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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도가네 따로 없네

by 무량화

여태껏 자갈치시장만 알았지 근처에 대규모 꼼장어 골목이 있다는 건 첨 알았다.

이름도 달리 붙어있는데 충무동 해안시장 또는 충무동 곰장어 거리다.

약속된 시간에 맞춰 지하철 1호선 자갈치시장 4번 출구로 나왔다.

우측으로 돌아가자 바로 코앞이 북적거리는 시장골목이었다.

충무동 해안 시장, 미로처럼 나있는 골목에 장엇집이 촘촘 포진하고 있었다.

난생처음, 보양식이라는 곰장어 구이를 먹어보기로 한 날이다.

하긴 선운사에서 풍천 장어를 시식했지만 눈앞에서 꼼지락거리는 산 장어를 구워보기는 처음.

나이가 방패나 훈장이라도 되는 듯 스스럼없이 오만 음식에 과감히 도전해 보고 있는 중이다.

연탄 화덕에 올려진 장어가 익어가며 푸르스름한 연기를 피워 올린다.

가게 안은 물론 길가 파라솔 아래 차려진 간이 식탁에서 왁자하니 걸게 먹어대는 사람들.



마치 딴 세상 같았다.

우아하게 사려 앉을 분위기는 절대 아닌 데다 깔끔 떨며 청결 따위 챙기려 들지 않고 완죤 개무시, 아이 돈 케어다.

서로 바투게 껴앉아 왁자지껄 떠들어대며 연신 석쇠에서 놋노릇 익은 살점 집어 들기 바쁘다.

젓가락질하다가 쐬주잔 들어 올리다가 손길만 분다운 게 아니라 입도 분답다.

벌겋게 양념 고추장 범벅인 장어구이가 아니라 홀딱 껍질 벗은 전라 누드 장어라 더 충격적이다.

연탄불 이글거리는 석쇠 위에서도 장어는 한동안 꼼지락 꼼틀 요동치며 생명체 다운 마지막 저항을 해댄다.

불길에 익어가면서도 뒤틀어대는 장어나 구워진 고깃점을 아무렇지 않게 먹는 이나 다들 참 대단도 하다.


꼼틀꼼틀 꼼장어 몬도가네 따로 없네, 싶었으나 자꾸 권하는 바람에 못 이겨서 시도를 해봤다.

첫술은 깻잎 두 장에 푹 싸서 먹었고 양파에도 얹어 먹거나 군 마늘 곁들여 씹어보니 이 역시 영 거슬리지는 않았다.



토막져 원 형체야 간곳없지만 그와 달리 페루의 혐오식 기니피그는 바싹 튀겨진 원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인도네시아에선 코브라로 패티를 만든 햄버거도 판다니 그보다야 장어가 한결 양호한 편이라 하겠다.

네 다리 달린 건 테이블 빼고 죄다 먹는다는 몬도가네식 중국인들 식재료엔 별의별 게 다 많다.

고단백 식품으로 즐기는 뱀탕 고양이탕 원숭이 골수에 심지어 부화 직전의 곤달걀도 즐긴다니 뭐.

게다가 곤달걀은 어린아이 오줌에 삶아야 한다는데 별 괴상한 조리법도 다 있다, 쩝!

샥스핀이나 달팽이 요리는 양반 아니 귀족이다.

하긴 민족마다 제 토양에서 나오는 식재료가 따로 있는 데다 전통으로 내려오며 자주 만들어 먹던 희귀 음식 역시 있게 마련이다.

따지고 보면 보양탕으로 즐기는 개장국이며 염소탕이나, 양고기 훠거며 쇠고기 샤부샤부나 닭백숙과 다를 거도 없는 셈이다.

디스커버스 채널에서 즐겨 보던 Man vs Wild에서 베어 그릴스는 칼과 부싯돌 수통만 지닌 채 거친 자연에 도전, 서바이벌 게임을 펼친다.

영국 특수부대 출신의 남자가 벌이는 리얼리티 생존기 속에서 그는 오지에 고립돼 날벌레나 파충류까지 예사로이 잡아먹는다.


시선을 돌려야 할만치 혐오감을 불러일으키지만,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한 서바이벌 게임이니.



가계마다 먹거리로 금기시하는 불문율이 있는데 시아버지가 직접 사냥해 온 노루 드신 뒤 와장창 사업 거덜 날 뻔해 사냥총을 경찰서에 맡겨뒀다.

요셉이 개고기를 절대 안 먹는 까닭인즉, 젊은 날 회식자리에서 멍멍탕을 먹고는 그날 큰 사고를 쳤다.

그 트라우마로 다신 개고기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을뿐더러, 큰애 고2 때 담임이 보약 대신 개소주로 보신 좀 시켜주라 했으나 귓등으로 넘겼다.

지금은 음성적으로만 개고기가 유통되는 데다 농축액마저 다른 자양강장제가 나와 대체되기도 했지만 그때의 후유증이 극복되지 않았던 때문.

식성이 까다로운 건 절대 아니고 비위가 약해 가리는 음식이 많다 보니 오랫동안 못 먹는 게 여럿 있었다.

몸에 좋은 건강식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를테면 생김새가 괴이쩍다거나 이름이 이상스럽다거나 향이 강하고 식감 멀컹하다면 일단 제외됐다.

멍게나 족발 곱창 닭발 같은 걸 아직도 안 먹는 이유다.

사실 어떤 음식이라도 어릴 적부터 자주 먹어봤다면 스스럼없이 친근하겠지만 뒤늦게 접한 음식이 모양이나 색깔이나 이름이 요상하다면?

충청도 내륙 지방 사람들이 덜 즐기는 생선회를 섬사람들은 어로작업이 일상화되다시피 했기에 회를 무시로 즐긴다.



젊어서 낚시광이었던 요셉이라 주말마다 먼바다로 나가 귀한 횟감을 낚아왔으나 미안하지만 한 점도 먹어줄 수가 없었다.

회를 먹기 시작한 계기는, 이민 초창기 몸이 된통 축나면서 주변에서 하도 권하는 바람에 건강 고려해서 먹었다.

심해에서 갓 건져온 그 좋은 회도 안 먹던 사람이 가로 늦게 비행기로 공수된 한국 횟감을 비싸게 사 먹은 셈이다.

선짓국의 경우는 빈혈기를 호소하자 딸내미가 철분 보충을 위해 눈 꾹 감고 약 삼아 먹으라 해서 먹었더니 예상과는 달리 먹을만했다.

그 후부터는 추어탕이며 돼지국밥 등등도 자연스럽게 격파시켜 나갔다.


칼칼하라고 부추 겉절이를 듬뿍 넣어 얼큰한 맛에 먹긴 하지만.

암튼지간 어제, 기력을 보강해 준다기에 꼼장어를 제법 먹었고 나온 김에 시장구경도 하고 영도다리도 건너는 등 기분 좋게 돌아다녔다.

허나 저녁밥 건너뛰는 건 물론이고 밤에 기어이 약국에 가서 부채표 활명수를 내 손으로 사다 마시고 나서야 겨우 속이 가라앉았다.

오늘, 아침이 지나고 점심때가 넘었지만 이 시각까지 아직도 식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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