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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단테 걸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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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화
Sep 1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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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 Angeles Union Station은 로스앤젤레스의 메인 기차역이다.
유동인구가 많아 항상 북적대는 유니언 역이 문을 연 것은 1939년 5월이었다.
스패니시 스타일의 고전 양식으로 높직하면서도 정갈하게 지었는데
이는 새로운 이주민들을 위해 의도적으로 선교원과 닮은 꼴 건물이 되도록 설계를 했다고 한다.
타일로 품격 있게 마감한 벽과 반들거리는 대리석 바닥재의 고풍스러운 역사(驛舍)와
옆쪽 회랑으로 이어지는 정원의 조경이 근사해 여행객들의 대기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해 준다.
암트랙과 도시권 열차인 Metrolink, 지하철, 시내버스도 유니언 역을 거점으로 각지와 연결된다.
심지어 먼 타 도시로 가는 메가버스도 역 바로 앞에서 탄다.
그런저런 이유로 더러 유니언 역에 가게 된다.
암트랙은 북으로 시애틀과 연결되고 시카고 댈러스는 물론 대륙을 횡단한다는데 몇 날 며칠 달려보고도 싶어 진다.
LA는 아름다운 비치와 유수의 미술관도 다수 품은 데다, 엔터테인먼트 업계 아이콘들의 주요 활동 무대다.
해서 유니언 역은 초창기 영화의 촬영지로도 명성이 높아 올드팬들에게는 낯익은 장소다.
2021년 코비드 19로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역사 안의 대형 홀에서 열리기도 했다.
멋진 세퍼트의 충실한 집사인 홈리스
1781년 열두 가구의 이주민이 집단 촌락을 형성하며 비롯된 LA는 점차적으로 인구가 증가, 오늘날에는 캘리포니아에서 제일 큰 도시가 되었으며 미국 전체에서는 두 번째 대도시가 되었다.
로스앤젤레스가 깃든 캘리포니아주의 이름은 1535년 탐험가 에르난도 코르테스가 처음 사용했으며 '뜨거운 화로'를 뜻하는 스페인어 '칼리엔테 포르날라'의 합성어라는 설이 유력하다.
1500년 쓰인 스페인 소설에서 지상 낙원 부근에 있는 섬으로 캘리포니아란 이름이 언급됐다는 주장도 있다.
1848년 북가주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북쪽에서 금광이 발견되며 캘리포니아는 골드러시로 비약적 발전을 하게 됐다.
캘리포니아주는 1848년 미국과 멕시코 전쟁 이후 멕시코에서 미국 땅으로 귀속, 1850년에 미국의 서른한 번째 주로 합병됐으나 대부분의 지명은 계속 스페인어로 통용되고 있다.
Old Plaza Church
유니언 역사 길 건너에 있는 엘 푸에블로 사적 공원(El Pueblo de LA Historic Monument).
LA의 발상지가 된 터를 기리고자 1953년, 주립 역사 보존 지역으로 지정된 장소이다.
홀로 뉴저지에서 캘리포니아로 공부하러 와 여기 정착한 딸.
딸내미를 보러 여름휴가 때 LA 왔을 적이다.
인생유전, 부산에서 딸을 데리고 박물관 탐방을 다녔는데 어느새 세월이 겹치고 겹쳐 이제는 딸이 앞장서 엄마 좋아하는 역사 유적지 투어에 나섰다.
맨 처음 구경시켜 준 곳이 올베라였고 게서 머지않은 샌가브리엘 미션으로 안내했다.
그렇게 캘리포니아만의 보석인 미션이라는 곳과 최초로 면을 트게 되었다.
캘리포니아 미션의 아버지 세라신부와 멕시컨
멕시코의 정취가 가득한 올베라 스트리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
여기야말로 어디까지나 안단테, 한나절 느릿한 걸음으로 천천히 여유 있게 둘러볼만한 거리다.
주변에는 1822년에 세워진 올드 플라자 교회(Old Plaza Church)를 비롯, LA 최초의 소방서인 Firehouse number one이 있다.
최초의 호텔인 피코 하우스(Pico House) 등 LA 초기 건물들이 다수 보존되어 있는 역사적 명소이다.
반면 과거와 현대가 교차하는 그 인근은 도회의 명암이 엇갈리기도 하는 곳,
건너편 공원에는 나무그늘마다 홈리스들이 누더기를 덮어쓰고 대낮임에도 이리저리 누워있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부겐베리아꽃만큼이나 정열 넘실대는 활기와 붉은 삶의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그 거리.
중심가에서 광장 북쪽으로 뻗어 있는 올베라 스트리트(Olvera St.)에는 보도 양쪽을 따라 상가가 형성돼 있다.
색색의 도자기와 가죽제품, 화려한 서라피(숄) 등 멕시코 토산품을 파는 가게며 라이브 음악이 있는 멕시칸 레스토랑이 수두룩.
올베라에 갈적마다 은제 트럼펫 연주가 이끄는 La colonqrina cafe에 들려 대접만 한 글라스에
찰랑대는
미색 말가리타 한 잔에다 바바코아 데 보라고란 이름의 양꼬치구이 곁들이곤 했다. ^^
특히 1818년에 지어져 LA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라는 아빌라 어도비(Avila Adobe)도 거기 자리하고 있다.
이 일대가 세태 따라 변두리로 밀리며 낙후되어 가자 이를 살리고자 노력했던 시민운동가 크리스틴 스털링의 노력으로
쇠락해 가던 올베라 스트리트는 그렇게 1930년 멕시칸 마켓으로 거듭났다.
오래 전인 1771년 프란치스코 회 후니 페로 세라 신부는 인근 지역에 미션 샌 가브리엘을 건립하고 원주민들과 공동체 생활을 했다.
LA뿐 아니라 캘리포니아의 거점 도시인 샌프란시스코와 샌디에고, 산호세 등도 모두 이처럼 미션을 중심으로 발달한 도시.
초등학교 4학년 교과과정에도 나올 정도의 역사적인 주요 장소로 미국사에 자리매김돼 있는 캘리포니아 미션들이다.
암튼, 이보다 한참 뒤인 1781년 당시 샌디에이고 요새와 산타바바라 요새에 주둔 중인 스페인 군대의 식량조달을 위해
농장을 운영할 전문 농부들을 모집하였는데 지금의 멕시코 Sonora 지역에서 열 두 가구가 이에 응하였다.
그들은 한여름 사막을 건너며 천신만고 끝에 그해 9월 4일 오늘날의 올드타운인 Olvera 지역에 도착했다.
역경에 굴복하지 않은 그들 마흔네 명은 로스 포브레도레스로 알려진 정착촌을 세웠고,
멕시코 정착민들은 이곳을 '엘 푸에블로 데 누에스트라 세뇨라 라 레이나 데 로스 앙헬레스 데 포르시운쿨라'로 불렀다.
영어로 '로스앤젤레스 강에서 온 천사의 여왕 성모 마리아의 마을' 뜻으로 이후 천사의 도시라는 낭만적인 이름을 갖게 됐다.
농부들을 인솔한 호위관 중 Francisco Xavier Sepulveda 대위가 당시 일정과 생활을 상세히 기록으로 남겨놓았기에
정착민들의 일상이 후대로 전해지는 귀중한 사료가 되었다.
그리하여 세플베다라는 이름은 도로명으로 남겨져 지금에 이르렀고, LA 타운인 네돈도는 그의 부인 성에서 땄다고.
역사는 이처럼 기록하는 자의 편이 된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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