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량화 Aug 04. 2024

불가해한 로맨스의 주인공과 헌팅턴 라이브러리

LA 패서디나에 있는 헌팅턴 라이브러리는 희귀 고문서를 다량 소장한 도서관이다.

1919년 철도와 부동산 재벌이던 헨리 E. 헌팅턴 부부가 전 세계를 돌며 희귀 도서들을 수집해 설립했다.

1455년 제작된 구텐베르크의 성경 초판본과 셰익스피어의 작품 원본, 캔터베리 이야기의 원본을 비롯 프랭클린과 링컨 자필 등이 전시되어 있다.

따라서 학술연구를 위해 이 도서관을 찾는 학자들이 연간 수천에 이를 정도라 한다.


정식 명칭은 The Huntington Library, Art Museum, and Botanical Gardens이다.

이렇듯 일반인에겐 도서관보다는 수만 점의 명작들이 전시된 미술관과 동양풍 대정원이 더 흥미를 끈다.


소장품 중 다수는 훗날 아들이 메트로폴리탄 뮤지엄과 샌프란시스코 뮤지엄, 예일대학 미술관에 기증했다는데 남은 작품량도 대단하다.


복합 문화공간인지라 나아가 방대한 식물원 구경과 십여 개의 주제별 정원을 꾸미며 조성된 숲길이나 호숫가 산책하는 걸 한결 더 좋아한다.


한국에서 오는 지인을 위한 필수 방문 코스로,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 예술을 감상할 수 있으며 그리스 로마 풍의 조경 곳곳은 포토 스폿.


어마어마한 스케일로 펼쳐지는 장미정원 동백정원 선인장정원 일본정원 중국원림에 들면 현실이 아닌 딴 세상에 온 것 같다.


서로 격이 다르긴 하지만 베르사유궁전과 이화원의 호사가 오버랩되는 정원을 거니노라면 여러 상념이 교차된다.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하매 왕실이 아니어도 이처럼 재력에 따라 최상의 사치와 풍요의 극을 누릴 수 있음이니.

정원을 산책하다 어느 결에 황홀경으로 빠져버려서일까. 아니면 이 가든에 얽힌 저간의 사연이 비현실적일 정도여서일까.

세기의 로맨스로 불리는 헨리 8세와 천일의 앤, 이혼녀를 사랑해 왕위 버린 윈저공, 꽃 같은 각시 비명횡사시키고 이혼녀와 재혼해 늙어가는 찰스.

영국 왕실만 이례적으로 스캔들 제조기인가 싶지만 프랑스로 건너오면 더 쇼킹, 고교 시절의 교사와 결혼한 마크롱 대통령도 있다.

전 부통령인 바이든의 둘째 아들은 미망인이 된 형수와 결혼하려고 처와 이혼을 했다.

구약에 나타난 솔로몬을 낳은 다윗이나 유다의 경우도 현재의 잣대로 보면 지탄받아 마땅한 불륜을 저지른 장본인들이다.

이곳 헌팅턴 라이브러리를 오늘날의 명소로 만드는데 전폭적 영향을 준 여인 이름은 아라벨라 헌팅턴, 그녀는 헌팅턴의 두 번째 아내다.

그녀의 미모가 어떠했는지는 전해지는 사진만으로는 가늠이 안된다.

신비롭다거나 우아하게 아름답다거나 눈에 확 띄게 출중한 미녀라기보다는 도도하고 오만해 보이는 인상의 그녀.

도대체 무엇이 여러 남자를 사로잡은 혹은 어필하는 그녀의 놀라운 매력일까.

아라벨라는 열아홉에 고향 버지니아주 리치먼드를 떠나 뉴욕으로 왔다.

뉴욕에서 존 워샴이라는 중년 남자를 만나 결혼해 아들을 하나 낳았다.

워샴과의 결혼은 허울일 뿐이고 이미 전부터 그녀는 유부남이던 철도재벌 콜리스 헌팅턴의 정부였다.

아들마저 헌팅턴의 친자라는 설이 유력했으며 콜리스는 아내가 죽자마자 아라벨라와 결혼하면서 아들도 입양했다.

두 사람이 결혼하게 되자 그녀는 자기가 살던 집을 록펠러에게 팔았고 둘이 지었던 집은 티파니에서 구입해 유명한 보석가게로 변신했다.

아라벨라는 십여 년 후 콜리스가 죽자 그를 추모하는 많은 사업을 벌였으며 자신이 눈을 감을 때까지 검은 옷만을 고집했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 사후에도 헌팅턴 가문과의 관계가 이어져 시조카였던 헨리 헌팅턴과 자주 접촉하게 되었고 급기야 대형 스캔들이 터졌다.

처음엔 극구 부인했으나 결국 헨리는 아내와 이혼한 뒤 숙모와 함께 파리로 가서 결혼식을 치렀다.

아라벨라는 남편이 죽은 지 13년 만에 조카와 결혼하므로 당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세기의 불륜은 세기의 로맨스가 되었다.

미국 최대 재벌이었던 두 명의 헌팅턴을 남편으로 두었던 그녀인지라 무엇보다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 돈을 아끼지 않았다.

외국을 내 집 드나들듯 하며 고가의 명품과 세계 명작들을 사다 나르느라 세관에 낸 세금만도 당시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그녀는 유럽 왕실의 보석 컬렉션과 18세기 프랑스 장식 미술품 및 회화 수집에 열을 올려 미국과 유럽 화단의 큰손으로 불렸다.

아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들어준 남편은 갖가지 정원을 만들어 그녀를 기쁘게 했으니 전생에 그녀는 대륙을 통째로 구했던가.

엄청난 부를 거머쥔 한 여인의 사치스러운 허영기와 장식품에 대한 끝없는 물욕이 낳은 수집벽에 따라 태동된 헌팅턴 라이브러리.

아무려나 서태후 같은 욕망보다는 낫기야 한 데다 1924년 죽기 전에 남편과 함께 재단을 만들어뒀으니 지탄까지는 받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상속받은 아들은 어마님의 컬렉션과 귀중품의 상당 부분을 유수 미술관에 기증, 사회에 환원했다. 2017


***사진 구글 꺼

주소: 1151 Oxford Rd, San Marino, CA 91108

https://youtu.be/jeHV-9EhxD0?si=n7b1BoXS78EvJkTt




 

작가의 이전글 성산일출봉 상공 수놓은 드론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