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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죽도시장 골목 누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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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화
Sep 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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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물러간 일요일 오전, 비구름 바삐 내달리며 때때로 부옇게 빗줄기 뿌려댔다.
엊그제 설쳐대던 태풍 여파로 고속도로변 곳곳의 나무는 자로모로 쓰러진 채였고 이삭 팬 벼포기도 무더기로 드러누워 있었다.
포항 죽도시장에 닿을 즈음 고맙게도 비는 수굿해졌다.
포항 가로수 수종이 낯익은 플라타너스여서 덥석 손이라고 잡고 싶을 정도로 반가웠다.
가로수도 유행을 타는지 플라타너스가 요샌 흔치 않아서다.
오래전, 강 하구였기에 갈대가 많았던 늪지대의 쓸모없는 모래섬과 섬 사이를 매립해 만든 도시가 포항이다.
포철과 현대제철이 들어서 웅비의 깃을 펴던 당시에 심어진 듯 플라타너스는 허리통이 굵었다.
얼굴보다 더 넓적한 잎새는 성급하게도 낙엽 되어 도로변에 쓸려 다녔다.
죽도시장 구경도 하고 맛집 들러 아점을 먹을 작정으로 포항 죽도동 공영주차장에다 차를 세웠다.
동해안 최대의 전통시장으로 수산물 농산물 건어물 과일 잡화상이 빼곡하고 골목마다 특성화된 식당 밀집지역으로 이름난 이곳.
영일만을 끼고 있는 포항이라 시장통에는 대형 물회집, 대게집, 고래고깃집이 주를 이룬 한편 소문난 소머리곰탕집, 보리밥집, 칼국수집도 유명하다.
바닷가에 왔으나 우중충한 날씨라 물회는 좀 그렇고, 따끈한 국물 떠먹을 수 있는 해물샤부샤부나 매운탕이 어떨까 싶지만 딱히 결정한 음식은 없다.
맛집 검색 대신 우리는 일단 시장 여기저기 골목구경부터 하기로 했다.
구경 다니다 보면 맛있는 음식점은 눈에 띄게 마련, 굳이 폰으로 별표 여럿 달린 맛집 검색해 볼 필요조차 없다.
어디든 식당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 늘어서 있으면 음식맛은 보증된 집, 거기서 먹으면 틀림없으니까.
사실 음식 리뷰라는 게 지극히 주관적인 데다 더러 자가발전하는 식당도 있으니 별로 믿을 게 못된다는 것쯤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
소문난 잔치 먹을 게 없다는 말대로 요란스레 떠벌려진 음식점 치고 사람만 복작거리지 소문값 못하고 실망시키는 집 허다하다.
첫 번째로 비좁은 골목 안 허름한 식당의 기나긴 줄이 시선에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맛집인데 포항에 와서 소머리곰탕은 아니다 싶어 다른 골목으로 들어갔다.
젓갈골목 초입에서 생선 굽는 냄새와 된장찌개 내음이 동시에 후각을 자극하자 순간 맹렬하게 식욕이 동했다.
여기서 먹자, 바로 앞에 있는 생선구이 정식집 앞에도 기다리는 손님들이 여럿 서성거렸다.
자매식당에서는 뭘 먹을까 고르느라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이 메뉴는 딱 두 가지, 백미 비빔밥과 보리쌀 비빔밥 중에서 선택하면 된다.
정갈한 반찬은 한결같이 맛깔스러웠다.
풍겨오는 냄새로 문득 입맛 다시게 만들었던 가자미 구이는 간 알맞기도 하거니와 기술적으로 놋노랗게 익혀 바삭거리면서도 하얀 속살 촉촉했다.
나물 골고루 넣어 된장찌개로 쓱쓱 비빈 밥 위에 생선 한점 얹어 먹으면 으음~ 감탄사가 자동으로 뒤따랐다.
그럼에도 가격은 얼마나 착한지, 모처럼 너무도 맛나게 잘 먹었기에 식사대를 내며 미국식 팁이라도 얹어주고 싶을 정도로 포식을 하였다.
재래시장 활성화 방안으로 시설 현대화사업에 따라 아케이드가 설치돼 있는 죽도시장은 엄청난 규모였다.
속도 든든하겠다, 부산 국제시장과 맞먹을 듯 싶게 넓고 너른 죽도시장통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좋아하는 볶음나물용 고구마줄기도 사고 된장에 삭힌 고추지도 샀으니 밑반찬감 넉넉히 마련해 내심 어찌나 흐뭇하던지.
어시장엔 활어는 물론 벌써 추석을 겨냥한 제수용 반건조 생선들이 즐비했으며 과일전 사과 배는 때깔도 좋거니와 굵기가 자몽만큼 실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어릴 적 이곳에서 과일장사를 했다는데 그처럼 어려운 환경일지라도 순전히 자기 노력만으로 대성할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하면 된다'던 시대가 있었는가 하면 원칙과 상식은 제쳐두고 무슨 찬스든 이용, 편법 불사하며 목표만 이루면 된다는 위태로운 사고가 팽배한 세상.
현재는 개천에서 용으로 비상하려는 허튼 생각 대신 가재나 붕어로 자족하고 살라는 주문을 각인시키려 드는 역겨운 세월이 아닌가.
이미 신분상승의 사다리 일부가 걷어치워졌다 해서, 꿈꾸는 거 까지야 그 누가 무슨 권리로 막을 수 있으랴.
질척한 어판장 긴 골목이 끝나는 도로에서 맞은편을 바라보니 첩첩 무리 진 엄청난 수의 배들이 보였다.
포항 지형을 잘은 모르나 바다 같지는 않은데 뭐지? 의아했다.
그곳 명칭은 동빈내항, 동빈 선착장 수로는 70년대 형산강 하류 삼각주를 매립했다가 근자 환경정화를 위한 운하를 연결해 새로운 물길을 틔웠다고.
동빈내항 건너에 자리한 송도동 동쪽 끝머리에는 포스코, 서쪽엔 포항운하관이 위치했으며 크루즈도 운항된다하나 이날은 선착장에 바짝 움츠린 배들.
예전엔 수산업 전진기지로서의 어항이자 조개가 파도파도 나오던 해변이었던 곳.
내항 선착장에 빼곡하게 집결해 있는 각종 선박들, 내 생애 최고로 많은 수의 어선을 한자리에서 목격했다.
태풍을 피해 안전지대로 모여든 고깃배들에서, 나란히 줄지어 선 요트 무리 어머어마했던 롱비치항이 문득 겹쳐졌다.
북상 중인 태풍을 의식하기도 했지만 배 부르니 나른해져 구경은 대충, 포항 뒤로하고 귀갓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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