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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물오름 휴양림 거쳐 민오름

by 무량화


오일육 도로 타고 성판악 지나서 한라생태숲 앞에서 차를 내렸다.


작년 이맘때 절물오름 휴양림에서 본 제주 상사화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제 철이 되었기에 왔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꽃 상태가 영 시원치 않았다.

꽃구경 대신 벌써부터 오르려고 했던 민오름을 가보기로 했다.

일단 삼나무 숲 평상에 다리 쭉 뻗고 앉아 사가지고 간 김밥과 천도복숭아부터 먹었다.

볕살 뜨거워도 그늘막은 설렁대는 바람결 제법 서늘했다.

바로 도로 건너편에 솟아있는 민오름이라 지나칠 적마다 가볼까 하면서도 매번 사려니숲으로 빠지곤 했던 터.



오늘에야 드디어 시절 인연이 맞닿았던가 보다.

들머리 숲길에서도 인적 하나 만나지 못했으니 현주 씨와 동행하지 않았다면 휘휘할뻔했다.

데크 주변에는 물봉선 분홍보라꽃 환했고 개모싯대 꽃 희미한데 독초인 천남성 빨간 열매 유난히 반질거렸다.

제주도 내에 있는 다섯 개의 동명 민오름 중에서 오늘 오른 곳은 봉개동에 있는 민오름이다.

해발 651m라니 오름 치고는 제법 가파른 높이다.

침목만큼 튼튼한 계단이 오름 초입부터 놓여 경사도 무척 심해도 올라가는 데는 안전한 편이었다.

데크 양편에 손잡이용 로프까지 죽 연결돼 있어 층계를 딛고 척척 올라갔다.

나무그늘이 계속 이어졌으나 등판에 땀이 배기 시작했다.

숨길 가빠지면 좀 멈췄다가 다시 올라가는 식으로 서너 차례 쉬면서 숨 고르다 보니 어느새 하늘이 드러났다.

절물오름 봉우리가 마주 보인다 싶었는데 곧바로 민오름 정상이었다.



뭇 오름들이 여기저기서 이마 드러내고 순하게 부복했다.

진을 친 구름장으로 한라산은 가려졌으나 푸른 목장과 가시리 동네 풍차까지 보여 전망 좋은 민오름.

그러나 잠시 앉아 쉴만한 자리가 마련돼있지 않았다.

엉거주춤 선채로 간식을 나눈 다음, 뒤편으로 돌아 난 둘레길을 따라가다가 되돌아왔다.

마치 정글처럼 잡풀들이 키대로 자라 뒤엉킨 채라 더는 앞으로 치고 나갈 자신이 없어서였다.

우거진 풀 속에 묻힌 발치가 신경 쓰여 보폭도 최대한, 걸음도 잽싸게 그 길을 빠져나왔다.


뭔가에 쫒기 듯 말없이 빠른 걸음으로 내달으며 식겁했는데 그제야 안도의 깊은숨 토해졌다.


나중에 이정표를 보니 그쪽 길은 오래전에 폐쇄돼 지워진 상태.

아는 길에 들어서자 비로소 안심이 돼 우리는 좀 전에 올라왔던 길로 산을 내려왔다.

꽤 경사진 길인데 생각보다 하산하기는 수월한 편이었다.

사려니숲 주차장을 통과한 다음 사려니숲 가로질러서 차도가 있는 큰 길가로 나왔다.

서귀포 시내로 가는 차편이 금방 도착해 우리는 아직 해 훤할 때 일호광장에 닿을 수 있었다.

아홉 시 넘어 출발했어도 한라 생태숲 거쳐 절물오름 휴양지 통과해 민오름 올랐다가 사려니숲까지의 트래킹, 족히 3만 보는 걸었을 터다.


오늘 밤은 곯아떨어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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