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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령총 왕자님

by 무량화

지난주 아들에게서 카톡 연락이 왔었다. 아마존에 안마의자를 주문했는데 집주소를 재차 확인한다며 문자를 보내온 것. 마음은 고맙지만 나이 들어갈수록 살림 정리해야 할 판에 자꾸 늘이는 거도 그렇고, 무엇보다 전혀 쓸데없는 거니 취소시키란 내용을 곧장 띄웠다. 나이 든 어른들의 필수품이라며 다시 문자가 왔다. 나는 안마의자와 벗할 노인네는커녕 한창 학구열에 불타는 청춘이라고 찍어 보냈다.




그래도 고집을 부렸다. 결국은 통화로 이어졌다. 일주일에 닷새 학교 오가며 규칙적인 걷기 운동을 하니 컨디션 만점의 건강체인 데다, 비스듬히 퍼져서 안마받는 느긋한 성격이더냐고 했다. 그제사 알았고요 다른 거나 보낼게요, 한다. 나는 결코 상노인네가 아니니라, 로 삼빡하게 매듭지었지만 물론 후렴이 따랐다. 안마의자 대신 훗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 갈 때 쓸 노자돈으로 적립시켜 두라고 말이다. 하핫~

그 다른 거로, 실물과 똑같이 만든 모형 토기인 기마인물도상(騎馬人物陶像)을 손자 편으로 비행기에 태워 보냈다. 포장도 완벽했지만 워낙 조심스럽게 고이 모시고 온 덕에, 쪽이 떨어지기 쉬운 토기건만 아무런 손상이 없었다. 한때 신라 와당에 심취하기도 한 내 취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들이다. 해서 동남아 여행을 다녀오면 옥 전각도장이나 목각품을 잊지 않고 사 왔다.



고리타분한 골동취미에 빠져 향토문화 모임이니 민속학회, 박물관회에 속해있던 부산시대 당시. 마침 우리 집 뒷산이 盃山城地로 금관가야 내 거칠산국의 근거지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산에 오르면 심심찮게 가야시대 빗살무늬 토기 쪽이 발길에 차이는 곳이었다. 그 영향으로 인해서인지 딸은 한국에서 고고학과를 나왔다. 딸내미 말마따나 엄마 따라다닌 곳이 늘 박물관이었으니 아는 길이라곤 그 계통뿐, 대학원에서 유물보존처리 공부를 하겠다고 미국에 왔다가 도중에 진로를 바꿨지만.

극립박물관에 소장된 국보 91호인 신라시대 기마인물상은 높이 23.4cm에 너비 26.8 cm의 자그마한 토기다. 출토 토기의 백미로 일컫어지며 1924년 경주 금령총에서 신라 금관과 함께 수습되었다, 금령총 중심부에서 금관에 이어 출토된 토기 한쌍. 무덤 주인이 저승 가는 길 외롭지 말라고 묻어두었던 껴묻거리의 하나로 말 탄 주인장 토우를 실물대 크기로 재현시킨 문화상품이다. 다른 하나의 토기는 웃통을 벗은 시종으로 악령을 쫒는 역할을 하는 방울을 흔들며 등에는 전대를 멘 형상인데 주인보다 크기가 약간 작다고. 둘 다 조랑말에 올라앉아있는 모습,




말 장식이 화려한 주인장은 고깔에 장식 두툼한 삼각모(三角帽)를 쓰고 다리 전체에 갑옷이 묵직하게 늘어뜨려졌다. 말 등에는 아래로 구멍이 뚫린 구리솥 모양의 둥근 그릇에 물 넣는 구멍이 나있고, 앞가슴 쪽으로 물을 따르는 긴 부리(주구, 注口)가 달려있다. 비어있는 말의 뱃속을 통해 물을 따를 수 있는 주전자의 기능을 갖추고 있는데 아마도 주술적 의미로 향기로운 술을 채워 넣었을 것 같다. 그러나 새로운 학설로는 금령총 어둠을 밝히는 등잔을 껴묻었다는 주장이 아주 그럴싸하다.

두드리면 맑은 쇳소리가 나는 이 정교한 토기는 신라인의 영혼관과 당시의 복식, 장신구, 무기, 馬具의 쓰임새 등 연구에 큰 도움을 주는 귀한 자료로 평가된다. 기실 금령총의 주인공은 금관과 장식대도로 명명된 허리띠의 크기가 모두 작은 것으로 미루어 어린 나이에 죽은 신라 왕자로 추정되고 있다.



어느 신라왕인가가 자신의 아들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비탄에 젖어 당대 최고의 장인에게 명해 왕자와 수행할 시종상을 만들어 부장품으로 딸려보내며 슬픔을 달랜 것으로 보인다. 토기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면 신라 고분에서 출토되는 여늬 토우처럼 두리뭉수리가 아니라 인물 표현이 세밀하기도 하거니와 귀티가 풍긴다. 굵은 눈썹에 오똑한 코 단정한 눈매가 그리 생각해서인지 예사롭지 않은 신분을 나타내는 듯하다고 요셉에게까지 자랑질. ㅎ




요셉은, 왕자건 거지건 꿈자리 시끄럽구러... 하면서 전부터 골동취미를 못마땅히 여겨왔던 대로 틱틱거린다. 게다가 부장품이라는 게 영 거시기히렷다. 하긴 그간 탁본이며 와당 쪽들을 심지어 창고에다 처박아버리는 등 타박도 자심했다. 심한 경우 쓰레기통에서 건져온 적도 있다. 취향이 달라도 너무 다른 세계 속에서 그렇게 아웅다웅 반세기 가까이 살았으니 장하고도 징허다. 맘에 드는 선물 받고 기뻤다는 얘기가 엉뚱하게 샛길로 빗나가버렸으니 이쯤에서 마무리 총총.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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