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량화 Aug 17. 2024

달개비꽃 기억들

달개비꽃은 파란색이되 그냥 파랗다 하기엔  유달리 개성적이고 생김새도 독특하다.


파랑 계열엔 하늘색 청색 바다색 남색 벽옥색 비취색 담청색 쪽빛 등등이 다 포함된다.


간단히 블루라 이름 지어 버릴 수 없어 색상표를 대조해 보니 코발트블루는 아니고 울트라 마린에 가깝다.


남프랑스나 스페인의 밤하늘 빛깔처럼 맑지만 약간은 어두운 파랑.


캘리포니아 사막에서도 초저녁이면 리 투명한 군청색 밤하늘을 만나곤 했다.


울트라마린은 virgin blue라고도 불릴만치 색 자체에서 순결하고 고귀한 품격이 느껴진다.


청순하면서도 해맑은, 범접할 수 없는 청초한 기품 같은 게 느껴진 댈까


꽃 가운데 달개비꽃처럼 이리 맑고도 투명하게 파란색인 꽃이 또 있을까 싶잖다.


청수국 꽃빛은 맑지만 진하고 꽃마리나 봄까치꽃은 파랑이라기엔 애잔할 정도로 연하다.


수레국화 용담 붓꽃은 청보라에 가깝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달개비꽃만큼 선연하게 파랗고 생김새 특이하게 청신한 꽃은 일찍이 본 바가 없나니.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달개비꽃.


당나라 시인 두보는 꽃피는 대나무라며 귀히 여겨 분에 가꾸면서 달개비꽃을 완상 했다는데.


닭의장풀이란 이름이 있듯 계장초, 잎모양이 대나무와 비슷하대서 죽절채, 꽃이 푸르다하여 벽선화 남화초로도 불린다.


달개비꽃은 하루 동안 피어났다가 이튿날 아침이면 나비 날개 같던 꽃잎이 녹아 스러져 버리기에  '짧았던 즐거움'이란 꽃말을 지녀 미국식 이름은 dayflower다.


칠월부터 피기 시작한 달개비꽃이 팔월 장마 지나자 공터마다 지천으로 깔렸다.


이른 아침에 피어나는 여리디 여린 꽃잎 애처로울 정도이나 생태만은 굳건해 땅바닥에 납작 기다시피 가로로 뻗어나가는 줄기는 마디를 맺어가며 한정 없이 번진다.


풀숲에 핀 달개비꽃은 무심히 지나치면 보이지도 않는 꽃, 눈여겨보려면 허리를 숙이거나 쪼그리고 앉아야만 한다.  


아무 애정 없이 버티고 서서 바라본다면 보잘것없는 그저 그런 잡초의 작은 꽃일 뿐인 달개비꽃이다.


파란 꽃잎을 으깬 물에 명주 염색을 한다는 천연염료였다지만 귀한 명주옷은 언감생심이고 목수건이 고작이던 당시다.


흔하디 흔한 명아주며 비름나물도 데쳐서 무쳐먹던 시절, 연한 잎과 줄기를 식용한다고 하나 아무도 나물해 먹지 않았고 저 혼자 그냥 돋았다가 일없이 스러지고 말던 달개비.


외갓집 머슴아저씨는 무성한 달개비 덤불을 낫으로 척척 쳐다가 외양간에 넣어주거나 퇴비거름하려고 두엄가에 부려놨다.


그로부터 삼십여 성상이 흐른 80년대 초, 아주 오랜만에 달개비와 만났다.


특이하게도 귀한 약재로써 재회하게 되었다.

시어른은 당뇨가 심했다.


혈당관리를 인슐린 주사요법에 의지해야 할 정도로 중증이었다.


가계 내력인지 시당숙님 시고모님 시누이까지 당뇨로 식이조절을 하며 음식 조심하며 살았는데 천만 다행히 요셉은 아직  괜찮다.


원래 시댁 식구들은 육식과 기름진 음식을 유난히 즐기는 식성들이다.


반면 기름진 반찬 대신 내 스타일의 촌스런 토종밥상에 어쩔 수 없이 길들여진 요셉은 그 덕에 당뇨로부터 자유롭게 됐다는 점 본인도 인정한다.


두주불사 하며 허랑방탕 지낼 적엔 젊었기에 뭐라도 능히 소화시킬 수 있어 몰랐던 걸 나이 지긋해지자 절로 수긍케 되는 때에 이르렀던 것.


유전적 요인만이 전수인 게 아니라, 그처럼 평상시 먹어온 음식에 따라 자기 몸이 만들어지기에 바른 섭생법은 절대 필요하다.


고향에서 농사를 짓던 시숙은 여름마다 대구 형님댁으로 정하게 베어온 달개비를 한 바지게씩 갖고 왔다.

한방에서도 열을 내리게 하고 독을 없애는데 쓰이는 달개비인데 하여튼 당시 세간에 당뇨 특효약이란 소문이 나있었다.

그리하여 달개비는 효험 있는 민간요법으로 널리 회자되고 있었다.

전적으로 양방에 의존하고는 있었지만 효과를 봤다면야 그럴 리 없으나 급한 판이라 영지버섯이며 누에 등등 어떤 동식물인들 마다할 것인가.

생사가 달린 건강회복에 해결책이 없는 막판, 정 답답해지면 보조약제로 굼벵이건 지네건 지렁이도 기꺼이 쓴다.

막다른 벽에 부딪히면 저런 류보다 더한 거라도 시도해 보게 될 판이다.

그에 비해 시골 들녘에 흔하디 흔해 낯익은 달개비라 거부감도 별로 안 드는 약재다.  

잎이며 줄기 뿌리까지 전부 다 그늘에서 말린 뒤 커다란 솥에 넣고 푹 달여서 갈증이 날적마다 시어른은 물 대신 드셨다.

달개비 물을 장기복용하기도 했고 이런저런 민간요법에도 기대봤으나 별 효험을 못 보았으니.

시어른은 담도 스턴트 시술을 비롯, 결국은 췌장암 수술 후 신장투석을 받으며 무척 고생하시던 와중에 별세하셨다.


벌써 이십 수년 전 일이다.


달개비꽃은 아롱다롱 그리운 유년의 물빛 기억들을 반추하게 하는 꽃이다.

허나, 한편으론 죽음에 이르는 지독스러운 고통을 떠올리게 하는 아픔의 꽃이다.

작가의 이전글 옵션 다채로운 휴양지 협재해수욕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