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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등선한 매미, 생명을 노래하다

by 무량화

한여름을 노래하는 매미소리가 여간 차지지 않다. 숫제 귓가가 쟁쟁하다. 제한된 짧은 한살이 마무리하기 전, 구애를 위해 목청껏 짝을 부르며 성하의 여름을 소리로 장악하고 있는 매미. 맴맴~ 쓰름따름~ 찌익찌직~한 종류가 아니라 각기 다른 여러 가락이다.

참매미인지 말매미인지 아무튼 제법 큰 매미다. 모과나무에서 들리는 매미소리의 향방을 좇아 고개 한껏 젖히니 매미가 눈에 띈다.


지켜보는 걸 아는지 매미는 소리를 딱 그친다. 눈싸움하듯 한참 쳐다보고 있으려니 젖힌 목이 뻐근해진다. 내가 졌다, 남 구애작전 훼방 놀 심술보는 아니니 그만 가련다. 대신 모과나무줄기에 남겨진 매미껍질 두엇을 떼어갖고 온다. 우화등선 날개 달며 벗어 둔 말간 허물, 매미의 헌 외투를 부서질세라 조심스레 들고 와 괴목 분재에 올려놨다.

하도 엄청스런 뉴스가 날마다 터져 나오는 판국이라 작은 기사거리는 묻히지만 매미 소리 시끄러워 밤잠 설친다는 뉴스도 있다.

매미인들 어쩌랴. 낮에 울고 밤에는 울지 않는 주광성 곤충인 매미다. 밤을 대낮처럼 밝히는 야간 조명 땜에 한낮으로 헷갈려버린 매미 잘못이라 어느 뉘 탓하겠는가. 더구나 '도시 열섬(Urban Heat Island)' 효과의 강도가 매미 밀도를 높이는 데 영향을 준다니 대도시 좋은 동네일수록 새벽에도 매미소리 오달지리라. 꿉꿉하던 장마 끝나자 달아오르는 폭염에 열대야 영향으로 근린공원 초목은 겁나게 짙푸르러지고 매미소리 날로 무르익어간다.


모과나무 표피는 군복처럼 얼룩무늬를 이룬 데다 살결은 아주 매끈하다. 매미도 거칠고 험한 피부보다 매끄러운 수피에 혹해버렸나. 모과낡 곁을 지나는데 줄기에 말라붙은 매미 껍질이 시선에 들어왔다. 바짝 다가가보니 여기저기 매미 허물이 붙어있었고 아래짬으로 내려올수록 더 많았다. 굼벵이가 주변에 집단촌을 이뤘던 걸까, 애벌레가 벗어버린 껍질이 모과나무에 유독 여럿이다.
땅속에서 기어 올라온 애벌레는 번데기 과정을 지나지 않고 탈피를 거쳐 성충인 매미가 된다. 유충의 등껍질을 가르고 그렇게 우화등선하는 매미.



유전자에 각인된 코드대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본능 따라 무조건 오르고 또 오른다. 어쩐지 처연하고 숙연하다. 지하에서 나무뿌리의 수액만을 먹으며 유충으로 산 세월이 보통 5년에서 십 년이라고 한다. 반면 성충이 되어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열흘에서 한 달 남짓이다. 그 짧은 기간 동안 목청 다해 암컷을 불러 맡은 바 종족 번식의 대업을 완성시켜야 한다. 무더운 날 쨍쨍하게 울어대는 매미소리는 제 몫을 다하느라 그러니 밉다 할 수도 없겠다. 인생사뿐 아니라 생명체 저마다, 천상으로 향하기 위한 노정은 그리 고단한 거니까.


뉴저지에서다. 다른 해에 비해 유별나게 매미소리가 시끄러웠다. 찌익- 하는 단음으로 성하의 단풍나무숲을 흔들어대던 붉은 눈 매미. 미 동부에만 서식한다는 그 매미는 87년에 부화되어 땅속에서 무려 열일곱 해를 지내다가 지난여름 일제히 성충이 되어 지상으로 올라왔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매미로서의 생애는 고작 십수 일. 허락된 그 기간 동안 부지런히 짝을 찾아 교미를 한 다음 죽음을 맞음으로 섭리를 완성시킨다는 매미다.


그 사이, 굼벵이는 예리한 호미 날에 찍힐 수도 있었을 테고 허기진 새의 먹잇감으로 채일 수도 있었으리라. 가뭄으로 메말라 온몸이 타들어 갈 때도 있었겠고 홍수로 물에 잠겨 숨 막힐 적도 있었을 것이다. 고통과 질곡의 시간을 견뎌내고 마침내 허물을 벗기까지의 긴 기다림. 17년이라면 아기가 태어나 고등학생이 되고 청년이 장년으로 바뀌는 세월이다. 보잘것없는 버러지로 꿈틀대며 어둡고 축축한 땅에 묻혀 그 장구한 나날을 지탱해 낼 수 있게 한 것. 그것은 ‘꿈을 갖고’ 라거나 ‘의지로 견디거나’ 하는 개념 이전, 기다린다는 생각마저 놓아버리고 그냥 무심히 살아낸 것은 아니었을까.


기다림은 존재한다는 것의 또 다른 이름이며 나아가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하여 생이 영위되는 동안 누구에게든 기다림은 있게 마련이다. 기회를 기다리고 내일을 기다리는가 하면 그리운 이를 기다리고 메시아가 올 날을 기다리기도 한다. 제각각 빛깔과 모양이 다를 뿐이다. 무엇인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살아있음의 축복일 수도 있으나 때로는 지독한 고통이기도 하다. 이민자들에게 있어 그린카드는 생명선이다. 일각이 여삼추로 느껴질 정도의 피 말리는, 그 절절한 기다림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더더욱. 또한 기다림이 물거품 되어 허망히 스러져 버렸을 때의 아득한 절망감이라니. 그래도 기다림은 궁극엔 희망과 통한다. 미래에의 꿈으로 저마다 내밀히 품고 있는 각양각색의 기다림들. 끈기 있게 기다려서 이룰 수 있는 성취라면 묵묵히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이 덕목이겠다. 나아가 즐겁게 기다리는 지혜도 필요한 것. 그보다 기다린다는 생각마저 여윈 무심의 경지야말로 진정 가닿고 싶은 경계일 터.


누구에게나 자기 생의 치열한 날이 있다/굼벵이처럼 견디며 보낸 캄캄한 세월... 중략
때를 잘 알고/그 때에 가장 알맞는 모습으로/뜨겁게.../뜨겁게.../살아가야 하리라.
매미를 빌려 그렇게 읊은 시인은 정녕 가장 알맞은 모습으로 장관직을 옳게 수행했을까. 북한 가서 대접 잘 받고 온 인사로써 하늘 우러러 한점 부끄럽지 않은. 그가 노래한 매미는 땅 속 굼벵이가 성충으로 우화 하기 위해 대지를 뚫고 기어 나와야 한다. 그러나 꽁꽁 다져진 콘크리트 바닥에, 아스팔트 도로에 꿈이 좌절된 유충 무릇 기하일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다수인의 편리를 위해 자연의 질서를 수도 없이 거스른 우리다. 근자 기후변화로 인한 엄청난 홍수 산불 폭염에 바다 수온이 높아지며 생태계가 혼란을 겪는 이 모든 불길한 현상. 자연의 반격인지 보복인지를 당하고 있음은 결국 자업자득, 원인 없는 결과는 그 어디에도 없는 법이다. 매미소리가 문득 오만한 인간에게 보내는 경종처럼 들린다. 해서 감히 소음이라 타박할 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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