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여행을 가면 상다리 휘어질 정도로 잘 차린 한정식집이 흔하다.
강진 해남 순천 구례 남원 각 지역마다 특색 있는 맛집이 수두룩 포진하고 있다.
그 못지않게 반찬 잘 나오는 밥집이 서귀포에도 있다.
비게뿐인 흑돼지며 은갈치 통구이의 터무니없는 바가지요금에 관광지 제주를 외면한다는 뉴스가 뜨지만 그래도 여전 꾸역꾸역 육지인들 몰려드는 곳이 제주다.
실지 한반도 권역에서 사철 어느 때 와봐도 좋은 곳, 이국 정취 맛볼 수 있는 지역은 제주뿐이다.
여행자들은 거의 SNS 검색에 의존하다 보면 홍보성 낚시에 걸려 비싸기로 소문난 맛집에 들어가 바가지 덮어쓴다.
인스타에 올릴 사진 만들려 폼생폼사 분위기 찾으며 멋진 카페 가서는 옴팡 덤터기 쓰게 마련일 테고.
하긴 여행은 유쾌한 낭비, 작정하고 돈 쓰러들 오니까.
현지인 소개로 다녀온 호근동의 제주 청보리 식당은 서귀포의 어느 식당보다도 반찬 가짓수가 많다.
대충 헤아려봐도 밑반찬 접시가 서른 개 넘는다.
쌈밥 정식을 주문하자 청경채 상추 풋고추 치커리 배추 등속과 살짝 데친 다시마 양배추 푸짐히 나왔다.
뚝배기에서 보글거리는 강된장에는 애호박 두부 땡초가 들어가 맛 구수하면서도 칼큼했다.
중심 요리 격인 제육볶음 큼직한 접시에 그득하고 가운데 토막 갈치는 노르스름하게 구워 맛깔스레 보였다.
매끼 해 먹는 잡곡밥보다 일부러 꽁보리밥 시켰더니 일반 보리와 달리 가파도 청보리는 밥이 훨씬 시커멓다.
쌀보리나 보통 보리쌀도 도정을 여러 번 해서 색이 희고 알이 둥그스름한데 도정을 덜한 청보리는 검고 모양이 길쭉했다.
고로 현미가 그렇듯 표피가 덜 깎여 씨눈 그대로 살아있기에 영양가는 높겠으나 대신 질감이 거친 편이다.
열무김치 넣고 쓱쓱 비벼먹을 심산이었지만 쌈 하고 먹다 보니 어느새 그냥 밥그릇이 비어버리고 말았다.
첨 왔을 때는 세 명이 먹었는데 갈치가 아닌 고등어조림이 너른 접시에 아주 푸짐하게 담겨있어 다른 반찬 거들떠볼 새도 없었다.
양념 간이 알맞게 밴 두툼한 고등어도 맛있었지만 푹신 익힌 무와 감자가 입에 착착 감겼다.
평소 집에서 비린내 풍기는 게 싫어 생선 반찬을 거의 안 해 먹기에 한번씩 이 식당에 와서 해물을 섭취하기로 작정했다.
해서 황선생에게 점심 먹으러 청보리식당 가자고 부추겼던 것.
그녀 역시 반찬 수에 눈이 휘둥그레지며 앞으로도 학교 안 가는 토요일은 여기서 점심을 해결하자고 먼저 그런다.
아 참, 이 집은 1인 혼자는 안되며 점심(11시~2시까지)만 영업을 하고 일요일은 쉰다.
또 한 가지 첫날에 생긴 일이다.
생소한 야채볶음이 있기에 시식해 봤더니 아이 써~대체 이게 뭐람?
수더분하고 사근사근한 쥔장이 친절히 답해줬다.
당뇨에 좋은 여주로 마침 아는 분이 열매를 갖고 와 귀한 반찬 만들었으니 있을 때 많이 드시란다.
특별히 강추하기에 다시 한 입거리 집어와 넣어봐도 으~~ 써라!
더위에 입맛 떨어져 시난고난하면 모를까 쓴 나물은 더 이상 사양, 그 외에도 제주에서만 나는 특산물을 반찬으로 내놓는다.
이처럼 난생 첨 보는 양애며 번행초 나물도 이 집에서 처음으로 시식했다.
또 하나, 입맛에 딱 맞는 반찬이 있거나 반찬이 모자랄 경우 셀프로 더 갖고 와 먹으면 된다.
재료를 하루 사용할 양만큼만 준비해 반찬을 만들기 때문에 늦게 가면 떨어지는 찬도 더러 있겠지만.
따라서 묵은 찬통도 없겠고 모든 반찬은 물론 그날그날 제철에 나오는 식재료 따라 바뀌게 된다.
여름이라고 오이냉채를 내놓을 때는 된장 양념 거슬려 못 먹었는데 이번은 차게 식힌 콩나물국 맑고 시원해 다 들이켰다.
아마 날씨가 추워지면 따끈한 미역국이나 뭐 그런 종류가 나올 테지.
밥 퍼주는 목사님처럼 자선사업하는 거 아닐진대 요새 같은 고물가 시대에 아래 가격으로 타산이 맞는지 의문이다만.
암튼 쌈밥이나 보리밥 정식은 만 원, 닭도리탕은 양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나 삼만 오천원정, 메뉴 이처럼 단순하다.
전화: 064ㅡ739ㅡ33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