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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노마 미션 -달의 계곡-

캘리포니아 미션

by 무량화

미션 샌 프란시스코 솔라노(Mission San Francisco Solano)는 짧게 소노마 미션으로 불린다.


17세기 페루인들에게 전교를 한 솔라노 사제 이름을 붙인 미션이다.


와인 산지인 나파밸리 이웃으로 역시 온 마을이 와이너리 일색인데 여기 포도나무를 처음 심은 이는 프란치스칸들이었다


스페인 점령기를 갓 벗어나서 멕시코 시대에 추진된 유일한 미션으로, 이후 소노마 미션은 역사의 질곡을 호되게 겪는다.


원래 달의 계곡이었다는 소노마, 상가는 번화했으나 옛 자취 더듬자니 그 이름대로 애연(哀然)한 이미지만 남겨진 곳.


해는 양이고 달은 음으로 본다. 달은 은유적으로 내밀스럽고도 차가운 여인이자 생멸이 거듭되는 변화의 상징이다.


잠시 보름달의 영화를 누리나 초승달에서 그믐달까지의 주기를 오가는 동안, 달은 찼다가 이지러지며 쉼 없이 변모한다.


그 무엇도 시간적 공간적으로 영원한 것은 없음이니 생성이멸이요 영고성쇠라, 결국 제행무상이로다.


본래는 원주민의 터였으나 멕시코 땅이 됐다가 스페인 치하를 거쳐 다시 멕시코로, 그리고 한때 캘리포니아 공화국이 섰던 땅.


이처럼 미국 영토로 자리잡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을 훑어보니 그 땅을 스쳐간 모든 역사가 한낱 백일몽 같다.


무심하고 무상한 세월 한참 흐른 1932년에 미션 샌프란시스코 솔라노는 캘리포니아 역사 랜드마크 3호로 지정되었다.


나지막한 지붕의 나무 십자가가 맨 먼저 눈에 든다.


여타 미션과 다른 단순한 건축양식으로 종각은 없고 대신 커다란 종이 미션 앞 지지목에 튼실하게 매달려 있다.


1829년 멕시코에서 주조된 종으로, 스페인이 철수하며 금형틀을 남겨두고 떠나 그 틀에 부어 만든 종이라 한다.


회랑에 올라서서 천장을 바라보자 그 또한 색다르다.


지붕 천장을 가지런히 덮은 갈대는 가죽끈으로 엮었고 흙을 덧바르지 않은 채다.


시골집처럼 퍽 수수하다.




박물관 입구 쪽에는 원주민의 생활상 그림이 붙어 있다.


별다른 유물이 남겨져 있지 않은 단출하다 못해 썰렁한 전시실이다.


농산물의 양을 측정하는 도구인 나무로 짜 맞춘 되/말(Fanega)이 청동 기명과 한자리에 앉아있다,


대장간에서 쓰이는 쇠모루와 연장 몇 점 등 생활 공구가 전부로, 전시품이 너무 빈약해 초라할 정도다.


묵직한 모루 전면에는 라틴어로 -유일- 신- 영광- 1766년이라 양각되어 있다.


제작 연대로 미루어 아마도 다른 미션에서 흘러들어왔지 싶다.


박물관에 제구나 그 흔한 악보 책 하나 없는 것은, 스페인 시대가 아닌 멕시코 시대인 가장 후대에 만들어져서이리라.


오직 미션의 흔적이라곤 낡고 녹슨 종뿐이다.


밖에는 목자들이 짚고 다니는 지팡이 모형의 종이 네거리에 신호등처럼 서있다.



현재 사용하는 듯한 채플은 작고 길쭉했으며 멕시코 풍이 물씬 스며났다.


의자 없이 벽돌만 고르게 깔려있는 맨바닥이다.


금빛 장엄하기보다 울긋불긋 색채 화려한 제대 제단이 이질감을 불러일으켰다.


정성스럽게 장식된 성수대, 채플 좌우 벽에 걸린 십자가의 길 14처 그림은 사실적으로 그려진 유화였다.


후원으로 나왔다.


별로 꾸미지 않은 간결한 정원 뒤편으로 작업장이 곧장 연결된 덤덤한 직사각형 구조다.


중앙에 자리 잡은 분수대는 미션 폐쇄 후 건축재로 마구 헐려나간 듯 아래 테두리만 남았다.


벽돌뿐 아니라 쓸만한 자재는 주인 잃은 그때 거의가 사라져 버렸다.


이끼 낀 낙숫돌과 기왓장은 퇴락한 산사를 연상케 한다.


담벼락에 바짝 붙어 선 옆집 감나무에 홍시가 다닥다닥하다.


그 정경만으로는 한국이 떠오르겠으나 바로 옆엔 우람한 나목을 둘러싸고 한 무더기 선인장 무성하다.


멕시코인들의 식재료이기도 하며 울타리 역할을 하는 선인장이다.


저만치 화덕이 하나 덩그러니 앉아있다.


역시 갈데없는 멕시코 풍물이다.



1819년 몬트레이에 도착한 프란치스코회 신부 Fr. Altimira.


그는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이태 뒤인 1823년 21번째 미션이자 캘리포니아 마지막 미션의 기초를 놓는다.


평화로운 전원에 봉긋 솟은 완만한 녹빛 능선이 아름다운 이곳을 원주민들은 '달의 계곡'이라고 불렀다.


이듬해 공사 중에 인근 로스 요새에 주둔해 있던 러시아 병사들이 종과 기타 물품을 기증해 형편이 좀 폈다.


1825년 성찬용 포도주를 만들 포도나무를 심는데, 이는 훗날 와이너리로 이름난 소노마 밸리 명성의 기원이 되었다.


처음엔 조촐한 흙집에 나무 울타리를 두르고 알티미라 신부는 원주민들을 모아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포교를 시작했다.


당시 원주민 부족들은 Miwok, Wintun, Wappo 등이었다.


산야를 뛰어다니며 자연 속에 살던 자유로운 영혼들을 다루는 방법이 그는 꽤 거칠었던 모양이다.


가뜩이나 혈기 넘치는 스페인 잔여군인들과 합세, 원주민들에게 채찍을 가하고 투옥을 시키는 등 과감한 규율을 적용시키자


반란이 일어났고 결국 그는 중도에 모국인 스페인으로 되돌아갔다.


1826년 방화로 불탄 것을 그나마 재건축한 것은 알티미라 신부의 뒤를 이은 Fr. Fortuni.


몇 년 후 미션 규모는 방 27칸, 작업실과 제분소, 너른 밭과 과수원, 의무실과 감옥, 말 9백 마리 염소 6천 마리를 소유하게 됐다.


그러나 멕시코 정부의 명령에 따른 알타 캘리포니아 미션 세속화 작업으로 1834년 미션은 폐쇄되었으니, 우여곡절의 건립 이후 11년 만이다.


아무리 종교시설일지라도 스페인 식민 잔재를 멕시코는 묵과할 수 없었나 보다.


실제로 미션은 선교원이라는 본연의 취지가 무색하게 식민 활동의 전진기지 역할을 한 정황도 적지 않게 드러났다.


겨우 11년 지나 문 닫은 미션, 역사의 격변기에는 3일 천하도 있고 캘리포니아 공화국처럼 고작 29일짜리 단명국가도 생긴다.




자주 언급되는 알타 캘리포니아가 무엇을 뜻하는 단어인지 제대로 알고 넘어가야 했다. (나만 궁금?)


돌로레스 이달고 신부의 주도하에 봉기한 혁명군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으며 당시 멕시코 영토는 무척 광대했다.


그즈음 멕시코 땅이었던 알타 캘리포니아는 지금의 캘리포니아주, 뉴멕시코주, 유타주, 네바다주와 콜로라도주 일부를 포함하는 방대한 땅으로 이를 알타칼리포르니아 주라고 칭했다.


미국은 텍사스주처럼 이 땅 역시도 돈으로 사겠다고 제의를 했으나 텍사스주를 빼앗긴 멕시코는 탐탁잖게 대응했다.


하지만 스페인과의 독립전쟁으로 지친 데다 내정불안에 처한 멕시코는 국토를 관리할 힘이 딸려 각 지역 민병대에 의지했었다.


알타 캘리포니아에 자리 잡은 미국인 불법 이민자들이 반란군이 되어도 변변한 군대 조직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다운 전쟁도 하지 못했지만, 작은 문제를 빌미로 미정부가 분쟁에 개입하며 미국과 멕시코 간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무기력한 멕시코 정부군은 수도를 빼앗기고 1948년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으로 전쟁은 끝나게 되지만.


그러나, 전쟁의 손해배상과 멕시코가 진 빚을 탕감해 주는 조건으로 2천만 달러의 헐값에 알타 캘리포니아를 양도받는다.


당한 측은 이를 갈며 날강도라 하겠지만 강자와 약자 사이에 적용되는 힘의 법칙은 이리 냉혹하다.



그 와중인 1846년 6월 14일, 멕시코의 지배에 반기를 든 앵글로 색슨계 미 이주민들이 멕시코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캘리포니아 공화국을 세웠다.


이를 기념하는 조각상이 시청사 뒤편에서 깃발을 휘날리며 서있다.


당시 러시아의 남진을 감시하는 수비대 사령관이었던 스페인 출신의 Mariano Vallejo는 별다른 저항 없이 반란군에 투항했다.


캘리포니아 공화국의 수도는 샌 프란시스코 솔라노 미션이 위치한 소노마.


같은 해 7월 9일 미 정부군이 소노마를 점령하자 그들은 알타 캘리포니아 지역의 미 합병을 지지하며 공화국은 자진 해산했다.


현 캘리포니아 주 깃발의 모태가 된 것이 바로 캘리포니아 공화국 당시 사용하던 곰 깃발(Bear Flag)이다.

소노마 역사유적지인 미션 우측의 소노마 병영에 가면 녹슨 대포가 입구에서 맞아준다.


맞은편엔 양켠으로 나무 침대가 죽 놓인 병사들의 숙소가 재현되어 있으며 전투 용품도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에서 눈여겨볼 것은 뭐니뭐니해도 빛바랜 Bear Flag.


원래 1846년에 만들어진 깃발은 워싱턴 D.C 해군 기록보관소에 보존되어 있었으나, 1855년 캘리포니아 의회 대표단의 요청에 따라 반환돼 샌프란시스코 본부에 상설 전시했었다.


그러나 1906년 대지진의 화재로 원본은 소실되었으며 복사본을 만들어 둔 것이 지금에 전해진다.


예전 캘리 공화국의 향수 혹은 영향 탓인지 작년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미국으로부터 캘리포니아 독립을 주장하는 '컬렉 시트'라는 말이 캘리포니아 주민들 사이에서 회자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멕시코 땅 알타칼리포르니아 주는 미국 땅이 된 후 분할되어 캘리포니아는 1850년 미국의 31번째 주가 된다.


알타 캘리포니아가 미국에 편입된 후 1868년 링컨 대통령에 의해 모든 미션은 다시금 가톨릭 교구에 반환되었다.


세속화된 동안 미션은 세월의 부침에 따라 온갖 오욕을 겪는다.


창고에서부터 숙박업소로 쓰이거나 선술집이 되기도 하였으며 건축자재로 마구 뜯겨나가기도 했다.


현재의 미션이 옛 모습 가까이로 복원되기까지에는 많은 시간과 공력이 바쳐졌다.




미션을 나와 병영에 들렀다가 산책하듯 걸어서 찾아간 곳은 바예호 사령관의 집.


1846년 당시 근 20만 에이커에 달하는 사유지에 지은 유럽풍의 장원같이 꾸민 대저택이다.


전망은 드넓은 푸른 초장, 뒤편은 자연을 이용해 층계식으로 가꾼 후원에 기기묘묘한 정원수들이 장관이다.


샌프란시스코를 총괄하는 장군직을 수행하기도 했지만, 한 국가의 대 격동기에는 혼란의 와중에 눈먼 땅과 돈이 굴러다닌다.


더구나 그는 미션 폐쇄를 주관하며 일가붙이에게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미션을 넘기기도 했다.


분수가 있는 초입의 안내센터 전시실에는 군 장비가 주종을 이뤘다.


대충 패스하고 내부가 공개된 저택으로 들어갔다.


역시 팔색조처럼 처신하며 격변하는 세태에 잽싸게 편승, 한 시대를 쥐락펴락한 장군의 집다웠다.


그 시대 누릴 수 있는 호사란 호사는 다 부린 듯, 붉은 양탄자 섬세하고 샹들리에 화려하다.


패밀리룸에는 하프까지, 고품격 악기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식당에 차려진 은제 식기와 리넨 냅킨 품격으론 중세 기사 작위를 받은 가문 못잖았다.


편견일까, 그가 평생 누린 부요함이 하늘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 자식들 앞에 과연 떳떳했을지 고개 갸웃해졌다.

눈부신 샛노랑으로 농익은 은행잎 휘날리는 시청사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 역사의 거리.


달의 계곡이라 이르던 그 옛날 원주민들 발자취 사라진 대지에는 미션을 일구던 선교사들의 순정한 열정 역시도 사라졌다.


대신 소노마에는 상가마다 와인향만이 넘쳐났다.


실비 내리는 정오 무렵, 추연해진 심사로 달의 계곡과 작별을 고했다.


길가엔 녹슨 철망을 펴둔 것처럼 적갈색으로 보이는 잎진 포도원 따라 때아닌 봄꽃이 만발해 겨울 나그네를 배웅해 줬다.


길 없는 길을 개척해 나가면서 다시 돌아갈 길 영영 놓치지 않도록 발걸음마다 뿌려두었던 겨자씨.


그 옛적 선교사들의 발자국 따라 지금도 길가에 그들이 뿌린 유채꽃 초겨울임에도 노오라니 피어있었다.


하얗게 사위어간 과거의 흔적을 가까스로 부여잡고 있는 자잔한 꽃들이 그 기억 잊어버리지 않고서. 길가에 무심히.....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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