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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령하며 돈 버는 남자

by 무량화

이민사 100년을 쓰는 동안 주변인으로 살아야 했던 교민 1세들과 달리 주류사회로 착착 진입하며 주목받고 있는 교민 2세들. 언젠가는 백악관의 주인 되어 세상의 중심에 우뚝 설 날도 있겠지만 지금도 각계 요직에 포진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한국인들이 다수다. 재계와 정계는 물론 나사 엔지니어에 소설가 시인 대학교수 학장 과학자 기타 등등.. 그중 의사 변호사가 숫자로는 아마 가장 많이 종사하는 직종이 아닐지?



대부분이 부모의 열성 어린 교육열에 힘입어 공부로 승부를 본 케이스들이다. 그들 거의가 이름 있는 소위 명문을 나온 수재들로 각각의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 외 부동산업계에 투신하거나 사업가로 탄탄대로를 달리는 이들도 적잖다. LA엔 유명 의류업자며 골프장 소유주로, 호텔 경영인으로 눈부신 활동을 펼치는 이도 있으며 뉴욕 맨해튼의 상징건물을 매입하기에 이를 정도의 재력가도 있다. 개중에는 대학교육을 받고도 부모의 업을 물려받아 안주하는 케이스도 없잖으나 두뇌 우수한 한국인은 거의 공부로 성공을 거두는데 여기에 한국인의 저력인 은근과 끈기가 합세하면 어느 방면에서든 성공 못할 이유가 없을 성싶다.



크리스토퍼 씨의 큰아들 스테파노는 태권도 사범이다. 그가 운영하는 태권도장엔 매시간별로 하얀 도복을 입은 관원들이 북적거린다. 정연하게 줄지어 서서 이얍! 힘차게 기합을 넣으며 사범을 따라 절도 있게 연습에 매진하고 있는 관원들. 일찍이 독일에 광부로 나갔다가 거기서 용접기술을 배우게 되어 귀국 대신 과감히 미국행을 택했던 강단진 경상도 사나이인 아버지 지도로 어릴 적부터 태권도와 친하게 지냈다. 아버지 크리스토퍼 씨는 칠순이 한참 지났어도 사철 바다낚시를 즐기며 여전 짱짱하니 꼿꼿하다.



타국살이 하면 할수록 누구나 다 애국자가 된다고 했다. 아버지의 나라사랑법은 태권도 사랑으로 이어졌다. 그 정신이 절로 스며든 그 아들은 유소년 시절부터 꾸준하게 태권도를 익혔고 대학에서는 생활체육을 전공했다. 아버지가 일군 가업은 동생이 맡기로 하고 한눈팔지 않고 그는 줄곧 태권도 한 길만 파고들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좋아서 하다 보니 즐겨 몰입하게 되었고 그래서 지금은 성공적인 도장 운영자가 된 스테파노. 그의 태권도장이 모리스 타운 중심부에 떠억 자리잡은지도 꽤 한참 됐다. 모리스 타운은 남부 뉴저지의 부촌으로 알려진 지역이다. 백인 밀집 지역이기에 도장의 주 고객층은 백인 청장년들이다. 한인 어린이들도 있는데 그네들에겐 자연 정체성 찾기 및 심신수련과 예절교육 현장이 되어 주는 도장이다.



바쁜 와중에도 날마다 빠짐없이 이웃에 따로 사는 부모님을 찾아뵈며 챙기고 섬기는 스테파노. 효심 극진한 아들로 동방예의지국의 후손답게 스스로 모범을 보이는 관장이다. 한국의 국가 브랜드 가치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드시 거명되는 태권도다. 박인비가 트로피를 높이 치켜들며 올해 연달아 국위선양을 하였듯 그간 박세리 등이 골프계를 평정하며 스포츠 한국의 이미지를 드높여주었다. 박지성 류현진 선수가 세계를 주름잡으며 연신 쾌거를 전하고 피겨의 여왕 김연아 역시 국제무대를 제패하는 낭보를 띄우기도 했다. 스포츠 외에도 영화 미술 음악 등 문화예술 방면에서 역시 괄목할만한 실력을 보여, 작지만 놀라운 나라로서의 위상이 두드러지게 부각된 대한민국이다.



50년대의 피폐를 딛고 '하면 된다'는 의지 하나로 일궈낸 대단한 개가다. 그 조그만 땅덩이에서 실로 놀랍지 않은가 말이다. 미국에서 작은 주에 속하는 뉴저지 주만 해도 한국의 두 배는 된다. 더구나 동란으로 전국토가 불타 황폐화된, 완전 제로 지점에서 오늘의 번영을 이룬 나라다. 외국 원조에 기대 살던 나라가 반세기 만에 놀랍게 성장해 지금은 도움을 주는 나라로 변신했다. 그럼에도 여러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가 끊기지 않는 데다 양심과 정의가 실종 돼버린 사회이기도 하나 어느 시대 없이 항용 문제는 있어왔다. 남북분단의 현실에다 이념과 지역갈등으로 파열음을 거듭 내기도 하는 한국의 정치 수준이 국가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는 현실. 반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며 현대 삼성 엘지 등의 상품명은 세계를 석권하고 있다.



유형적 브랜드 가치 외에 외국인들에게 각인된 한국적 이미지는 근면 성실함과 높은 교육열 그리고 뿌리 깊은 경로효친 사상, 동방의 예의 바른 나라이다. 한국 사회 정서도 과거와 달리 많이 변질되었다지만 아무리 시대가 급박하게 변해가도 바탕인 기본은 퇴색되지 않았다고 낙관적으로 전망하련다. 모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크리스토퍼 씨 왈, 고래의 미풍양속은 사라지고 세상인심이 아주 고약해졌더라며 고개를 내둘렀다. 하긴 70년대 초에 이민 온 그는 70년대 사고방식 그대로 고착된 채 살아간다. 미국 땅이지만 아직도 안동식 예법 따라 제사 모시는 아버지. 역시 가정에서 보고 자란 대로다. 태권도를 통해 무형의 브랜드이기도 한 예절이라는 가치를 미국 안에 심어주고 있는 관장. 그는 또한 도장 운영자로서 만일의 경우 안전사고에 대비, 기 수련을 비롯 응급처치를 위한 뜸과 침술을 체계적으로 공부해 관원들은 물론 인근 주민들도 필요시 도움을 주기도 한다.



과묵하니 말수가 적은 스테파노는 오늘도 태극기 앞에서 절도 있게 인사를 바치는 것으로 시작하여 하나 두울~낯익은 한국말까지 외치게 하는 자랑스러운 관장님이다. 사실 미국에서 마이너리티로 살아가면서 백인들을 호령하다시피 하며 거기다 기합까지 주며 돈 버는 사람이 어디 그리 흔할까? 태권도에 매료된 백인층이 두터워 이제는 종주국인 우리를 제치고 어느 백인 삼부자가 올림픽에서도 태권도의 제왕 자리를 넘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긴 하다. 그럼에도 오늘 역시 태극기가 성조기와 나란히 걸린(그것도 태극기가 오른쪽에 떠억!) 그의 도장에서 힘찬 기합소리는 모리스 타운을 쩌렁쩌렁 울리겠지.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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