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가 어머니의 촛불 점화로 시작된 결혼식.
각 세 명씩인 신랑 신부 들러리의 입장에 이어서 성큼성큼 보무도 당당한 신랑 입장.
웨딩 마치에 따라 아빠 손을 잡은 신부가 다소곳 연한 미소를 지으며 신랑에게 인도되고.
신부님의 주례에 따라 혼인서약과 예물교환 그리고 가족사진 촬영까지 어디나 비슷한 결혼식장 풍속도가 이어졌다.
신록 눈부신 계절의 여왕 오월.
이종의 딸내미 결혼식은 워싱턴디시 한인 성당에서 많은 하객들의 축하를 받으며 성대하게 치러졌다.
이종사촌은 나와 동갑내기다. (그럼에도 그는 얼굴 맑은 동안이며 머리숱도 그대로라 마치 청년 같다.)
생일이 몇 달 내가 이르다고 깍듯이 누나라 부르는 그는 성격이 낙천적이다 못해 느려터진 천상 충청도다.
아무튼 어질디 어질어 빠진 무골호인으로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
40년 전 출판사에 다니던 한국에서의 생활은 무척 곤고했다.
요령이나 술수 모르는 질박하고 숫된 그는, 눈 반들거리며 제 몫 약삭바르게 챙기는 영악한 무리로부터 뒤처질 수밖에 없는 아웃사이더였다.
게다가 힘겹고 어려운 이웃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고 가벼운 주머니나마 털어줘야 직성이 풀리는, 어찌 보면 한참 대책 없는 가장이었다.
당장 자기 집도 전기세를 못내 단전 조치를 당할 판에, 학비가 밀려 학교엘 못 가고 우는 이웃집 아이에게 급한 돈을 쥐여주던 사람.
육교에서 구걸하는 노인에게 버스비 내어주고 먼 길 터덜터덜 걸어오는 사람.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아내는 그런 남편을 보다 못해 미국에 사는 시누이에게 편지를 썼다.
교민 청년과 결혼해 세탁소를 운영하며 안정된 생활을 누리던 시누이가 오빠네를 초청했다.
근면 성실히 노력해 삼 년 만에 그들은 반듯한 리커 스토어 주인이 되었고 비즈니스는 날로 번창해 성업 중.
워싱턴 디시에서 현재 몇 개의 사업체를 갖고 있으며 한국에 부동산도 제법 마련해 뒀다.
본 성격이 어디 가랴, 이제는 마음 편히 나누고 돕고 봉사활동도 맘껏 넉넉히...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재물로 그는 내색하지 않고 조용히 그리고 겸손하게 봉사할 뿐 겉으로 드러나게 나서지 않는다.
성당 재건축 시 거금의 건축기금을 봉헌하고도 그러했듯 매사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행해 왔다.
하이, 엉클 폴! 비즈니스 장소인 디시에서는 누구나가 그렇게 칭하는 그는 항상 사람 좋은 순박한 웃음을 달고 산다.
집이 있는 메릴랜드 스프링밸리에서도 선량한 이웃으로 두루 인심 얻고 지내는 그다.
하도 어수룩해서 한국에서라면 어림도 없었으리라.
반들반들 영악해 빠져 눈뜨고도 코베일 한국에서는 옳게 살아남기 어려운 유물급 인물이 이종이다.
제 몫도 제대로 못 챙기는 띨띨한 사람 취급당하며 살기 십상이건만, 그런데 미국에서는 그의 성실함과 우직함, 고지식함이 통했다.
갈라디아서 말씀대로 꾸준히 선을 행하면 거둘 때가 온다고 했듯이.
덧셈, 뺄셈 못 따져 항상 마이너스로 손해보는 것 같지만 그것이 훗날 들어올 복자리 넓히는 이치.
그의 일상화된 선행은 바로 일반 미국 시민들이 지니고 살고자 하는 기본 정신, 곧 선한 사마리아인의 자세다.
여기서 그는 올곧은 천성이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고 대접받으며 성공한 이민자의 표본적 삶을 영위하고 있다.
남매, 딸은 이쁘게 아들은 훈남같이 반듯하게 잘 키워놓았으니 흡족한 미소 지을 만도 하다.
예식이 끝나고 곧 이어진 피로연.
메인테이블엔 신랑신부와 각 들러리들이 앉고 그 앞 플로어를 중심으로 성장을 한 양가 가족 친척 친지들이 화기애애하게 음식을 나누며 담소 중이다.
신부 할머니인 막내이모는 연두색 고운 한복차림에 그저 흐뭇한 표정 환하다.
사회자의 가족 소개에 이어 미국 스타일대로 댄스파티가 시작됐다.
첫 번째 춤은 이날의 주인공인 신랑신부 한쌍이 펼치는 아름다운 포옹 댄스 감미로웠다.
두 번째 춤인 아빠와 신부의 춤이 잠시 이어지는가 싶더니 이종이 딸내미를 덥석 업고는 빙그르르 도는 것으로 댄스파티는 마무리됐다.
이종이 시종 딸에게 보내던 자애 넘치는 시선 그리고 일순 눈가에 반짝이던 물기.
그것은 결혼하는 딸에게 전하는 모든 아버지들의 곡진한 마음의 표현이리라.
찬란한 아침을 맞는
새로운 삶을 축복하소서
한마음 되어 서로 사랑하며
화목한 가정 이루게 하소서.
오늘도 출가한 딸을 향한 이종의 기도는 이어지겠지.
결혼식장에 딸의 손을 잡고 걸어 들어가 사위에게 딸의 손을 넘겨주던 순간의 이종 사진에서, 4 마이너스 1보다는 4 플러스 1의 마음이 읽혔다.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