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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가대교 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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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화
Sep 1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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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취향과 관심사가 다르듯 여행 시 향하는 시선 역시 각자 다르기 마련이다.
몇 년 전 한국에 나갔다가 광안대교의 야경에 반했던 나와 달리, 한국을 다녀온 요셉은 거가대교가 참으로 굉장하더라고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셉은 그쪽으로 낚시를 워낙 많이 다녀 물길, 물때를 주르름 꿰고 있을 만큼 훤하다.
깊은 수심과 난바다 파도 드센 거기에 기나긴 다리 세우고 바닷속 고속도로를 열었다는 게 생각사록 너무나도 경이롭고 장할 수밖에.
부산 살 때 주말만 되면 바다낚시를 가던 아버지의 행장을 떠올린 아들이 고국 방문한 아버지를 모시고 남해 구경을 두루 다녔던 모양이다.
오래전, 새 천년이 밝아오는 해맞이를 우리 가족은 가덕도에서 가졌다.
겨울 낚시 가는 요셉을 따라간 우리는 섬 물가에서 파래, 굴, 홍합을 땄고 남편은 우럭 잡는다고 낚싯배를 탔다.
벌써 그때 거가대교 기초 정지작업이 부산 강서 쪽부터 시행되는 중이었다.
가덕도 맞은편 뭍의 산허리 깎는 발파작업은 신정 연휴로 멈췄지만 이미 인근은 황토 속살 무람없이 드러나 있었다.
육로 돌아돌아 가거나 페리호가 이어주던 거제도 길, 앞으론 가덕도에서 거제까지 다리가 놓인다는 얘기를 들었어도 언뜻
감이 오지 않았다.
섬과 섬이 연꽃처럼 앉아있는 바다를 눈 가늘게 뜨고 궁그려 봐도 도무지 막연해 짐작조차 어렵던 난공사만 같았다.
우리가 미국 이민살이로 시난고난하는 사이 그새 십몇 년이 흘렀고, 새 천년에 본 가덕도 기초공사 자리는 딴 나라 풍경같이
변한 채 2010년 진작에 거가대교라는 웅자를 드러냈더라는 것.
한국의 다른 어떤 것보다 괄목할 만한 거가대교더라는 요셉의 말처럼 실제로 거가대교는 한국 토목공사 사상 세계기록을
다섯 개나 세운 쾌거를 이뤘다.
바다 위에 그 긴 다리를 세운 걸 보니 과연 훌륭한 한국이더라, 정말 놀라운 기술력이더라, 연신 고개 주억이는 요셉.
통행료가 아깝기는커녕 더 붙여주고 왔으면 좋겠더라고까지 할 정도로 장관이었다는 거가대교.
부산서 거제도까지 40분밖에 안 걸리더라며 하도 감탄사를 연발하길래 대체 어떤 규모인가 궁금해 동영상부터 찾아봤다.
잇따라 거가대교에 관한 정보도 들춰봤더니 건설 과정 다큐 영상처럼 진짜 엄청스러웠다.
감동적인 장면이 무수한 동영상을 보며 여러 번 손뼉을 치게 한, 시공사 대우건설 관계자의 노고도 대단했었고.
처음 다리가 개통되고 몇 년 동안은 한국의 인기 초절정이었던 관광상품이기도 했었다는 거가대교.
구월임에도 무더운 날씨 계속되기에 짙푸른 바다로 여행 떠난다 치고 거가대교로 향했다.
섬 점점이 뜬 남해 바다를 건너볼 참이라 기대에 들뜬 채 일찍 일어나 하늘을 보니 기상조건은 별로였다.
해운대를 벗어날 때까지도 잔뜩 구름 낀 날씨였다.
녹산 지구 산업단지를 지날 무렵부터 고맙게도 하늘이 깨어나 주었다.
가덕대교에 오르니 오른쪽으로 규모 굉장한 부산 신항만이 푸르스름한 윤곽으로 밀려갔다.
캘리의 롱비치항 무색하게 반듯한 부두에 무수히 쌓여있는 컨테이너와 열 지어 늘어선 크레인에 입이 벌어졌다.
어마어마하게 쌓인 수출입 물동량으로 미루어봐도 경제대국의 현주소를 실감할 수 있었다.
거가대교 휴게실에 들러 멀고 가까운 주변 경관을 두루 조망해 본 다음 안내문을 주르름 살펴보았다.
2010년 12월 13일에 개통된 거가대교(巨加大橋)는 부산 강서구 가덕도에서 죽도와 저도를 거쳐 거제시 장목면을 잇는 다리로 해저터널 구간도 포함되었다고.
부산 <ㅡ> 거제 간 두 시간 반 넘는 거리를 50분으로 단축시키며 두 도시를 일일생활권으로 묶어주었음은 물론
물류비용을 대폭 절감시킬 수 있게 해 준 데다 관광 인프라를 조성시켜 주었단다.
드디어 대교를 건너보기 위해 먼저 가덕해저터널로 빨려 들어갔다.
불빛 휘황한 해저터널을 잠깐만에 벗어나 지상으로 올라오자 날렵하니 새하얀 사장교가 매끄러이 이어졌다.
거가대교 공사와 관련된 내용은 전번에 동영상을 통해 훑어봤지만 다리를 지나며 거듭거듭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내 짧은 안목과 식견으로서는 감도 잡히지 않는 일, 솔직히 우주선 도킹만큼이나 신기한 노릇 아닌가.
토목공사 자체에 문외한이기도 하지만 수심 깊은 바다 위에 이리 긴 다리, 그것도 거친 태풍이나 자연재해를 견딜 수 있는 정말 대단한 공사를 완공시켰으니 놀라울 따름.
주말 덕인지 주말이라서인지 대교를 오가는 통행량이 예상외로 적어 차는 거칠 것이 없었다.
대교를 독점하다시피 한 채 양옆으로 푸른 바다 거느리고 구름 위를 내달리듯 대교를 씽씽 경쾌하게 달렸다.
언젠가 태국에서 페러세일링을 탔던 그 기분처럼 자유로이 하늘을 유영하는 듯 시원스러웠다
쾌적하게 뚫린 이 길처럼 내 앞을 막는 그 어떤 난관이나 장애도 다 물렀거라~ 외치고도 싶었다.
하긴 나이가 있으니 그날이 그날같이 평온한 일상 속에 기도가 일과, 모든 것 오로지 하늘뜻에 맡기고 살아가고 있는 중.
푸른 숲 우거진 제법 큰 섬인 죽도를 터널로 통과한 뒤 대통령 별장지로 유명한 저도 역시 터널로 연결돼 있어 금방 통과했다.
이번에는 교각 형태가 다른 다리에 올라 경쾌한 기분으로 바닷길을 달리자니 콧노래 절로 나왔다.
하늘빛 쾌청하고 바다는 짙푸르고 해풍 부드럽고 햇살은 투명하고...
천국은 만들기 나름, 느끼기 나름, 오감만족인 이 순간이 바로 천국이지 천국이 따로 있겠나.
그러나 천국의 시간은 너무도 빠르게 흘러가버리고 말았다.
50분이 삽시간에 지나가 어느새 차는 거제에 이르러 잔잔한 바다에 동동 뜬 자그마한 섬 풍경을 눈앞에 부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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