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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수로왕릉
by
무량화
Sep 1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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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에 가려진 금관국 왕도 가야(伽倻)는 삼국시대 초중반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여러 왕국 가운데 하나였다.
낙동강 서쪽과 가야산 이남에 이르는 남해안 일원에서 세력을 늘려가며 고유의 문화를 일궈온 가야.
가야는 대가야권(고령 및 합천 등), 금관가야권(김해, 부산 등), 아라가야권(함안, 마산 등), 소가야권(고성, 진주 등)으로 분류된다.
정약용 등 실학자가 주장한 연맹왕국설로 보면 가야 정치 체제는 이해관계에 따라 연맹국 간에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을 거듭했다.
수로왕이 가락국을 세운 해는 서기 42년의 일이다.
그 후 서기 400년 광개토대왕의 남정으로 쇠퇴하기 시작, 532년 가야의 구해왕이 신라에 투항하면서 역사 밖으로 사라지고 만다.
가야사 연구는 문헌 자료의 절대 부족 상황이라 여러모로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실정이다.
고분 발굴로 고고학 자료가 어느 정도 확보되긴 했지만 문헌과 달리 정황증거로만 드러날 뿐이기 때문이다.
문헌의 경우, 삼국사기에는 거의 언급되지 않고 삼국유사에 가락국기와 금관성 파사석탑조에 그 족적이 약간 비칠 따름이다.
일연 스님 기록에 따르면 지금의 김해는 당시 금주(金州)라 불렸고 낯선 외방 종교인 불교는 상교(象敎)로 일컬어졌다고 한다.
그 외 김수로왕은 왕후인 허왕후가 죽은 지 25년이 지난 199년 3월 23일에 158세의 나이로 죽었다고 나와있다.
삼국유사에는 ‘구해가 왕위를 잃고 나라를 떠난 후부터 신라 문무왕 시대에 이르기까지 60년 사이에 이 묘에 제사 지내는 예를
빠뜨리기도 하였다’는 기록도 보인다.
폐허가 되다시피 퇴락한 수로왕 능에 깊은 관심을 보인 이는 신라 문무왕(文武王)이었다.
문무왕은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태종 무열왕의 아들이자 훗날 흥무대왕으로 추서 된 김유신의 조카다.
전장에서 생사를 같이하다 혼인 동맹으로 맺어진 사이, 김유신 누이동생이 무열왕의 비였기에 문무왕에게 그는 외삼촌 벌이 된다.
김유신은 신라에 복속된 가야의 왕족이었으니 문무왕에게는 수로왕 12대손인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가야의 피가 엄연히 흐른다.
부왕을 위해 수중능과 연결되는 감은사를 지은 문무왕은 어머니를 배려해 수로왕릉을 크게 성토(盛土)하고 사당을 보수하였다.
가락국의 왕손들에게는 수로왕릉 주변의 땅 30경을 왕위전(王位田)으로 지급하여 모계 조상의 제사를 다시 이어가도록 하였다.
중앙 권력을 강화해 나간 고려가 건국되자 지방 세력을 약화시키고자 수로왕릉에 내린 왕위전도 반은 반납토록 했다.
그렇게 도외시된 채 잊혀가던 묘역은 그 후 조선시대에 이르자 조선왕조실록을 비롯, 지리지와 지봉유설에 등장하게 된다.
중종 25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매해 봄, 가을로 노인들이 모여 수로왕릉에 제사를 지낸다는 내용이 나온다.
또한 그 능을 납릉(納陵)으로 불렀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선조는 당시 왜구들로부터 도굴을 당해 왕릉이 훼손되었다면 나라에서 수리해 주도록 전국에 명을 내렸다.
이에 따라 수로왕릉 역시 상석, 석단, 능묘를 갖추게 됐고 인조 25년에는 능비를 세웠다.
영조에 이어 정조도 수로왕릉의 능비를 고쳐 세우고 보호하는 데 힘을 보탰으며 향과 축문(祝文)을 내렸다.
가락국의 시조 수로왕릉 입구인 납능정문 현판 좌우에는 네 장의 특이한 장식판이 붙어있다.
새들이 깃들지 못하도록 촘촘한 철망 안에 갇힐 정도로 귀히 보호받는 수로왕릉의 상징물들이다.
거기에는 남방식 불탑과 한 쌍의 잉어, 두 개의 양궁과 두 마리의 코끼리와 연꽃 봉오리가 좌우대칭으로 그려져 있다.
불탑과 연꽃과 코끼리는 서로 불교라는 연관 고리가 잇닿아 있지만 뜬금없는 양궁 문양은 이번에 처음 들어봤다.
김해 박물관 강좌에서도 특히 코끼리 형상에 주목하라며 허왕후의 인도 내왕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주창했을 정도다.
한창 대성동 고분 발굴이 이뤄지던 90년대 학설로는 주역이 코끼리 문양이었고 양궁은 조연급으로도 언급되지 않았다.
이 땅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동물이라 두 마리의 코끼리 문양이 그만큼 큰 비중을 차지했던 당시다.
그러나 납릉 정문 외 모든 건물들이 대부분 조선조 정조 16년에 지어졌으므로 따져보면 설득력이 영 부족하긴 하다.
다만 이전부터 저 문이 서있던 걸 보수했다면 그 문양이 가야 시대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한 쌍의 잉어(雙魚文)는 허왕후가 왔다는 아요디아 국 문장인 신어이며 두 개의 양궁은 태양신의 화신이라 하였다.
신어를 받들고 아유타국에서 이 땅에 건너온 허황옥과 허보옥.
허왕후와 동행한 왕후의 오라버니인 보옥 장유화상은 불모산에 토굴을 짓고 장유사를 일으켰다.
수로왕이 둔 열 명의 왕자 가운데 큰아들은 거둥왕으로 등극, 둘째와 셋째 아들은 허 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나머지 일곱 왕자는 불교에 귀의하여 가야 불교를 정착시켰으며 모두가 하동 칠불사에서 성불하였다고 전해진다.
장유사는 우리나라 불교의 남방 전래설을 입증하는 사찰이며 신어산이 바로 이웃에 있다.
다음에 하루 날 잡아 김해로 일찌감치 나서서 장유사도 가보고 대성동고분박물관도 들러봐야겠다.
그때쯤이면 낙동강변 억새꽃 무리 져 새하얗게 나부끼고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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