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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마당이 있는 그 집
by
무량화
Sep 1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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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란 하늘을 보고 출발했는데 LA에 닿고도 한참토록 스모그가 잔뜩 낀 하늘은 우중충하니 깨어날 줄 몰랐다.
약간의 한기마저 느껴지는 날씨라 유니온 역에서 곧장 직진, 목적지는 역사와 아주
가까웠다.
부겐벨리아 화사히 피어있는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보얀 흙마당이 반겼다.
잔디 뜨락만 보아오다가 맨흙으로 다져진 마당이야말로 얼마나 오랜만의 해후인가.
로스앤젤레스 주립 사적 공원(El Pueblo de Los Angeles Historic Monument) 내에 있는 아빌라 어도비(Avila Adobe)는 LA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자 멕시코 정서를 짙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로스앤젤레스 발상지로서 의미 있는 사적지 안에 있는 아빌라 어도비.
어도비는 원래 우리나라 토담집이 그러하듯 진흙에 짚 등을 섞어 햇빛에 말린 벽돌로 지은 집을 뜻하는데 쌓아 올린 벽돌에 회반죽을 발라 마무리한 독특한 건축양식이다.
나무가 부족한 지역에서 주로 이용하며 건축법이 쉬워서 일찍부터 지중해 동쪽의 건조한 지역과 북부 아프리카와 스페인 남부 그리고 중남미 페루 멕시코 지역에서 이 공법을 많이 썼다.
이 집은 1794년 초기 거주자로 농장주이자 무역상이었으며 한때 시장이었던 멕시코 시나로아 출신인 돈 프란체스코 아빌라 가족이 거주했던 집으로 1818년에 지어졌다.
아빌라 어도비에 들어서자 초입에 어도비풍으로 만든 화덕이 회칠을 한 깔끔한 모습으로 맞아준다.
정갈스레 빗질된 마당은 마치 외갓집 안마당같이 아늑하고도 정겹다.
마당 가장자리에 벤자민이 한껏 푸르고 큼직한 키의 선인장 화단 규모 너른가 하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오렌지나무 열매가 익어가는 중이다.
포도시렁 길게 이어진 회랑 아래는 요리를 하던 야외 주방이었던 공간이고 ㅁ자 형으로 설계된 오밀조밀한 배치구조를 지닌 집은 처음엔 방이 열세 개나 있었다고 한다.
약간 어둑신하면서도 고전스러운 스페인풍으로 장식된 부부침실, 어린이방, 응접실, 서재 등이 당시 상류층 생활상을 보여준다.
멕시코 전쟁 시에는 LA에 진주한 미 스탁턴 사령관이 아빌라 어도비를 임시 사령부 건물로 임시 사용됐다.
아도비 일가는 1868년까지 계속 이곳에서 살았으나 1870년에는 지진 피해를 입어 LA 시로부터 주거 불가 판정을 받기도 했다.
한참 후인 1926년 크리스틴 스털링은 푸에블로 플라자 주변의 황폐화를 안타까이 여기고 당시 LA 타임스의 발행인이었던 해리 챈들러 등 지인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아빌라 어도비의 재건과 그 주변의 정화작업을 함께 펼쳤다.
이후 그녀는 아도비가의 사위인 림포 가족의 후손으로부터 아빌라 어도비를 임대했다가
후에 지인들의 후원으로 이 집을 사들이게 된다.
마침내 1930년 스털링의 지향대로 재건된 올베라 거리는 멕시코 문화와 전통을 보여주는 주요 관광지였으나 실마 지진 피해로 다시금 폐쇄되었다.
1977년 아빌라 어도비는 오랜 보수기간을 마치고 LA의 주요 관광지로 거듭나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당귀에 서서 담너머로 시가지를 내다보니 저만치 유니언 역사가 건너다 보인다.
게으른 막내시뉘처럼 그제서야 하늘빛이 슬슬 깨어나 화창해지기 시작했다.
해 눈부셨으나 별로 뜨겁지 않은 볕이라 걷기에도 마침맞았다.
올여름 지구촌 곳곳의 폭염은 위세가 아주 대단했다.
거기다 100도 넘는 날이 예년에 비해 곱절은 되어 더 여름 나기가 힘겨웠다.
기세등등하던 더위도 입추 지나며 차츰 결기 꺾여 조석으로 선선한 기운이 돌며 피부에 닿는 느낌이 달라졌다.
대지를 불태울 듯 뜨겁게 기승부리던 햇살 점차 바래지면서 슬그머니 여려지고 순해졌다.
날씨가 견딜만하니 자꾸 건수를 만들어 밖으로 나가게 된다.
이제 곧 가을 기운이 돌 것이다. 2015
부겐벨리아 꽃 화사하고 후추나무 휘늘어진 아빌라 어도비의 원래 도로변 입구인 현관
아빌라 어도비의 역사가 양각된 입구의 현판
둥그렇게 양초를 켜는 샨데리아에 앤틱풍 가구가 채워진 패밀리룸
정착 초기 모든 요리는 밖의 화덕에서 만들어졌다고
북적대진 않지만 끊임없이 들고나는 탐방객들
부엌 기명들 중엔 우리나라처럼 흥부네 통박도 흔히 눈에 띈다
아빌라 어도비 뜰에서 건너다본 유니언 역사
그랜드피아노는 1881년 산인 스타인웨이(Steinway)
사진과 함께 아빌라 어도비의 역사가 설명된 액자
레이스가 깔린 테이블은 후처 엔카르나시온이 1822년 결혼 선물로 받은 것
실내 부엌에 화덕이 만들어진 것은 1850년대인 한참 후라고 한다
곧 벌어질 듯 영근 석류와 포도주용 자잘한 포도송이들
과거 우리식 시렁처럼 두 단으로 벽에 올린 선반
어린 손주 손을 잡고 어도비
뜰을 산책 중인 멕시컨 할아버지
실내용 무쇠난로는 조개탄이 보급된 후대에 사용된 듯
첫 영성체를 한 듯한 차림의 자녀들을 데리고 어도비 견학을 마친 가장 표정이 흐뭇
나무로 만든 목간통은 우리네 사극에서도 비슷한 형태였다
안내문에 나온 어도비의 가장 정확한 역사
10 Olvera St.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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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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