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성씨가 뭬요

by 무량화

오후 늦게 우체국에 다녀왔다.

아들이 보낸 소포 하나가 종무소식이라서였다.

한국에서 오는 우편물은 항공편 익스프레스를 이용하면 대개 5일 정도 걸린다.

통상 중량이 나가는 책을 부칠 때는 한 달 너머 걸리는 배편을 이용하게 된다.

중요한 물건이나 소소한 부피의 물품들을 급히 보내게 될 경우에는 항공편을 택한다.

아들이 연달아 두 개의 소포를 부쳤다는데 먼저 보낸 서류와 홍삼, 채소 씨앗을 넣었다는 소포가 오질 않는 거였다.

부치고 나서 생각난 것이 있어 이튿날 다시 약품과 책 등을 동봉해 보냈다는데 나중에 보낸 건 지난 목요일에 받았다.

올 때 되면 오겠지, 번잡스럽게 한국에 연락하는 등 수선 피우고 싶지 않아 좀 늦나 보다 생각하고 느긋이 기다리기로 했다.

연휴가 지나고 아침나절, 우편함에 편지봉투는 꽂혀있건만 여전히 먼저 보낸 소포가 오지 않기에 우체국에 가서 직접 찾아보기로 하였다.

우선 아들이 부쳐온 소포 박스를 챙긴 다음 아이디카드인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우체국에 가 줄을 섰다.

차례가 왔다.

발신자 수신자가 명기된 빈 박스의 주소지를 내보이며 동일인이 이것보다 먼저 부친 소포인데 아직 못 받았노라 했다.

늦게 보낸 이 박스는 도착했는데 그보다 먼저 보낸 하나가 오늘까지도 안 왔으니 찾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창구 직원이 대조를 위해 그 박스 통을 받아 들고는 카운터 뒤 소포 보관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야무지게 포장된 묵직한 박스 하나를 들고 나온다.

같은 필적으로 쓴 박 아무개가 발신인인 소포 꾸러미.

틀림없는 우리 소포다.

배달사고가 도중에 왜 생겼는지 따박따박 따질 실력도 못되지만 일단 소포를 쉽게 찾은 것만으로 기분이 좋았다.

직원은 사인을 하라면서 서류종이를 내밀더니 동시에 내 아이디카드를 요구했다.

주소는 맞지만 라스트 네임이 틀리니 와이? 의아한 눈으로 되묻는다.

아들은 박 씨, 나는 구 씨다.

미국식 사고로는 당연히 라스트 네임이 동일해야 하는데 다르므로 이상스럴 밖에.

애당초 영주권이나 시민권 신청 시에 미국식으로 남편 성을 따를 생각이 없었으니 응당 원래의 내 성 그대로를 기재했다.

뭐 중뿔나게 잘나서도 아니다.

친정이 내세울 만한 명문가의 특별한 가문도 아닌 장삼이사의 하나일 뿐이니까.

그렇다고 삐딱해서도 아니며 억하심정으로 고집부린 것도 아니다.

단지 그냥 그러기가 싫었던 것이다.

육십 년 이상을 써온 엄연한 본래의 성을 놔두고 미국 통례에 준하려고 가로 늦게 내 성까지 버려?

내키지 않았다.

정 어쩔 수 없다면 모르지만 자유 선택사항인데도 무작정 서양식 관습을 따를 이유가 뭬야?

후에 생각해 보니 바꾸지 않기를 얼마나 잘했는지 두고두고 정말 최상의 결정이었어! 자신에게 칭찬도 해준다.

만일 남편 성을 따라 박, 을 붙였다면 전체 이름을 부를 때 어감이 아주 코믹하니 어찌나 바보스러운지... ㅎ

과거와 달리 미국도 본래의 성을 그대로 유지하든, 남편 성으로 바꾸든 각 개인의 선택 몫으로 남겨두었다.

근자 들어서도 워낙 오랫동안에 걸쳐 고착된 관습이라서인지 거개가 처녀 때 성을 자연스럽게들 버린다.

일찍부터 여권신장에 페미니즘을 꽃피운 이 나라, 그 점 분명 선봉에 선 선진국이다.

그럼에도 지금껏 여전히 결혼과 동시에 여자가 남편 성 따르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똑똑하고 그 잘난 힐러리 다이앤 로댐도 결혼하면서 힐러리 클린턴이 됐다.

아무 불평 없이 자연스럽게 거의가 당연지사로 여기며 집단 세뇌된 듯 잘도 순응하는 관행 또는 습성으로 정착된 관습법.

약탈혼이나 매매혼이 성행하던 고대라면 모르지만 1 대 1 인격체가 만나는 현대에도 엄연히 적용되는 문화적 관습이다.

미국이나 일본만이 그런 게 아니라 심지어 영국에선 아직도 90%가 결혼하면서 성을 바꾼다고 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 중 하나이자 지극히 개인적 단견이나 너무 웃기는 외국 관습이다. 2013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