전하며, 서로 잇닿아 있으나 분위기 사뭇 다른 협재해수욕장까지.

이처럼 좋은 여건 다양하게 구비한 바다도 흔치가 않다.

여기서 내가 그중 아끼는 자리는 현무암 바윗전이다.

5억만년 전 아득한 고생대의 환상이야 어림없지만 적어도 쥐라기 시대 어렴풋 꿈꾸며 그리게 하는 그런 자리다.

척추 긴 공룡이 우거진 양치식물 사이를 겅중거리며 치달리지 싶기도 하다.

어느 분화구에서는 연기 자욱하게 피어오르며 우렛소리 같은 굉음이 아득스레 들려올 듯도 하다.

현무암 자체는 기공이 많으면서도 강철처럼 단단한 표면이라 몹시도 질감이 거칠다.

흘러내린 마그마가 뒤엉켜 굳으며 갈라 터지고 쪼개지고 금 간 상처투성이지만 밟아도 끄떡없다.

전혀 미끄럽지 않은 바위라 운동화 차림새면 조심할 필요는 없으나 넘어지지 않도록 살금살금 걷는다.

용광로 작업 뒤에 남겨진 쇠찌꺼기(슬래그)나 숯 굽는 가마에서 갓 끄집어 내 식힌 참숯덩이와도 같다.

작은 주상절리나 튜물러스 형태를 무수히 품은 화산암의 특성 덕에 울퉁불퉁 거죽이 꺼칠해서다.

원시성, 야생성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그 느낌 또한 좋다.

이미 신생대 시기에 물속에서 마그마 솟구치는 수성 화산활동이 일어나며 섬의 기반이 다져졌다는 제주.

역시 아득한 옛적, 두 번째 분출기 때 최초로 용암대지가 만들어졌다던 그 원시 제주 땅에 지금 이렇게 앉아있다.

헤아리기조차 버거운 먼먼 세월의 뒤편, 제주에서 비교적 젊은 화산체에 속하는 비양도마저 몇 천년 전에 생겼단다.

그때의 용암 자욱일지, 한라산이 뿜어낸 마그마가 흘러내린 흔적일지, 나 알지 못하나 어떤 인연으로 오늘 여기 앉아있는지.....

무량한 일월 겹겹으로 흐르고 흐른 뒤, 나 이곳으로 이끈 분명한 섭리의 끈 틀림없이 이어져 있으리니.... 그게 뭘까?

현무암 까만 바위에 걸터앉아 시절인연을 묵상해 본다.

얏호! 외치고 싶을 만큼 새파란 하늘빛 멋진 아침, 그래서 부지런 떨며 일찌감치 서쪽으로 내달았다.

늦장 부리다 보면 깜쪽같이 사라져 영영 놓치고 말, 신비의 바닷길 혹은 신기루나 되는 것처럼 조급증 내며.

금능 협재 바다까지는 근 두 시간이 소요되지만, 그렇다고 그새 가뭇없이 사라져버릴 지형도 아니건만 하여튼.

산방산 스치고 모슬포를 지나자 왼쪽 옆구리 짬으로 바다가 계속 따라붙었다.

눈도 마음도 시원해지는 청남빛 바다에 하얀 파도가 쉼 없이 일어섰다.

신창에 접어들자 위풍당당한 풍차가 손짓을 했다.


곧이어 판포 포구, 바다 수영장으로 불릴만큼 수질 맑교 깊이 다양해 다이빙에서부터 물놀이는 물론 스노쿨링과 패들보드를 즐길 수 있는 새로운 핫플이다.


젊은층과 어린이들 몰려 붐비는 정도가 마치 예전 설 앞둔 목욕탕처럼 바글거린다.


차창으로 신비로운 바닷빛깔 감상하면서 조금 더 달렸다.


목적지인 금능해수욕장에서 이윽고 하차했다.


차도와 맞붙은 해변이라 눈 앞이 곧 모래톱.


그늘막 평상과 비치파라솔이 해안가를 덮다시피 했다.


맹위 떨치는 폭염 마다않고 물놀이에 빠져있는 숱한 인파가 역시 제주 최고의 해수욕장임을 입증해 준다.


설원처럼 하얗게 펼쳐진 백사장에 까만 현무암이 깔린 해변.


명쾌한 흑백 조화가 깔끔스럽다.


바다 건너 저만치에 언제나처럼 어린 왕자 그림인 양 다소곳 떠있는 비양도.

밀려드는 물살마다 결결이 다른 색감, 몽환적인 민트블루 산뜻한 피콕블루 침착한 네이비블루 단아한 세룰리안블루 해맑은 스카이블루...


얕은 물가에서 찰랑거리는 물결은 실크 자락 같았다.


자박자박 물가를 거닐어 본다.


보드라운 모래벌 걸으며 자세히 살펴보니 거의 다 흰 조개피가 부서져 형성된 해변이라 그리도 희디혔던가.


아름다운 대상에 반응하는 느낌이나 정서는 누구를 막론하고 엇비슷한가 보다.


자잔한 돌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사람들은 크고작은 기원을 담아 층층이 탑을 쌓아 올린다.


저마다 가슴 속 염원이 하늘과 통하길 바라면서.


비양도 바라보며 돌멩이 하나씩에 소망을 담아 기도하듯 쌓은 탑들이다.


무심코 한 동작은 아니리라.

장난삼아 물수제비 뜨려 던지는 돌멩이라면 모를까 일부러 참한 돌 골라 든 손이다.


설령, 서툴게 쌓인 돌탑일지라도 어떠하리.

탑은 모두가 신성한 예배의 대상물 되는 것을.


하여 탑 앞에선 누구라도 경건해져 어느 결에 슬몃 옷깃 가다듬지 않던가.

파도에 밀려와 여기저기 부려진 편편의 돌덩이는 여기서도 발길에 걸리고 채였다.

그 화산석을 오가는 길손마다 한 점씩 주워 덧쌓았다.

자연석 그대로를 바닷가에 쌓아 올리며 염원 하나씩, 소망 하나씩 층층이 얹었다.

밑돌보다 공구는 윗돌은 언뜻 보아도 점점 작아진다.

그래야 거센 해풍에도 끄떡없이 서있을 수 있다.

마음 같아선 큼직한 돌덩이 턱 얹고 싶겠으나 균형 잃은 탑은 무너져내리고 만다.

탑 위에 소원 하나 공들여 쌓아 올릴 때는 욕심 비우고 가비얍게 가비얍게.


해서 우리는 돌탑을 보며 세상 이치를 배운다.

아래층 없는 위층 없듯이, 낯선 개체로 무심코 만났어도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을.

너와 나는 그렇게 의지하고 살수 밖에 없더라는 세상 묘한 인연법 깨우치게 된다.


비양도 마주한 이 바윗전에 돌을 올려놓으며 무슨 기원 바쳤을까?

저마다 심중에 분명 누군가를 떠올렸으리라.

마음에 귀한 꽃송이 한 둘 간직하지 않은 이 없을 테니까.

돌 크기나 모양이야 개의치 않아도 되며 하나를 쌓아 올려도 돌탑이 되는,


이는 어쩌면 무의식의 상징적 언어가 아닐지.

은연중 표출된 소망에 대한, 꿈에 대한.

그도 아니라면 하늘 향한 영원성과 초월성의 상징으로.

더구나 인토(忍土)라는 사바세상 살아가노라면 저마다 기도 탑 쌓아 올리고 싶은 일 오죽 많이 생기던가.

입춘부터 다시 백팔배에 들어간 나부터도 그러하듯.

불교식도 아니고 성당식도 아닌, 종교와 관계없이 백팔배 올리며 뇌이는 발원문.


딱히 운동 삼아서라고도, 기도 의식이라고도 규정짓지는 않지만 참회문에 잇달아 발원문 읊으며 어리석은 저희 가엷이 여기사 자비를 베풀어 주시길 기원드린다.

저 돌탑 역시도 자연석 그대로를 바닷가에 쌓아 올리며 염원 하나씩, 소망 하나씩 층층이 얹었으리라.

밑돌보다 공구는 윗돌은 언뜻 보아도 알 수 있듯 모든 탑은 위로 올라갈 수록 돌 크기 점점 작아진다.

그래야 거센 해풍 몰아쳐도 끄떡없이 서있을 수 있다.

마음 같아선 큼직한 돌덩이 턱 얹고 싶겠으나 균형 잃은 탑은 무너져내리고 만다.

탑 위에 소원 하나 공들여 쌓아 올릴 때는 욕심 비우고 가비얍게 가비얍게.

해서 우리는 공궈올린 돌탑을 보며 세상 이치 배운다.

아래층과 위층은 무심코 만난 인연이겠으나 무심치 않게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너와 나는 그렇게 인연따라 피차 의지하고 살게 마련이더라는 세상 이치 은연중 깨우치게 된다.

탑에 대한 시 하나 떠올리니 문득 숙연해진다.


이윽고 사람도 탑이 된다는데


나는 어떤 기단석 될까.


탑 / 권기만


.....


돌은 몇 개만 쌓아도 탑이다

가지 위에 가지 올린 나무도 탑이다

한 발 위에 한 발 올려

산에 오르면 탑이 되는 사람들


....

꽃잎 위에 꽃잎 올려

탑 쌓기 놀이에 분주한

애기똥풀 형제

나뭇잎 몇 장 띄워 탑 쌓고

골짝을 돌아 탑돌이 나선 냇물

서로를 무등 태운

몸 낮춘 샛강

일파만파가, 모두

기단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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