點心, 글자 그대로라면 '점 점(點)', '마음 심(心)'이니 마음에 점 하나 찍듯 가볍게 먹으라지만.
예술인 마을 두루 도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고 우리는 매우 시장했다.
헬레나 씨가 식당 검색을 하더니 아, 애월이 여기도 생겼네! 하면서 압력솥 밥이 맛있는 집이라 했다.
현지에서 오 년을 살았으니 도민이나 마찬가지인 그는 곳곳의 맛집을 잘 파악했고 추천하는 집마다 만족스러웠다.
아들은 늘, 나이 들수록 세끼 영양섭취 고른 식사를 해야 노년 건강 유지된다며 대충 때우지 말라고 누누이 잔소리한다.
산행을 자주 다녀 전국 길목마다 숨겨진 맛집을 꿰고 있어서 언니네와 여행을 가게 되면 근처 맛집 목록을 카톡에 딸려 보낸다.
그걸 자상하기도 하다며 퍽 부러워하던 언니다.
아들이니 그럴 수 있다 쳐도, 헬레나 씨 부군은 별세계 사람처럼 보기 드물게 자상한 남편이다.
나이 든 세대라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유독 봉건적이고 완고한 남성상에 익숙한 나로서는 경이롭기까지 할 정도로 그는 아내를 배려한다.
직장에서 퇴근한 가장이 혼자서 끼니 챙겨 먹는 게 무슨 특수상황이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가정도 있다니.
아주 특별한 경우 아니면 저녁상을 준비해 놓지 않고 늦도록 나다녀본 적이 없기에 저녁식사 신경 쓰지 않는 그녀가 신기했으니까.
결혼이 족쇄는 아닐진대 굳이 서로를 구속해 가며 불편하게 살 까닭 있느냐면서 알아서 틀만 지키면 된다는 사고가 자연스럽게 몸에 밴 그들 부부.
오히려 집에서 부실하게 점심밥 혼자 먹지 말고 입맛 맞는 식당에서 잘 챙겨 먹으라 당부하는 속 깊고 따스한 사람이다.
그런가 하면 퇴근 후에도 알아서 저녁 먹을 테니 아무 염려 말고 느긋하게 친구랑 식사하고 오라고 한다.
전혀 조바심치지 않으므로 그녀와 다닐 적엔 그래서 늦어도 부담스럽지 않았는데, 한편으론 그녀 남편은 다른 행성에서 왔나 싶기도 했다.
은퇴 후까지 가장에게 삼시 세끼 반찬 걱정하며 무수리처럼 밥상 대령시키고 나아가 그걸 당연시 여기고 산 세대는 그저 놀랍기만 할밖에.
미술관 서넛을 탐방하고 나온 저지문화예술인 마을 바로 코앞에 위치한 식당이라 금방 목적지에 닿았다.
민트블루 긴 나무의자와 붉은 맨드라미 대비도 선명한 식당 애월은 첫인상부터 좋았다.
잘 정돈되고 볕까지 바른 실내 분위기 역시 격도 있고 상당히 깔끔했다.
점심시간이 지났음에도 식사 중인 손님이 꽤 있었다.
제주는 특이하게도 식당마다 거의 세시부터 다섯 시까지 브레이크 타임을 갖기에 서둘러 왔는데 다행이었다.
메뉴판이 아니라도 옆 식탁 불판에서 지글거리는 벌건 두루치기가 급 땡겼다.
양돈 두루치기를 주문하며 차이점을 묻자 양파가 많이 들어간 두루치기라 양돈, 파가 많이 들어가면 파돈 두루치기라 했다.
상추와 밑반찬이 먼저 차려졌고 잠시 후 파릇파릇 애호박에 두부가 든 된장국 딸린 압력솥 밥이 나왔다.
스테인리스 소재의 두터운 솥이긴 한데 고압 상태로 지은 밥이라 지난번 다른 식당에서 먹어보니 차지면서 고슬고슬해 밥맛 일품이었다.
솥의 밥을 공기로 옮긴 다음 뜨거운 물을 붓자 치지직 대는 소리조차 상쾌하게 들렸다.
채 썬 양파와 콩나물무침 배추김치가 제주돈육과 함께 수북하게 얹힌 두루치기는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다.
불판 위의 두루치기가 지글지글 알맞게 익자 고기와 콩나물 마늘 곁들여 상추에 싸서 볼 미어지게 먹었다.
두루치기 간이 삼삼해 상추에 한 짐 씩 싸서 연거푸 먹어도 짜다거나 질리지도 않았다.
밑반찬 추가는 셀프라 나는 콩자반을 헬레나 씨는 멸치볶음을 듬뿍 가져왔다.
정갈스러운 주방만큼이나 셀프 찬통도 스테인리스 서랍식이라서 위생적인 점 분명 추가 별표 깜이다.
하긴 가면 갈수록 경쟁 심한 업계, 시설 업그레이드는 필수사항일 터다.
불판에서 얼큰하게 익은 배추김치랑 눌은밥까지 싹싹 긁어먹고 숭늉 훌훌 마셨더니 배가 쑥 나왔다.
푸짐한 점심 걸쭉하게 잘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