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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22. 2024

그곳, 데스밸리

데스밸리 가는 길

가도 가도 끝없는 황야에 쪽 바르게 난 외길.

만년설을 인 시에라네바다 산맥과의 동행이었네.

교통량이 적어 모터사이클족들 굉음을 뿌리며 마구 치달렸지.

우리도 내내 통쾌한 무한질주, 모처럼 아주 흔쾌했다네.


거칠 것 없이 탁 트인 일망무제의 사막길에서는 절로 무한 질주본능이...

데스벨리 가는 도중, 소실점 저 끄트머리.

시에라네바다 산자락 아스라이 이어졌네.

불끈 솟은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등줄기는 엄청 장엄하데.

 

흰 눈을 인 준봉들이 힘차게 치달리는 산맥.

그중에서도 가장 장쾌한 봉우리.

하늘 높이 치솟은 고고한 웅자 휘트니산이 저만치 서있데.

보관처럼 머리에 인 만년설.

단아하고 정결한 자태로 우뚝 솟은 휘트니 그 산.


빙하라서 그렇겠지.

눈산에서 내려오는 골짜기 물은 얼음처럼 차디차 손 시립더군.

여기서 여름 하루쯤 캠프를 하며 한국인답게 이 물에다 수박 담가두고 싶은데...

하필이면 꼭, 삼겹살 바비큐에 천년약속 마시면서.

모닥불 피워놓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한 잔 또 한 잔.

알싸한 취기 속에서 계류 청량한 물소리 들어보고 싶은데.... 언젠가는 기회 닿으려니.

서부영화나 인디언 영화를 찍을 때 단골 무대라는 표지판만 보고 바위산에 잠시.

앨라배마 힐이라더군.

요 근처에서 비암을 만났지 아마?

바위 그늘에 숨은 녀석 괜스레 건드렸다가 식겁했다네.

엄마야~ 팔짝 뛰어 달아나며 아직도 나 다급하니 엉겁결에 엄마를 부르데.


다시금 소실점의 끝만 바라보며 달렸네.

미국에서 가장 낮고 더운 지역인 데스 밸리 가는 길.

끝도 없이 무덥고 황량하고 건조한 허허벌판만 계속되더군.

인간의 접근을 쉬 허락지 않는 아주 깐깐한 오지인 거지.

여름철은 최고 화씨 134도까지도 치솟다 보니 11월에서 4월까지가 여행 적기라는 데스 밸리.


단테스 뷰에서 바라본 데스 벨리의 '나쁜 물'이란 이름의 저 하얀 소금 골짜기.

해수면보다 무려 86미터 낮다는데...

참으로 메마르고 무덥고 건조한 지역, 사막이 형성될 조건들 뿐.

리얼 황막한 사막이었네.

넘고 또 넘은 모래 언덕 그 너머에도 다시 사구가 기다리더라구.

바람이 빚은 물결무늬 대신 모래에 찍힌 건 무수한 발자국들...


맘껏 달리고 싶고 맘껏 뒹굴고 싶고 맘껏 미끄러지고 싶고 소리소리 맘껏 고함지르고 싶었다네.

자유로이 춤추고 싶고 자유로이 날고 싶고 자유로이 외치고 싶고 크게 웃어보고 싶은 곳이데.

하여 다시금 찾고 싶은 곳이라네.

시시각각 변하는 능선의 모래 무늬가 아름답던 그곳 여행은, 뭐랄까.

아주 먼먼 이방지대를 다녀온 느낌?

어떤 경계를 넘어선... 삶과 죽음 그 너머까지 넘어선...  

미국에서 가장 낮은 지대이자 살인적 더위로 여름철 여행자의 접근을 막는 데스벨리.

몇 백만 년 전 여기는 바다였다는데..... 바닷속으로 길게 난 길이었다지.

홍해를 건너듯 퀘이커 교도들은 그들 나름의 종교적 신념으로 이 길을 걸었으리.

저마다 게서 그들은 무엇을 찾았을까,

나는... 아마도 소금기에 푹신 절여지고 싶어 무한 그 길을 걸었지싶군.


누군가 손짓하는 듯한 환영, 멀리서 부르는 듯한 환청....

아롱거리는 신기루를 따라 데스벨리의 광활한 소금밭 저 끝까지 걸어갔다네.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더군.

다시 되짚어 올 그 길을 그래도 걷고 또 걸었다는.

길들일 수 없는 황무지, 황막강산이었네.

만월과 별이 가득한 야의 숙소, 터키석에서 사파이어 빛깔로 밤이 오더군.

저절로 오래 깊은 명상에 잠겨 들게 하는.

황량함에 관하여...... 삶의 질곡에 관하여.... 묵상하게 만드는.

데스벨리 지나는 길손에게 대자연은 말없이 가르치데.

미미하기 그지없는 존재인 너 더욱더 겸손하라, 한결 더 낮아져라.

기를 써보고 용을 써봐야 백 년... 그건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닌 보잘것없는 거라네.


휘영청 만월에 밤송이 같은 푸른 별이 가득한 밤,

데스 벨리를 지나 휘휘할 정도로 한적한 이름 모를 산자락 굽이굽이 돌아서 다다른 곳.

휘트니 산이 마주 보이는 인디펜던스 마을.

미 본토 내에서 가장 높은 산인 4418미터 휘트니산이 복사꽃 저 너머로..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따라 주욱 4천 미터급 산줄기들이 하얀 만년설에 덮인 채 묵언정진 중이더군.


일찌감치 인디펜던스에서 출발, 휘트니 산 등정하는 산길 향했었네.

그러나 겨우 발치쯤까지만 차가 올라갈 수 있더라는.

방금 올라온 저 아래 도로가 아득할 만큼 여겨질 정도로 높이는 만만찮더군.

휘트니산 오르는 길목, 그냥 눈 덮인 먼산바라기나 하고 가는 것만으로도 축복 아니겠나.


참, 여기서 한 가지... 평상시 선글라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곳 햇빛 끝내줘서.....

광선이 어찌나 강렬한지 눈이 부시다 못해 눈이 시어서 맨눈으로는 도무지  도리가 없다네.

여행길에서 난, 본디의 나 아닌 내가 되어 자유의 날개 달고 환하게 웃고 있지.

아무 데도 걸림 없는 자유로움으로 행복이 가득 넘쳐나 한껏 기분 좋은 표정으로.

뒤편에 먼 배경 이룬 눈 덮인 하얀 산 다시 봐도 가슴 뛰기에.


멀리 등 너머로 보이는 저 산맥을 두 개쯤 넘으면 거기가 데스 벨리, 깜깜 밤중에 거길 넘었다는 거 아닌가.

표현은 안 해도 운전하는 딸내미 식은땀 꽤나 흘렸을 거야.

암튼, 알고는 못 왔을 장거리인 데다 절벽 낀 도로상태 험했어.


아스라한 창공의 하얀 점 하나 보이는가.

사막에 뜬 달이라네.

모래 언덕 너머로 노을이 지고 이어지는 푸른 밤의 소슬함,  그냥 침묵하게 만들더군.

그때 비로소 살아있음의 실감, 오감이 깨어있다는 게 감사했다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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