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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서 가슴까지

by 무량화

저지난해 봄의 일이다. 유수처럼 스쳐가는 세월이 새겨놓은 연륜, 적지 않은 나이를 새삼스레 실감한 적이 있다. 딸이 첫 봉급을 받아 속옷을 사보냈다. 향수나 스카프 같은 품목도 있는데 하필이면 촌스럽고 노티 나게 내복이냐며 타박을 했더니 유전(流轉)하는 생이라고 점잖게 응수했다. 딴은 맞는 말이다. 1971년 3월 시골 중학교에 부임해 처음으로 월급봉투를 받았던 날의 뿌듯한 감회라니. 첫 월급으로는 속옷을 사드려야 부모님이 장수한다는 속설대로 당시 유행하던 빨간색 엑스란 내의를 샀던 내가 윤회의 수레바퀴 돌고 돌아서 이제 황토 면내의를 받게 된 것이다.



이월 어느 날, 아직 한파가 서성대는 동부 쪽에서 서부에 사는 딸을 만나러 갔다. 첫 홀대와는 달리 겨우내 애용했던 내의를 허물 벗듯 벗어서 개켜 두고 가벼이 비행기에 올랐다. 딸은 반팔 차림으로 마중 나와 있었다. 혼자 생활하기에 적당한 깔끔스러운 오피스텔이 딸의 거처였다. 작지만 쓸모 있게 갖춰질 건 다 갖춰진 공간을 찬찬히 둘러봤다. 평소의 검약 습관 그대로 단출한 가구, 하얀색의 책상은 식탁 겸용이었다. 책꽂이가 둘, 그중 한 책장 위에는 몇 개의 액자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중앙을 차지한 양면 액자의 한 면에는 딸이 가장 귀애하는 조카 사진이 들어있고 한쪽에는 까만 어린이가 하나 서있는 게 눈에 띄었다.



의아해하는 내게 낯선 그 소년을 소개해 주었다. 까만 아이는 시저란 이름을 가진 아홉 살짜리로 카리브해의 아이티에 살고 있으며 후원아동으로 딸과 인연 닿게 되었다고. 사탕수수와 커피를 생산하는 나라 아이티는 빈번한 환경재해에다 쿠데타 등의 내란으로 유엔이 개입하는 분쟁지역이자 최빈국이다. 아프리카 소년처럼 까무잡잡하니 왜소한 체구에 가느다란 목 그리고 유난히 둥그렇고도 퀭한 눈을 가진 그 아이.



천태만상인 세상이다. 비만과의 전쟁을 치르는 계층이 있는 반면 피골이 상접한 채로 당장 한 끼의 끼니 걱정을 하는 절대빈곤층이 공존하는 지구촌이다. 그뿐 아니라 근자 소말리아에서는 수천의 사상자가 생기는 유혈사태가 벌어졌다고 외신은 전한다. 과도 정부군과 이슬람 과격 세력 간의 험악한 전투로 수도는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는 것.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무작정 케냐 등지로 피난 가는 난민행렬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그처럼 전쟁 재난 기근 등으로 긴급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직도 허다한 세상이다.



아이티 소년과의 인연은 딸이 학교에서 첫 봉급을 타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시저에게 다달이 보내는 30불의 후원금은 소년의 한 달 학비와 식비로 충당된다면서 시저가 그려 보낸 꽃그림 카드를 보여준다. 덧붙여 세상의 모든 어린이가 꽃처럼 환한 웃음 지으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니세프와 월드비전에 대해 딸은 상세히 설명해 줬다. 그 후, 아이티에 지진이 났을 적에 시저 소식을 몰라 애태우던 딸의 목소리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하다.



개도국의 아동복지향상을 위해 설립된 유니세프는 성별 국적 인종 이념 종교에 차별두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전하는 유엔 산하기구다. 육이오 때 고아와 미망인을 돕고자 미국 선교사 밥피어스 목사가 설립한 국제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의 활약상도 괄목할만하다. 전쟁이나 재난을 당해 생활기반 전체가 무너진 채로 고통받는 이들의 불행에 즉각 응답하여 긴급구호사업을 펼치는 그들은 한시적이 아닌 지속적인 구호사업을 벌인다고 한다.



엄마도 이참에 후원아동 결연을 하라며 딸은 적극 권했다. 전화 한 통이면 곧장 연결이 된다면서. 그러나 계속적인 책임이 따르는 일인지라 그 자리에서 선뜻 결정을 못하고 집에 가서 시작하겠다며 미뤘다. 그로부터 시간은 또 무심히 흘렀다. 절로 시저는 잊혀 버렸다. 그간 살면서 참으로 쉽게 자비와 자선을 입에 올리고 복전을 닦는 적선공덕에 관해 제법 아는 척했다. 그러나 행함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론의 공허함이라니.



오랜 세월 절에 다녔기에 육바라밀의 첫머리에 놓인 보시, 그중에서도 무주상보시는 꽤 자주 언급하던 단어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나눔과 베풂에 익숙지 않아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본 적이 과연 몇 번이나 있었던가. 기부문화가 제대로 몸에 배어있지 않은 까닭에 기분 내키면 어쩌다 즉흥적으로 한번씩 모금 행렬에 끼는 게 고작이었던 나. 사랑은 자비는, 머리로 이해하는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가슴으로 실천할 때 비로소 뭉클한 감동의 현을 울리는 법이다. 허나 가깝고도 이리 먼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감.



문득 이는 자괴지심. 내복이 필요할만치 무릎 시린 나이에 이르렀건만 주변의 시린 마음 헤아려 덥혀주지 못하는 난 정녕 헛나이만 먹었던 게 아닌가. 2009-미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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