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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베고기 백반이 근고기보다 훨~

by 무량화

서귀포 시내에서 산 지 오 년째인 도반이 앞장선 식당 이름은 전원일기.

현지인이 즐겨 찾는 식당이라 했다.

SNS 상에서 과하게 부풀려진 여행자를 위한 맛집 말고 주민들의 한 끼 식사를 위한 알짜배기 밥집.

쫄깃한 돔베고기와 푸짐한 유기농 쌈과 정갈한 밑반찬 골고루 진수성찬으로 차려낸 식당이었다.

돔베고기가 대체 무슨 말이우꽈?

경상도 지방에서는 집집마다 명절 차례상에 두툼한 돔배기(상어고기)로 산적을 만들었다.

값비싼 고급 식재료라 다들 즐겨 먹는 돔배기였지만 상어고기란 말에 식인상어가 떠올라 비위 뒤집혀 먹을 수가 없었다.

상어고기를 제상에 올린다니.... 산적 감은 당연 소고기인 충청도 풍습으로는 돔배기란 음식 자체가 그야말로 금시초문.

제주도에 와서 식당에 쓰여있는 돔베고기를 처음엔 그 돔배기를 칭하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갓 삶은 흑돼지고기를 나무 도마에 얹어 덩어리째 썰어 내놓는 제주도 지역 음식으로, 돔베는 도마란 뜻이다.

섬사람인 제주도민은 삼시 세끼 매일 돼지고기를 먹으라 해도 반긴다고 했다.

언제부터 그런 식성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만큼 좋아한다.

그러니 굽고 지지고 볶고 삶고 하여지간 흔해빠진 게 돼지고기 관련 식당이다.

우리는 어쩌다 한번 먹는데 그렇게 자주 먹어도 질리지 않는지 신기할 정도다.

쌈밥 정식을 주문하자 돔베고기 수육이 나오고 짭짤한 강된장에 계란찜 고등어조림이 딸려 나와 한상 그들먹했다.

직접 담은 배추김치 깍두기도 입맛에 맞았고 정갈하게 담긴 삼색 나무새 무침은 눈 맛까지 돋워 접시마다 살뜰히 비워냈다.

무엇보다 돔베고기에 곁들인 새우젓(충청도에선 수육에 새우젓)과 막장(경상도식은 수육엔 무조건 막장)이 나와 반가웠다.

여태껏 돼지고기와 궁합이 잘 맞는 식품 중에 새우젓만 한 건 없다고 여기는 1인인지라 점수 팍팍 눌러주었다.

흑돼지 고유의 쫄깃한 식감을 맛볼 수 있는 이름난 식당이라 했다.

두툼하게 구워진 돼지고기 안에 육즙이 갈무리돼 있다는 맛집.

중문초등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현주 씨가 안내해서 근고기의 원조라는 돈사돈집에 갔다.

피크 타임을 지나서인지 겉에서 보기에 허름해 뵈던 식당 내부도 역시 침침하고 헐빈했다.

드럼통 위에 설치된 둥근 식탁부터 점잖은 분위기는 아니라서 어쩐지 내키지 않았다.

유명세를 증명하듯 연예인들이 휘갈겨 쓴 대형 싸인판도 미끼용 과대포장지 같았다.

일단 들어왔으니 둥근 의자에 앉아 식당 냄새가 밸 거 같아 코트부터 벗어 뒤집어 개켜놓고 주문을 했다.

돼지고기를 2인 기준 600g 한 근으로 주문해서 연탄불에 구워 먹는 방식이라, 두어 테이블 손님만으로도 연기 자욱했다.

세상에나! 무지막지한 개척시대 미 서부인들 스테이크 굽듯이 커다란 뭉치 고기를 척척 석쇠에 올렸다.

도우미가 고기 굽는 일을 곁에서 내내 도와주며 점차 잘게 잘게 가위질해줬다.

고기가 노릇하게 잘 익으면 석쇠 위에서 끓고 있는 멜젓에 찍어 먹는 방식, 멸치젓을 싫어하는지라 파지래기 얹어 먹었다.

식당에서 거의 김치찌개를 주문하지 않는데 쌀쌀한 날씨라 국물 떠먹으려고 시킨 김치찌개 곁들이니 그나마 개운했다.

내동 발치에서 어슬렁거리는 냥이 먹이로 적당히 식힌 고기 두 점을 남겨두고 식당을 나왔다.

소문난 맛집, 그래서 대기 줄 길게 서서 기다린다는 식당이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다.

게다가 값은 오지게 비쌌다.

제주산 흑돼지 근고기 가격이 100g 당 만 천 원씩인 데다 김치찌개와 공깃밥 둘 합쳐서 칠만 오천 원.

서귀포 시내의 쌈밥정식에 따라 나온 맛깔스러운 찬과 돔베고기, 도마 위에 썰어놓은 그 돼지고기 수육 생각이 절로 났다.

하긴 기호나 식성 따라 음식맛이야말로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데다 입맛 역시 천차만별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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