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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선충을 아시는지?

by 무량화

오래전 여름, 캘리포니아의 빅베어 레익으로 향하던 도중이었다.

지그재그로 틀어 오르는 굽이진 길이 한참토록 이어져 손에 땀이 찰 지경이었다.

구절양장 같은 길을 오르는 동안, 차 손잡이를 꽉 부여잡았던 기억.

모롱이 돌고 돌아 산속으로 빨려 들어갈수록 아찔하게 고도 높아지며 소나무 숲 울창해졌다.

그때 눈 아래 자욱이 펼쳐진 푸른 숲에 번진 이상스러운 현상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화마가 지나간 자리는 분명 아닌데 군데군데 벌겋고 허옇게 변한 숲.

마치, 육이오 즈음 흔했던 머스마들 머리통에 생긴 기계충 자국 같았다.

다만 흉터 자욱이 색깔 눗누렇다 못해 붉은빛을 띤 게 다를 뿐 보기 흉한 걸로 치자면 엇비슷했다.

뉴저지도 소나무 숲이 많은데 용케 재선충이 안 번졌나 보네. 여긴 재선충 때문에 국립공원마다 난리야... 딸내미가 말했다.

그렇게 처음 들어본 재선충(材線蟲)이란 단어.

후에 알고 보니 한국도 전국적으로 확산세, 소나무 숲을 망가뜨리는 치명적 해충으로 지목돼 있었다.

옐로 스톤 여행시 관광 가이드로부터 들은 얘기다.


아무튼 그는 재선충 박멸시키는 길을 발견할 경우 노벨상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단언까지 했다.


​미국국립공원에서도 군데군데 재선충 피해가 목격되는 바, 허우대 멀쩡한 나무들이 허옇게 말라죽어가는 양태를 접하면 지나가는 여행객 입장이라도 무척 안타까웠다.


온갖 첨단 과학기술이 빛을 발하는 나라에서조차 사소한 나무벌레 하나 어쩌지 못하고 전전긍긍.


아직까지도 획기적인 방제대책이나 사전 예방 방법이 없는 재선충병.


이 병의 확산 방지를 위해 방제약은 물론 재선충 천적 연구 등 각국 생물학자들이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인다고.

그러나 나무 내부 조직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재선충 박멸하기가 쉽지 않아 오죽하면 노벨상 소리가 다 나왔을까.




재선충에 대한 최초 보고는 190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였는데 1934년 미국에서도 발견됐으며 이후 1988년 우리나라를 포함, 전 세계 어디나 소나무가 있는 곳마다 피해 사례가 보고됐다.

일단 재선충은 감염 여부를 밝히는 초기 진단부터가 어렵다고 한다.

감염된 지 몇 개월 지난 뒤에 잎이 처지거나 갈변현상 같은 징후가 나타나야 비로소 재선충 감염목으로 판정돼 특수 관리를 받게 된다.

나무줄기며 가지 심지어 뿌리로까지 조직 깊숙이 침투해 양분을 빨아먹고 수액의 이동통로를 막아 소나무를 말려 죽이는 재선충.

극성스럽게 세를 불린 재선충은 나무의 수분 이동 길을 꽉 막아버린다고 한다.


사람도 혈관이 막히면 변을 당하듯 기어코 소나무를 죽게 만든다고.


걸렸다 하면 나무는 100% 죽는다고 봐야 한다니 치명적이다.


소나무 재선충은 이름대로 1mm 내외의 가늘고 긴 실 모양의 벌레, 선충(線蟲)이다.


악성 암세포 자라듯 재선충도 빠르게 증식하는데 5일 만에 다 자라 3주가 되면 20만 마리로 늘어난다니 가히 기하급수적 증식이다.


매개충이 새순을 갉아먹을 때 나무에 난 상처 부위를 통해 들어와 대개의 기생충이 그렇듯 매개체의 몸 안에서 살다가 나무가 죽으면 다른 나무로 옮아간다.


매개충은 솔수염하늘소 또는 북방수염하늘소라는 곤충으로 이를 박멸시키고자 산림청에서는 헬기 동원해 항공방제도 실시한다.


숲 아래쪽에서는 나무주사를 통해 이 벌레 유충을 제거하는 작업도 병행된다.


일명 소나무 에이즈라는 재선충에 걸리면 몸체가 마르며 잎이 타들어가

불그레 변했다가 누렇게 말라 버린다.


그로 인해 소나무 잣나무 가문비나무 등 청청하던 침엽수가 속절없이 고사목이 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남산 위에 저 소나무~애국가에도 나오듯 금수강산 상징의 하나로 사시사철 푸르러야 할 소나무다.

헌데 제주도에서부터 한려수도 각 섬이며 부산 금정산을 비롯 백두대간을 따라 민통선 턱밑까지 확산세를 보이고 있다는 재선충.

일반 소나무는 물론이고 적송 해송 금강송이며 잣나무 가문비나무까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백 여종의 침엽수 모두 재선충은 비껴가지 않는다.


숲을 고사시키는 주범으로 소나무 에이즈라 불리는 재선충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기는 한국도 마찬가지.


재선충에 걸린 소나무는 회생 방법이 달리 없으므로 일단 벌목해서 한 무더기씩 모아놓고 방재약을 살포해 몇 달에 걸친 훈증과정 후 소각처리한다는데.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솔숲에서 직접 재선충 피해목을 목격하거나 나아가 안타까운 피해 실태를 피부로 느꼈으리라.

누렇게 말라가는 병든 솔잎과 벌레 먹은 자국 선명한 소나무 둥치는 보기만 해도 음험하다.

그 뿐아니라 산기슭 여기저기 꽁꽁 싸매둔 시퍼런 비닐 무더기도 어렵잖게 접했을 터이다.

산행인들도 유념했다가 혹시 재선충이 의심되는 나무를 발견하면 산림청에 신고, 우리의 숲을 지켜야하리라.

죽어가는 솔숲을 보호하기 위해 소나무재선충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나무를 발견 즉시 해당 시 군에 신고하면 포상금까지 지급한다고.

여러모로 얼마나 상황이 심각하면 정부 부처에서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특별법'까지 발효하였겠는가.

감염목으로 판정돼 벌채된 소나무는 반드시 훈증 절차를 거쳐 파쇄, 소각 처리하게 돼있다.

재선충병 감염 소나무를 모아 약제 살포 후 훈증시킨 뒤 6개월이 경과하지 않은 걸 훼손하거나 이동시키는 행위는 법으로 금지된다고.

특히 재선충병 훈증 처리목, 즉 감염된 고사목으로 베어낸 뒤 훈증처리 중인 나무를 이동시켜 땔감용으로 가져다가 쓰면 처벌을 받는다.

벌채된 소나무를 땔감으로 쓰려고 집에 쌓아두면 재선충병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의 서식처를 제공해 재선충 감염을 확산시키기 때문이다.

엊그제 금정산 자락에서도 재선충 피해 사례를 다수 목도했다.

불과 두서너 시간 걷는 동안, 산지 곳곳에서 붉게 칠해진 페인트 표식 만나면 우듬지를 올려다봤는데 하나같이 누렇게 잎이 변한 나무였다.

육안으로 금세 식별 될 정도로 마치 활엽수 단풍 들듯 병색 짙어진 소나무는 이미 재선충에 사로잡힌 몸, 곧이어 전기톱에 댕강 잘려나갈 터이다.

베어서 토막 낸 굵은 소나무 몸통 또한 수차 접하면서 짠하고도 아까운 마음 금할 길 없었다.

속절없이 생명의 끈을 놓쳐버리고 만 그들이 산, 수십 년에서 백여 년 세월의 무게가 허망하기만 했다.

산을 찾으면 우리는 푸른 숲에서 피톤치드를 마시며 산림욕을 하므로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상쾌한 기분으로 전환이 된다.

산길 걸으며 사유하는 동안 혼탁해진 심신을 정화시킬 수 있으며 세상사에 지친 우리는 자연이 주는 무언의 위로를 통해 치유받기도 한다.

눈을 감고 잠시 상상해 보라, 혹여 산마다 소나무가 없는 민둥산이 된다면?

바위산도 아닌 육산이 만일 솔숲이 전해주는 시혜를 베풀지 못한다면 그래도 우리는 산을 찾을 맘이 생길까.

푸른 나무가 없는 산, 숲 그늘이 없는 데다 새소리 들리지 않는 황량한 산이 늘어난다면 아마도 별로 산에 가고 싶지 않을듯하다.

그리된다면 우리 심신은 더욱 피폐해져 심성의 사막화는 한층 가중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재선충 피해를 입은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사이트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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