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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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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화
Sep 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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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기의 일요일 풍경부터 그랬다.
그는 낚시를 하기 위해 배를 타고 바다로 간다. 나는 산행에 나선다.
산과 바다로 뚜렷이 이분화가 되는 것이다.
땀 흘리면서 산길 걷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는 조황이 좋은 날은 연신 싱글벙글이다.
바다 자체를 싫어할 리야 없지만 나는 배를 타면 멀미가 심하고 생선 비린내라면 질색이다.
그러니 자연 따로따로 논다.
희한하게도 그와 나는 무엇하나 일치점이 없다.
그는 갈데없는 영남사람이라 봉건적이고 쇠고집이나 화통한 면도 있는 천상 경상도 기질의 표본이다.
다혈질에 앞 뒤 가리지 않는 급한 성격은 불 칼이 따로 없다. 그러나 뒷심은 약하다.
반면 나는 충청인답게 우유부단 내지는 뜨뜻미지근하고 한번 틀어지면 풀기 어려운 편이다.
몽니 궂다거나 쉽게 화를 내지는 않지만 심히 기분 상했다 하면 꽁한 마음이 아주 오래간다.
술술 털 줄 모르는 이런 성미는 오히려 더 다루기 까다로울 수도 있겠다.
우린 외형부터가 정반대다. 영양이 좋아 보이는 너부죽한 그에 반해 비리비리 깡마른 나.
오래 살다 보면 부부끼리는 닮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오십 년 너머를 부부라는 인연으로 산 우리는 여전히 남과 북이자 청과 홍이다.
천지차이라는 말대로 하늘과 땅이요, 불과 물처럼 극과 극으로 뚜렷하게 나뉘는 우리.
각기 개성 확실하고 주의주장 분명한 데다 점점 고래심줄 되어가는 고집에다 동갑내기 기싸움도 수그러들지 않는다면?
어언 이 나이쯤에 이르니, 보기 좋은 조화관계를 유지하는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끝까지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평화로이 사는 일이 더 중요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 다른 객체가 하나 되어 살다 보면 티격태격 아웅다웅, 부딪히며 모서리 깎이고 아린 세월마저 곰삭혀지는 길고 긴 여정.
백세시대의 해로는, 한평생을 함께 하면서 쇠하고 삭아가는 부부만이 아니라도 적당한 거리에서 부부의 연 놓치지 않고 지켜가는 것만으로도 장하다 않을지.
회혼식도 흔해빠진 요즘, 육칠십 년이란 시간은 증손자까지 볼 기나긴 세월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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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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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 지나니 만사 여유작작, 편안해서 좋다. 걷고 또 걸어다니며 바람 스치고 풀꽃 만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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