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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 묵직한 성묘길
by
무량화
Sep 1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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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략
제대로 길도 나있지 않은 산중.
잡초가 키대로 자라 내 어깨를 웃돈다.
서걱서걱 밟히고 스치는 마른 잎새 소리, 마른풀 내음.
이리저리 쓰러져 누운 잡풀더미를 다져가며 앞장서 오르는 당숙 발길만 따른다.
이나마 길도 며칠 전 숙부님이 대강 낫질로 틔워 놓았기에 생긴 것이라 한다.
산 중턱 조금 지나니 석축이 야무치게 쌓여있고 그 위로 두 개의 봉분이 보였다.
고조부님 양위를 모신 유택이다.
사철 그 자리에서 산 아랫마을 식솔들 늘 굽어보셨을 두 분.
잔디가 고르게 덮여있는 산소에 오후 양광이 금빛으로 내려앉았다.
그 흔한 빗돌 하나 지키지 않는 산소.
들꽃이 미소로 뫼시는가, 산새가 노래로 뫼시는가.
상석 역시 없다 보니 갖고 온 백지 펴고 음식을 진설했다.
그다음 위 어른부터 순서대로 차례차례 예를 올렸다.
솔바람조차 삼가 소리를 낮춘 듯 고요함 속에 술 따루는 음향만이 여울물 소리로 흐르는 지금.
경건한 마음으로 마른 잔디 위에 엎드리니 왠지 목젖에 와닿는 뜨거움.
긴 긴 인연의 끈을 넌지시 쥐여 주신 두 분은 바위 같은 침묵으로 한유(閑裕)의 세월을 엮고 계시고.
그러면서 음양으로 후대들 보살피고 갈무리 시는 달빛 같은 정(情) 있으시리라.
이윽고 찬찬히 산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소나무와 관목 자욱한 저 아래로 시야가 탁 트여 있었다.
여태껏 그저 산 오르기에만 급급하느라 뒤돌아 보지 않았기에 몰랐던가. 전망이 아주 일품이다.
특히 한눈에 조망되는 고향마을, 그리고 저 멀리 아슴하나마 대구 시내까지도 일망지하에 든다.
꽤 높직함에도 산세 가파르지 않아 안온하니 평화롭다.
한실 골짜기에서 점점 퍼져나가는 부채꼴 모형의 문중 마을이 바라뵈는 이 자리.
아이들 뛰노는 모습이 조그맣게 잡히는가 하면 논둑길이 훤히 내려다보이고
종가 살붙이들이 오순도순 지붕 맞댄 정겨운 마을이 한눈에 든다.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예삿눈으로 봐도 참 아늑하니 좋은 장소다.
분명 눈 밝은 지관의 안목이 택한 곳이었지 싶다.
옆 산자락의 조부모님 선영이 다음 차례 모실 순서로 우리를 기다리기에 서서히 행장을 챙긴다.
비록 부귀공명을 누린 명문 세도가의 내력도 없고 이름난 족벌도 아닌 평범한 이 집안.
그저 소박하고 부지런한 농민의 후손일 뿐이지만 저 여럿 아이들 영롱한 눈빛 속에, 건강한 웃음 속에 이 집안의 빛나는 미래가 잠재되어 있을 것만 같다.
아직은 집안에서 굵은 재목이 나온 바 없으나
이 산세 입어 가문 빛낼 인재가 우리 대(代)에선 반드시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마저 인다.
해서 모처럼의 성묘길은 한결 의미로웠고 그 주변 풍경들 유독 정겨이 안겨왔다. -1984-
대구 매일신문 <주부 수상> 란에 실린 위 글을 쓴 지 사십 년이 돼간다.
세월은 얼마나 무상심하게 흘러갔는가.
지난해 추석 전날 성묘를 다녀왔다.
하루 만에 대구와 성주를 거쳐 아산까지 다녀오려니 구월 해는 짧기만 하였다.
다행히 고속도로가 전혀 막히지 않아 생각보다 원활하게 소통이 됐기에 그나마 가능했다.
예전 같은 도로 사정이라면 스트레스 꽤나 받았을 텐데, 전국토 어디나 사통팔달로 도로가 잘 뚫린 덕이었다.
말끔하게 벌초가 된 산소 앞에 준비해 간 제수를 진설한 다음 예를 올리고 잠시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대부분 풀숲 우거진 산중이라 시가댁 묘소 주변에 모기가 하도 설쳐 허둥지둥 상을 거두어 돌아오기 바빴다.
아산 천주교 묘원을 끝으로 저물녘 귀로에 올랐으나 식당마다 문이 닫혀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가 없었다.
온종일 운전을 한 데다 시장기까지 심했을 아들, 무척이나 고단한 하루였을 터다.
나야 제물로 올렸던 송편이며 유과라도 먹었지만 요새 젊은이들은 떡 종류 즐기지 않는 편이다.
오며 가며 아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대구까지 가는 동안은 경부고속도로변 좌우의 가을 등산지에 대한 화제 이어갔다.
아산에서 내려오면서는 자연스럽게, 언제일지 모르나 분명코 다가올 내 사후 절차를 부촉하게 되었다.
나이가 있으므로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들에게 처음 꺼내본 이 주제.
물론 아직은 아들 외의 그 누구에게도,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여 사후에 대한 문제를 두고 본인 의사를 밝혀본 바 없다.
어스름 황혼녘, 땅거미 져 박명의 노을빛으로 사방 고즈넉해진 분위기 탓인지 엄마 유택을 둘러본 때문이지는 모르겠다.
훗날 어찌어찌 해달라는 당부를 이처럼 스스럼없이 하게 되는 걸 보면 그래서 고래로 아들 타령을 했던 걸까.
이렇듯 우연찮게 기회가 생겨 내 뜻을 분명 전해두었으니 하시라도 마지막 순간을 맞게 된들 걸릴 게 무어랴.
미뤄뒀던 숙제를 마친 듯 안도감이 들면서 마음 아주 홀가분해졌다.
순리대로 살다가 이 세상 인연 다하는 그날, 천명에 따라 조용히 사라질 수 있기를.
주삿바늘조차 무서워할 만큼 아픈 걸 참아 내지 못하는 겁보인지라 그저 잠자듯 순하게 귀천하는 고종명의 축복 허락되기를.
기도 속에서 내밀히 염하는 소망이 그러하듯 마지막까지 일지 기록할 수 있기를, 두 발로 걷다가 갈 수 있기를, 하늘에 감히 바라는 염원 부디 이루어 지기를.
딸내미가 한국에 있는 가족과의 소통 창구로 사용하는 카톡방 문 앞에 걸어둔 고사성어가 있다.
默而成之다.
이 도리 하나만은 꼭 깨우치고 싶으나 오늘도 일상사 미주알고주알 이처럼 떠벌리고 사는 자신.
아흐~ 안타깝게도 세상 소풍 마치기 전까지 터득하기엔 그 경지 내게 아득하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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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 지나니 만사 여유작작, 편안해서 좋다. 걷고 또 걸어다니며 바람 스치고 풀꽃 만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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