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갖고 싶었다. 그저 그날이 그날인 평범한 일상의 반복이 지겨웠다. 일을 하고도 싶었다. 정신이든 육신이든 치열하게 일과 맞붙어보고 싶었다. 더불어 자유에의 갈증으로 찾은 미국이다. 자유, 평등, 평화를 건국이념으로 내세운 미국. 포장만으로는 이상향 그 자체였다. 거기다 절제된 도덕주의를 표방하는 청교도적 윤리관도 성향에 맞았다. 절박한 상황에 몰려서라기보다 바람 같은 이상만 좇으며 가로 늦게 이 땅에 왔다. 목표도 명분도 이유도 뚜렷치 않은 이민이었다. 이런 케이스의 경우, 이면을 심층 분석하다 보면 나라는 허황되고 비겁하기 짝이 없는 사람과 만나게 된다. 이를테면 스트레스 요인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서 개선하려 들기보다 아예 피하는 방법을 택한다든가, 남이 가니 거름 지고 장에 따라가는 격 따위다.
처음 닿은 곳은 미 북서부.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태평양 연안에서 대서양 연안으로 날아왔다. 전혀 예기치 않은 일, 진도 6.7의 호된 강진을 만나고서였다. 겨우 시차적응이 될까 말까 한 싯점에서 겪은 지진에 혼비백산, 한참을 공포에 질려 얼떨떨한 상태로 지냈다. 두려움과 황당감 속에서의 몇 십 초 후, 대지가 심하게 진저리 치듯 부르르 떨리더니 이윽고 흔들림이 멎었다. 한바탕의 거센 용틀임은 지진이었다. 천만다행 지표 깊숙이서 발생한 지진이라 그나마 피해는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 천지의 격랑이 지나가자 며칠간 멀미하듯 속이 다 울렁울렁 메스꺼움이 가시질 않았다. 삶의 도정 곳곳에 이렇듯 복병처럼 기다리고 있는 변수들. 그로 인해 고초 겪기도 하고 뜻밖의 횡재를 하기도 한다. 아무튼 고초의 서막인지 횡재의 신호탄인지 뉴저지에 새로운 생활의 닻을 내린 후 곧바로 작은 드랍샵을 시작했다. 그런대로 순조로운 정착이었다.
하지만 아무 데도 걸림 없는 자유를 갈구했던 내게 이곳 생활은 더 강도 높은 구속감으로 옭죄 들었다. 그것은 현실이라는 덫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답까지 바쁘게 일에 쫓기다 보면 이건 제 발로 찾아들어온 노동수용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신문조차 펴 볼 짬이 없는 일, 일의 연속. 거의 매일을 일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대다 보니 도대체 여기서 나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싶은 회의감이 엄습하곤 했다. 뿐만 아니었다. 온종일 꼼짝없이 가게에 갇혀 있어야 하니 솔직히 유배지가 따로 없다는 느낌. 그럴 때면 뒤뜰의 울울한 숲마저 완강히 버티고 선 장벽으로 여겨졌다.
처음엔 한아름이 넘는 고목 가로수며 잔디밭에 노니는 토끼 다람쥐에서부터 주변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세계 각국의 제품이 망라된 상가며 주말의 야드 세일까지 아이처럼 호기심이 준동하여 꽤나 들락거렸다. 새로운 풍물만이 아니라 처음 해보는 針母 수준의 고된 일조차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열 시간 넘게 하는 일은 아무래도 무리, 단내가 나도록 버거운 일에 치여 저녁이면 너무 피곤해서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강단으로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스스로 조율할 수 있는 것은 정신세계일 뿐 점점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여기저기 거부반응이 왔다. 자주 두드러기가 솟고 풍치로 이는 시도 때도 없이 쑤셨다. 반복되는 눈의 열감과 충혈도 신경 쓰였다. 오른팔의 근육통도 예사롭지 않았다. 갈수록 태산이었다. 게다가 자유는커녕 옴치고 뛸 수도 없이 일의 노예로 꽁꽁 묶여 살아야 하니 이건 정녕 아니다 싶었다. 구체적으로 되돌아갈 준비를 한 적도 있으나 결국 덫에서 내 발목을 빼내진 못했다.
오래전 어느 사찰의 외벽에서 본 벽화가 떠올랐다. 들불이 덮쳐오자 길 가던 나그네는 빈 우물로 피한다. 가파른 낭떠러지 아래. 발치엔 혀를 날름대는 뱀이 우글거린다. 위에서는 미쳐 날뛰는 야수가 발을 구르고 섰다. 절체절명의 공간. 밧줄같이 늘어진 칡덩굴에 의지해 겨우 버티고 있는 한 사람. 칡 줄기에 붙은 벌집에서 그의 입으로 똑똑 꿀이 떨어진다. 그는 꿀맛에 빠져 찰나의 열락에 취해있다. 칡덩굴 중허리를 흰쥐와 검은 쥐가 간단없이 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불설비유경’에 나오는 안수정등(岸樹井藤)이라는 불교설화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나락인 벼랑이다. 아래위로 상황이 절박해 뛰어내릴 수도, 기어오를 수도 없으니 진퇴양난이다. 존재가 허락되는 삶의 길이는 칡으로 은유됐다. 검고 흰 日月이란 쥐가 갉고 있는 시간. 따라서 그를 지탱해 주는 칡은 머잖아 끊어질 것이다. 문득, 한 가닥 칡에 매달린 그가 영락없는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닌가 놀란다. 내게 있어 달콤한 꿀물의 유혹은 작지만 그런대로 자리 잡혀 잘 돌아가는 비즈니스다. 모두 포기해 버리고 한국에 나간다면 정확히 그만한 보장은 당장에야 어림없는 일. 그게 아까워 여기 매달려서 엉거주춤, 혼돈과 갈등 계속하는 내게 딸아이가 오 헨리의 단편집을 부쳐왔다. 뜬금없이 웬 오 헨리인가 했더니 ‘에드워드 씨의 타락’을 읽게 하고 싶은 거였다.
병 속에 보물이 들어있다. 욕심껏 한주먹 움켜쥐고 병에서 손을 빼내려 하나 도무지 손이 빠지질 않는다. 주먹 쥔 손을 풀어야, 쥔 것을 가벼이 놓아야 손은 자유로워진다. 하지만 보물이 탐난다. 그것도 되도록이면 많이 갖길 원한다. 오욕락이란 족쇄에 제대로 걸렸다.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다. 탐욕의 끝이 무엇인지 익히 알면서도 쉽게 제동 걸리지 않는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에 타버린 나. 그러나 욕구에 걸맞은 버젓한 성취를 이룬 것도 아니면서 물욕에 대한 부질없는 허상만 키웠을 뿐. 이제 슬슬 멀미가 난다. 산다는 게 분명 이것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최우선 가치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 그렇다. 이 땅에서 내가 원했던 것이 풍요로운 삶이었다 해도 그것은 量이 아니라 質이었다. 나아가 관념이 아닌 어디에도 예속되지 않은 자유를 갈구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다. 생활환경 등 외적 조건이 바뀐다 해서 그것이 변화는 아니었다. 그리도 갖고자 바랬던 변화란 기실, 막연한 현실도피 내지는 어리석은 현실 탈출의 다른 이름에 불과했다. 내가 예전 그 마음자리에 그냥 머물러 있는데 꿈이나 환상처럼 신기막측한 변화가 이루어질 리 만무다. 진정한 변화는 자기 내부의 변화. 변화를 원한다면 먼저 자신부터 변해야 한다는 사실, 그 단순한 원리를 깨치기까지에는 닻이 덫으로 바뀌는 시간이 필요했다.
#역이민을 심각히 고민하던 시기인 200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