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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좋은 날씨

by 무량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런 때.

야외활동을 하기엔 일사병이 우려될 정도의 기온이라 천상 방콕이 최상책이다.

집안에서는 무얼 해도 나른하니 집중이 안 되는 이런 날이야말로 책 읽기에 안성맞춤이다.

흥미진진한 책이면 독서 삼매경에 빠져들겠고.

별 재미가 없는 책이라면 얼굴 위에 책을 덮고 그냥 낮잠을 자도 무방하겠고...

펼쳐든 책은 더글러스 케네디의 <빅 픽처>다.

이 소설을 평하길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 마지막 페이지가 다가오는 게 두려울 만큼 흥미진진하다’며 몰입도 최고라 극찬한 뉴욕타임스만 믿었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초반은 진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대단한 속도감으로 읽히게 만들었다.

기발한 상상력을 생생한 묘사와 정교한 구성으로 조화롭게 버무려낸 소설.

예측불허의 상황 속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가 스릴러물다왔다.

특히 주인공이 몰두한 사진에 대해, 전문가 가까운 그의 해박한 설명을 들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또 한 가지 묘한 점은 그가 지탄받아 마땅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이상스레 그를 응원하고 싶은 심정이 드는 거였다.

전반부는 치밀하게 탄력을 유지하며 아주 빠르게 사건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맥 빠지게 느슨해져 버리는 소설인데도 유럽 지역에서는 독자들의 반응이 대단해 영화화도 되었단다.

미국 사회에 팽배한 물질주의를 시니컬하게 꼬집었다는 점에 유럽, 그중에서도 특히 프랑스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건 아닐까.

쫓기듯 엉성히 매조져진 마무리로 용두사미 격이 되고 말아, 마침내는 이게 뭐야~ 소리를 뱉으며 책을 접게 만들었음에도...

'오늘, 아내의 남자를 죽였다! 고액 연봉, 고급 차, 그림 같은 집,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아이들.

사진작가의 꿈을 포기한 것을 빼고는 변호사로서의 내 삶은 완벽했다.

이웃집 사진작가 게리와 아내의 불륜을 알기 전까지는.

사실 그를 죽이려던 건 아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깨진 병조각 위에 그가 죽어있었다.

내 아들을 살인자의 아들로 만들 수는 없었기에 자수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게리의 죽음을 나의 사고사로 위장했다.'

소설은 변호사 벤에서 사진가 게리로 살아가게 된 어떤 남자의 이야기다.

서른여덟의 벤 브래드 포드는 전도유망한 뉴욕 월가의 상속 관련 전문 변호사다.

벤은 어린 시절에 받은 외할아버지의 선물인 카메라의 뷰 파인더를 들여다보며 사진작가가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좇아 하는 수 없이(흠~저런...) 변호사가 되었다.

변호사라는 직업을 ‘사진가’라는 앞일을 위한 발판으로 생각하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면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그는 마냥 머뭇거릴 뿐이었다.

그는 매력적인 미모를 지닌 소설가 아내 베스와 두 아들을 둔 가장으로 겉보기엔 행복한 남자였다.

비록 그가 원하고 바랐던 삶은 아니지만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대로 중산층 생활이 주는 안락하고 평온한 일상을 즐기던 그는 자신의 아내가 이웃집에 사는 별 볼일 없는 삼류 사진가 게리와 혼외정사에 빠졌다는 사실을 눈치채게 된다.

벤은 게리 집에 찾아가 말다툼을 벌이다가 우발적으로 그를 살해하고 만다.

요트 사고로 완벽하게 위장하여 게리의 시신을 처리하고 남은 생애를 사진가 게리로 살아가려 작정한 그.

뉴욕을 뒤로하고 무작정 고속도로 위를 달려 대륙 가로질러서 몬태나에 정착한다.

몬태나 시골에서 드디어 젊은 시절에 접어버린 사진가의 꿈을 이루어가는 그.

그가 찍은 사진들이 지역 신문에 실리면서부터 게리란 이름은 전국적 유명세를 치르게 되고...


그대는 지금 하고 싶던 일을 하며 과연 만족스럽게 사나요?

지금의 삶이 그대가 진정 꿈꾸던 인생인가요.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살게 되기를 갈망하면서도, 젊은 날 품었던 꿈과 전혀 별개인 일을 하며 마지못해 현실에 적응하느라 주어진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처럼 가 보지 못한 길을 동경은 하지만, 현재의 안정된 삶을 포기하기 어려워 꿈을 실천에 옮기는 일 또한 어렵다.

그럼에도 인생의 빅 픽처(big picture)를 그려보라고 흔히들 쉽게 말한다.

제안서 또는 연구계획을 세울 때 개념 정립이나 설계 단계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이나 삶에도 곧잘 대입시키는 단어.

인생의 큰 그림을 그려라, 자신만이 꿈꾸는 이상적인 삶을 좇아라.

하지만 '빅 픽처'가 확실한 행복을 보장해 준다는 주술로 아무리 우리를 세뇌시킨다 해도 인생 여정이 절대 녹록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책 표지 하단에 쓰인 대로 "진정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었던 한 남자 이야기" 맞다.

하지만 그 삶은 결국 평생을 죄의식과 불안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거짓 위에 세워진 불행한 모래성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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