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하니 강아지풀 얘기하려는 게 아닙니다. 지금은 강아지가 별 후유증 없이 완전히 나아 아무렇지도 않지만 당시야 무척 놀라고 겁났었지요. 야생풀이 씨앗을 굳히는 이맘때가 되면 목초지나 사막지대에서는 Foxtails라는 이름의 거친 풀을 아주 조심해야겠더군요. 애완견에게 치명적인 위험을 주는 풀이니까요. 초겨울의 상쾌한 일요일 아침이었답니다. 언제나 그러하듯 잠에서 깨자마자 창문부터 죄다 열어두고 아침체조를 하러 밖으로 나왔습니다. 여느 때처럼 울 집 파수꾼이 꼬리를 흔들며 앞에 다가와 서더군요. 헌데 강아지 눈이 이상했습니다. 아직 잠이 덜 깨 내 눈이 이상한가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살펴봤습니다. 역시나 눈에 문제가 생긴 거였어요, 오른쪽 눈이 퉁퉁 부어 거의 감긴 채로 애소하듯 나를 바라봅니다. 밤새 안녕이라더니 어제저녁까지 아무 일 없다가 한밤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람. 웬일인지, 무슨 탈인지, 원인이 뭔지, 아무 영문도 모르면서 우선 천일염을 진하게 풀어 눈을 소독시켰습니다. 병원도 문을 열지 않는 일요일인 데다 상의할 사람도 없는 상황,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지요.
강아지는 몹시 불편한 듯 자꾸 눈가를 앞발로 비벼댔습니다. 말 못 하는 짐승이 오죽 괴롭겠나 싶어 안쓰럽기 그지없었지요. 눈은 점점 더 부어오르고 눈물이 흘렀으며 눈곱도 끼기에 계속 냅킨으로 닦아주었고요. 눈 내부를 살펴보려 눈꺼풀을 제켜보니 위쪽 가장자리에 속눈썹 같은 게 두 가닥 하얗게 보이데요. 검은 동자도 투명하고 흰 동자만 약간 불그레할 뿐 각막이상은 없어 일반 눈병 같지는 않아 보였으나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하기만 하더군요. 뉴저지에 있는 요셉에게 전화를 하니 그 역시 속수무책, 고양이를 키우는 딸에게 물어보라고 합니다. 이번엔 딸에게 전화를 걸어 강아지 상태를 소상히 알렸습니다. 언젠가 강아지가 산책에서 돌아와 자꾸만 발을 핥아가며 절절매기에 살펴보니 텀블링 트리 가시가 발에 박혀 뽑아준 적이 있는데 이번엔 눈이라 부기 외엔 외견상 드러나는 것도 없지만요. 일단 사진을 찍어 전송해 달라기에 한 손으로 녀석 눈을 헤집고 한 손으론 셔터를 눌러 상태를 정확히 전송해 줬지요. 곧이어 메일을 보낼 테니 참고해 보고 더 나빠지면 집에 가겠다며 다시 연락을 달라고 합니다. 하루 쉬는 휴일인데 오라 가라 어쩌라 귀찮게 만드는 건 아닌가 지레 걱정부터 됐습니다.
메일을 열어보니 개에게 발생한 바 있던 제 증상들이 찍힌 너무도 끔찍스러운 사진들이 좌악 들어있더군요. 구글에서 검색한 foxtail dog eye란 제하의 사진들은 보기에도 참혹했어요. 여우꼬리풀, 우리말로 뚝새풀 흔히 독새기풀이라 하는데 가시 같은 씨가 옷에도 박히고 동물 털에도 잘 붙는다네요. 날카롭고 거친 야생초인데 조그만 풀씨가 개의 눈이나 귀에 들어가 염증을 유발하고 털 속이나 발바닥에 박혀 수술까지 받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특히 풀밭에서 뛰놀던 강아지가 호흡 중에 무심코 풀씨가 코로 빨려 들어가면 가장 위험하대요.
사진을 훑어보고 나서 다시금 정밀 관찰해보자 싶어 강아지 눈을 제켜보았지요. 이번엔 아까와는 달리 눈꺼풀 앞쪽에 그것도 먼젓번과 다른 형태의 하얀 이물질이 보이는 거였어요. 순간 풀씨 머리 부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처음엔 풀씨의 꺼럭 부분이라 마치 속눈썹 터럭처럼 보였을 테고 이번엔 약간 뭉툭한 머리 쪽이 드러난 셈, 강아지가 제 눈을 자꾸 비비는 동안 살 속에서 위치 이동을 한 모양이라 짐작됐어요. 안경을 찾아 끼고 핀셋과 안연고 그리고 소독용 소금물도 넉넉히 준비해 둔 다음 강아지를 살살 쓰다듬어주고는 꼭 끌어안고서 눈을 열었어요.
긴장되고 겁도 나고...... 도와주세요~화살기도가 절로 바쳐졌지요. 외과의가 집도에 들어가듯 심호흡 한번 하고 나서 핀셋을 들어 이물질 끝에 대고는 단숨에 뽑아 쳤더니 용케도 통째로 싹 딸려 나오는 거예요. 놀랍게도 아래 사진처럼 제법 큰 풀씨 가요. 만일 처음에 보고 그때 뽑아내려 했다면 역방향이라 '미늘'이 거꾸로는 빠지지 않듯 강아지 눈에 손상만 입히고 풀씨는 다 빠지지도 않았을 텐데 천만다행히 거스름 없는 상태로 돌아앉았을 때 빼낸 거지요. 풀씨 크기는 작지만 보리 꺼럭처럼 예리한 가시는 길고도 매우 억세더군요. 가시 제거를 한 뒤 문제가 잘 해결됐다고 딸내미에게 전화를 했지요. 엄마 손은 약손! 완전 수의사 수준이네! 딸도 기뻐하며 전화기 너머로 손뼉을 쳐주더군요. 이게 어디 제힘이겠어요? 하늘의 도우심이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오전 내 강아지와 씨름하느라 정오에야 미사에 참례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가 절로 읊조려지더군요.
다음 해, 화창한 봄날 일요일. 산놀이 꽃놀이 물놀이하러 야외로 나가기 딱 마침맞은 휴일이었는데요. 주말에 아이들 보고 뒤란 도깨비풀 제거 작업 일손 돕기 하러 오라고 카톡을 보냈어요. 도깨비 같은 독새기풀은 foxtails로, 그것도 일이라고 마지못해 한마디 '알아써'와 함께 표정 시무룩한 이모티콘을 딸려 보냈더군요. 알러지가 아니면 혼자서 애진작에 말끔히 손봤을 텐데, 이번엔 상황이 상황인 만치 아이들 협조를 구하는 SOS를 친 것이지요. 물론 풀독 같은 알러지도 겁났지만 일면 엄살도 섞였던 거고요,
재작년에 미늘과 흡사한 풀씨 한 톨이 멍이 눈 속에 들어가 개고생 시키고 나까지 생고생, 애들은 맘고생을 했는데요. 그 후 멍이 놀이터인 뒤뜰의 foxtails 씨앗 초전박살 작전은 한국의 한미연합훈련처럼 연례행사가 되었지요. 잔디밭이니 잔디 깎는 기계로 밀면 되련만 독새기 씨앗이 반동강 날 경우, 산지사방 씨톨이 퍼져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 모래밭에서 바늘 찾듯 일일이 수색해야 하거든요. 해서 드르륵 기계로 편하게 해선 안되고 현미경 들이대듯 독새기풀 씨앗을 찾아내야 하는 일. 풀밭을 샅샅이 뒤적여 완전무결한 퇴치작업을 펼쳐야 하는 건데요. 씨앗이 아직 여릴 때 대궁을 잡고 삐비 뽑듯 하나하나 뽑아내야 하므로 일이 더디기도 하려니와 그래서 진력나게 하는 작업이지요. 사실 애들 일손까지 빌릴 큰 일감도 아니면서 굳이 애들을 부른 건, 그들이 나보다 몇 배 더 멍이를 애지중지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니 주말 놀이 시간 두말없이 반납하고 득달같이 달려왔지요.
문제의 풀 씨앗은 머리 부분이 뾰쪽한 데다 미늘 구조라 개의 눈, 코, 발가락 사이, 귀, 입 안쪽에 들어가 박히면 심각한 폐해를 일으키는데요. 풀씨가 영글어 누르스름 마를 무렵이 최고 위험시기로, 이 치명적인 작은 식물의 씨앗 근처에는 애완동물을 가급적 노출시키지 말아야 해요. 개가 갑자기 발을 전다거나 재채기를 하거나 코에 발을 대고 비빈다거나 눈 점막이 충혈돼 있다면? 혹시 독새기풀 피해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하며 이때 부종과 염증을 보일 경우, 급기야는 수의사를 찾아가게 만든답니다. 전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발견되지만 특히 미서부에 흔한 잡초로 영어명이 foxtails인 화본과 식물 독새기풀. 주로 들판, 목초지, 공터, 길가에 무리 지어 자생하면서 지나가는 동물의 털에 씨가 달라붙거나 야외활동 중 옷에 묻어 콕콕 찔러대며 성가시게 하지요. 전에 멍이 눈으로 그 씨가 들어가 박혀 크게 혼이 난 터라 아주 이 씨앗을 경계하고 있는데요, 동물 기르며 건조기후대에 산다면 특히 더 신경 써 지켜봐야 하는 foxtails랍니다.
아침에 일어나 딸내미 하는 말이, 땡볕에 땀 줄줄 흘리며 풀 뽑는 꿈까지 꿨다면서 일단 심적 부담을 주는 일부터 어서 해치우자며 서두르더군요. 기왕 하는 일이니 봄 들녘 달래나 냉이 뜯으러 온 기분으로 임하자며, 목장갑 끼고 선글라스에 모자를 찾아 쓰곤 지루하지 않도록 상쾌한 고전음악도 틀어놓더라고요. 역시 햇살 약한 시간대에 일하는 게 낫겠다 싶어 휴일 아침은 부지런 떨며 도깨비풀과 더불어 시작되었답니다. 고상틱하게 흐르는 클래식은 쪼그리고 앉아 풀 뽑는데 전혀 어울리지도 않거니와 도움이 별로 안 됐어요. 두런두런 얘기야 나누지만 가뜩이나 단조로운 작업, 슬슬 졸음 몰려와 자칫하다간 코를 땅에 박을 판인데 음악까지 부드러우니 더 나른하더라고요. 죄다 들 뒤뜰에 엎드려 풀 뽑는 동안, 멍이만이 신바람이 나 주위를 맴돌며 이리저리 나댔습니다.
일도 일 같잖은 일로 눈에 보이는 성과도 미미한 데다 능률도 오르지 않자 슬며시 지겨운 감이 들이찼지요. 분위기 전환용으로 어릴 적 풀각시 엮으며 놀던 회고담이며 외가에서 본 콩밭 매는 아낙들 얘기에다 재넘어 사래긴 밭 시조도 읊어봤으나 반응 시큰둥. 너나없이 단순노동에 점차 지쳐갔지요. 눈에 띄게 일손도 굼떠졌고요. 말이 좋아 흙에 살리라~일 따름으로 농촌에 노인만 남은 이유가 미루어 짐작이 된다느니. 전원일기 드라마에서 농촌 청년들이 술 마시며 스트레스 운운할 적엔 뭔 스트레스? 이해 안 됐는데 알 만하다느니. 그악스럽게 자라날 잡초 뽑을 생각 하면 먼 훗날 푸른 초원에다 그림 같은 집을 지을 귀농의 꿈은 이쯤에서 접겠다느니.... 한마디로 땅만 보고 농투성이로 사는 삶을 잠깐 체험해 보니 낭만적으로 보이던 액자그림과는 달리 영 아니올시다,라는 거였지요.
게다가 음악까지 축 처지므로 비효율적이다 싶었던지 신나는 최식 랩으로 돌렸는데 이번엔 내가 너무 정신 수란스러워 바꿔라, 바꿔! 했지요. 아리 아리랑에서부터 하안 많은~~ 민요로 풍악 판이 바뀌자 막걸리 내 와라, 새참 먹어야겠다, 요구가 빗발치듯 뒤따르더군요. 농주에 새참 타령할 요량이면 노동요가 안성맞춤 아니냐며, 모두의 의견에 따라 흥겨운 노동요가 흘러나왔지요. 한정 없이 이어지는 단순노동인 길쌈을 하거나 물레질, 배틀을 밟으며 부녀자들이 부르던 노래가 바로 노동요. 에야디야 에헤야 띠야~~ 주고받는 사설을 들으며 후렴구를 따라 하다 보니 실제로 덜 지겹고요, 얼쑤 흥이 나면서 어느덧 신명이 지펴지더군요. 어깨 좌우로 들썩대가며 두어 시간 걸려 foxtails를 완전히 소탕하고 나니 야드용 대형 쓰레기통 가득 풀더미가 채워지더군요. 땀 흘린 노동 끝의 밥맛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네요.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