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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타오름달

by 무량화

노트북이 명을 다했다.

2005년부터 쓰던 컴퓨터이니 갈 때가 되었으나, 오래 손에 익은 물건인 데다 별다른 이상이 없어 내처 사용했다.

노트북에다 십 년 넘어 저장시켜 둔 사진과 자료들을 데스크톱으로 옮겨놔야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뤄왔다.

설마설마하던 중 어느 순간 노트북이 딱 멈춰버렸다.

뚜렷한 전조증상도 없이 갑작스레 심장마비가 오듯 졸지에.

하긴 두어 번 화면이 스르륵 사라진 적이 있긴 한데 번번 무시해 버렸다.

사실 올여름 같이 유례없는 폭염에야 기계인들 더위 먹지 않겠나.

워낙 단순무지한 기계치라 '더위 먹어 쓰러진 노트북'이라고 나 편할 대로만 이해하기로 했다.

손자가 왔길래 완전 먹통이 된 노트북을 혹시나, 하고 맡겼다.

자타칭 컴박사 조차 원하는 글과 사진을 찾으려 골머리 앓는 것 같기에 아서라, 마음 비웠으니 그만두라고 일렀다.

특별 수사본부라면 모를까 그럴만치 중요한 사안은 아니지 않은가.

쓰레기 하치장처럼 쌓인 숱한 잡동사니 데이터 메모리에서 필요한 부분만 골라내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는 작업일 터.

디지털 시대의 도래로 편리한 세상은 됐을지언정 이처럼 아차 순간에 간직해 둔 많은 걸 허망히 잃어버릴 수도 있다.


가장 확실한 건 원고지에 써둔 글인데 90년도부터 컴으로 문서작성을 해버릇했으니 이제 새삼 아날로그시대로 돌아갈 수도 없게 멀리 와버렸다.


뿌듯한 기분으로 완성시킨 글을 저장하려다가 컴 조작법 미숙으로 키를 잘못 눌러 날려버린 기억 어디 한두 번인가.


USB에 저장시켜 놓은들 뭐 하나, 척척 알아서 활용을 못 하는 답답이인 것을.


과학 쪽이라면 거의 원시인 수준인 기계치라 유에스비라는 쪼맨한 물건은 여기저기 마냥 낑겨둔 채 방치하고 마니.


태생적으로 워낙 기계나 과학의 산물들에 대해 백치 둔치 천치라서 친해보고자 시도도 거의 안 하고 뒷북이나 치며, 옛날이 좋았어! 하는 꼴이다.


사실 아날로그 시대의 것들은 인쇄된 책자로 글이 남고, 빛바래더라도 현상된 사진 얼마든지 오래 보관이 된다.


반면 디지털 시대의 사진이나 글은 사상누각 같아 허공 중에서 가뭇없이 스러지는 경험, 블로그를 하면서 종종 해보았을 터다.


고단한 이민 초기 생활 중, 짬짬이 오 년여 넘게 저장해 놨던 단상들 결국 다 날려버린 전력도 있다.


글에 곁들였던 필름 사진이 아닌 디지털 사진들도 당연히 몽땅 사라졌다.


그나마 근자 들어 데스크톱에도 사진을 담아두기 시작해 겨우 근래 2~3년 치 사진만 남게 됐다.


처음엔 잃어버린 자료들이 아쉽고도 아까워 자꾸만 미련이 맴돌았다.


그러나, 결국 언젠가는 인연이 끝날 건데 미리 알아서 정리된 거라며 스스로를 추슬렀다.


이를테면 내 수준으론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 정신건강을 위해 신속포기로 선회를.^^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찬란히 빛나던 태양도 이윽고 바닷속으로 진다.'

이는 화산재에 묻혔다가 1500년 후 발굴된 폼페이 어느 벽에 남겨진 누군가의 낙서다.

유형무형의 우주만물은 생겨났다가 때 되면 드디어는 소멸한다.

생(生)은 반기며 좋아하고 멸(滅)은 싫어하며 거부하려 들지만, 시절인연 따라 생긴 즉 모든 것은 반드시 멸하기 마련이다.

인연 따라 일어났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존재는 흩어져 사라지고 마는 것.

해서 제행무상이거늘 애착 둘 것이 무엇인가.

자연계 모두 생멸을 겪으므로 틀림없이 예비되어 있는 그날.

한 생애가 문 닫히는 마감일은 오직 하늘만이 안다.

그때가 언제 될지는 모르지만 필히 오고야 말 작별의 시간.

마지막을 자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아쉬워하지도, 안타까워하지도, 슬퍼하지도 말라고 선현들은 가르친다.

동시에 모든 집착을 놓아버리라고 누누이 당부한다.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듯 떠날 때 역시 아무것도 지니지 못한 채 너나없이 빈손으로 가는 우리.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 하였다.


뒤돌아봄 없이 무심히.... 어떤 인연에도 미련두지 않고 초연히...


류시화의 시처럼, 다시는 묻지 말자 /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지금도 잘한 일이라 여겨지는 게 있다.

뉴저지에서 이사 오며 꽤나 아끼던 한국 도서와 세트로 된 그릇, 침대, 카우치 등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온 점이다.


특히 아들이 한국에서 꼭꼭 싸매 보내준 도서들, 그러나 제아무리 좋은 책일지라도 읽힐 때라야 귀한 책인 거다.


맥없이 서가에 쌓인 채 묵혀진 책은 이미 책이 아니라 폐지로 돌아가는 중 아닐지.


지난봄, 옆집 할머니가 눈을 감은 지 며칠도 안 돼서였다.

생전에 애지중지 쓰다듬던 살림들은 두 종류로 분류돼 구세군 교단에서 싣고 갔고 나머지는 가차 없이 쓰레기 수거차에 실렸다.

전에 한국에서 지인이 시어머니 장례를 치르자마자 도우미 앞세워 곧장 고인의 유품을 들어내는 걸 보고 충격받은 바 있다.

삼우제도 지나기 전 서둘러 고인이 남긴 옷가지며 사진 등을 쓰레기로 처리하는 걸 보고 씁쓸했던 기억.

남은 이들 부담 주지 않게 미리 자신이 알아서 생의 흔적들 하나씩 지워가는 일, 가벼이 비워내는 일을 미리 해두는 게 옳다.

그렇게 서서히 주변 정리를 해두는 건, 떠난 뒤 남겨질 이들에 대한 마지막 배려가 아닐까도 싶다.

쌓아둔 재산은 물론 귀금속이나 가재도구 등, 심신 온전할 때 그날을 대비해 신변 깔끔하고 담박하게 정리해 두는 것은 필수겠다.


애집부터 떨궈내는 게 첫째이고 버릴 수 있는 용기를 내는 게 그다음으로 필요하다.

무슨 기념일이거나 여행을 가면 부지런히 사진을 찍지만 자신의 사진 또한 언젠가는 쓰레기에 불과할 뿐이다.

세상에서 그 누구도 내 사진을 나 자신처럼 살갑게 보아주거나 즐겨줄 리 없는 그야말로 성가신 군더더기.

직접 촬영해 둔 사진이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찍힌 사진의 주인공일지라도 그 사진은 오로지 자신에게나 소중한 거다.

널리 귀감이 되는 인생을 살아 길이길이 후세에 남길 역사적 사료 가치가 충분하다면 또 모르지만.

따라서 삶 후반부에 들어서며 나이 들수록, 마무리를 위해 모든 생활의 부피와 무게를 줄여 나가는 게 현명한 처사 아닐지.

타오름달 팔월은 들가을달이라고도 한다.

들어오는 가을에게 바통을 넘기고 불타던 팔월이 훌훌 떠나가는 끝날이다.

어떤 별리 건 별리는 짧을수록, 산뜻할수록 멋질뿐더러 아름다운 여향으로 길게 남는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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