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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맛있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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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화
Sep 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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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1일 제주공항에서 콜택시를 타고 서귀포로 왔다.
관광지라 물가가 높다고 알려진 제주다.
단풍 익어가는 한라산 5.16 도로를 횡단해 한 시간 남짓 걸려 서귀포로 이동했는데 택시비는 이만 오천 원.
커브길 안전 운행하며 기사 양반 구름 속에 숨은 한라산 얘기부터 1100 고지에 있다는 천백도로에 얽힌 일화 등, 관광 가이드 역까지 도맡았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친절하게도 엘리베이터 앞에다 무거운 짐을 번쩍번쩍 들어다 놓으며 풀코스로 서비스를
베풀
었다.
관광 제주의 최일선에 선 분으로서의 투철한 봉사정신이 아마도 제주에 대한 호의적 인상에 큰 플러스 요인이 될 터이다.
섶섬과 제지기오름이 내려다 보이고 북창으로는 한라산이 건너다 보이는 정방폭포 근처의 12층 새로운 거처.
집 청소부터 한 뒤 이삿짐을 풀어 정리하고 사흘째 비로소 컴퓨터를 연결했다.
말투도 걸음도 급한 편이지만 제주에서는 뭐든 천천히 느리게 하기로 맘먹었으니 조급하게 굴지 않았다.
눈부신 해가 동창을 밝히면 저 아래 푸른 바다는 은빛 거울처럼 반짝거리며 손짓해 댔다.
그래도 여유작작, 앞으로 삼백예순 날을 맘 내키는 대로 돌아다닐 수 있으므로 여행객과 달리 마음 푼푼했다.
소포로 부친 박스 몇 개의 이삿짐도 때맞춰 도착했다.
짐을 최대한으로 줄인 데다 액상 제품은 짐에 넣을 수 없었기에 당장 필요한 주방용품들이 적잖았다.
수도승이나 원시부족처럼 살겠다고 작정했으니 담박한 살림의 불편은 기꺼이 감수하겠으나 최소한 있을 건 있어야 하니..
제주에 처음 집을 보러 왔던 혁신도시 쪽에 이마트가 있어 오전에 잠깐 들렀다가 인근 도서관 구경도 했다.
언뜻 보기에 이곳 혁신도시는 새로 만들어졌기에 전체적으로 깨끗하고 환경도 쾌적한 편이다.
서귀포시가 팽창하자 서쪽 방향에 새로이 신도시 건설을 계획, 택지를 개발해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허허벌판에 신도시를 조성하면서 일차적으로 널찍널찍하게 도로를 내 공공시설물을 올리고 월드컵 경기장도 세웠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만들기 앞서 도시 활성화를 위해 이마트 허가를 내줬으며 정부 기관도 다수 유치했다는데.
그러나 같은 서귀포라도 날씨 춥고 습한 데다 원래 묘지가 많던 자리라 토박이들은 꺼리는 동네라더니 빈 건물도 부지기수.
마치 외국처럼 거리 조경 잘 돼있으며 휑하니 시원스레 도로도 잘 뚫려있으나 아직은 한산하기 이를 데 없는 혁신도시다.
국제자유도시를 표방하며 호기롭게 출발한 혁신도시는 말이 좋아 혁신, 개혁이나 진보와 마찬가지로 정의하기 애매했다.
애초에 보러 왔던 집이 있는 신개념 지식산업센터만 해도 불법으로 용도변경해 오피스텔로 변모시킨 곳.
공장도 아니고 사무실도 아니고 집도 아닌 어정쩡한 공간이 어찌나 휑뎅그렁하던지 전혀 마음 내키지 않아 패스해 버렸던 터다.
신시가지 종횡무진 누비다 보니 그럭저럭 점심때가 지나 시장기가 돌던 차, 마침 메뉴가 맘에 드는 식당이 보여 안에 들어갔다.
서귀포에서 몇 번 외식할 기회가 있었는데 바닷가라 주로 해물 음식을 주문했다.
첫 번째로 고른 음식은 갈치 정식이었으며 역시나 갓 잡은 싱싱한 갈치구이가 입맛을 사로잡았다.
두 번째는 횟집에서 전어회를 시켜봤다.
이때는 밥이 뜸이 덜 들어 설익은 듯 입에서 겉돌아 대신 회와 야채로 배를 채워야 했다.
그다음은 굴국밥, 청년들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인테리어가 심플했으나 양식 굴은 크기만 클 뿐 맛 밍밍했다.
다만 반찬으로 딸려 나온 오징어회가 상큼해 접시를 다 비웠다.
돔베고깃집은 돼지고기 수육을 작은 도마에 얹은 채 식탁에 올려 되게 신기했다.
오늘 신시가지 도로변에서 만난 가마솥 밥집은 간판에 이끌려 식당 문을 열게 됐다.
일인용 가마솥에서 밥을 덜어낸 뒤 따끈한 물 부으면 치지직~ 끓어오르는 구수한 누룽지탕 먹을 생각을 하면서.
가마솥 밥에 차돌된장찌개나 육개장, 닭볶음탕, 두루치기 중 하나를 곁들여 주문할 수 있다니 식단도 괜찮았다.
주방 양푼에 무더기로 쌓인 갈비를 보니 갈비탕이 전문인 듯 엄청 커다란 들통에서 김이 뭉터기로 올라온다.
신시가지나 마찬가지로 식당도 너르고 규모 큰데 비해 영 한산한 편이었다.
음식이 나왔는데 찬그릇 정갈스럽고 벌건 육개장은 양도 아주 푸짐했다.
이 많은 걸 다 먹겠나 싶었는데 웬걸, 밥이 기차게 맛있어 술술 넘어가는 바람에 솥을 싹 비웠다.
밥집의 으뜸 요소는 뭘까.
대개 반찬이 맛있는 식당을 들 텐데 오늘 의외의 진리를 발견했다.
반찬도 중요하지만 일단 밥이 차지고 맛있어야 한다는 것을.
밥이 다 그 맛이지 특별히 맛 좋은 쌀이 따로 있겠나 마는 쥔장에게 사용하는 쌀 이름을 묻기까지 했을라구.
그녀는 싱긋 웃음 지으며, 그냥 대놓고 사 먹는 쌀가게에서 산 보통 쌀인데 아마 압력솥 기능 덕일 거라고 말했다.
식당 이름은 가보 정원, 명함에는 보가 정원이라 쓰여있어 헷갈리나 암튼 신시가지에 있는 가성비 최고의 맛집이다.
앞으로 친구들이 놀러 오면 일부러 찾게 될 식당 목록 첫머리에 둔 가보 정원.
모든 걸 육지에서 들여와야 하므로 기름 가스 공산품 가격은 물론 음식값 비싸다는 제주다.
그럼에도 부산보다 전혀 쎄지 않은 가격대에 음식 맛 좋고 인심도 후하고 친절한 서비스, 이쯤 되면 더 보탤 게 뭐 있지?
T:064-738-0030/010-4692-4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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