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전설적인 신비와 불가사의를 포함하는 피사의 사탑은 초록빛 고른 잔디밭 위에 선연한 백색 자태로 기우뚱 서 있었소. 고개를 갸웃한 양 기울어진 각도가 눈에 띄게 드러나 불안스러운 사탑. 철책에 등 기대고 올려다보라는 안내인의 말에 따랐다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더랬소. 탑이 영축 없이 내게로 쓰러지는 참이었으니 놀랄 밖에요. 쪽빛 하늘에 무리 지은 새털구름의 흐름에 잠깐 착시 현상을 일으켰던 거지요. 그 순간 어지럼증이 차를 타고도 이어져 오후 내내 멀미 나는 고약스러운 여행길이 되었소.
그렇게 피사를 떠나 중부 이탈리아의 황량한 산야를 몇 시간 달렸소. 피렌체에 도착한 것은 석양 무렵. 15세기 전후 르네상스의 꽃을 활짝 피운 예술의 도시 피렌체는 낙조 비낀 아르노 강을 따라 옛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소. 그 분위기는 저물녘의 애조 섞인 감상을 부추기기에 아주 적격이었소. 낮게 가라앉은 고적감이 나그네의 마음을 춥게 해 집 떠난 지 오랜만에 가족 생각이 모락모락 일더이다. 철저히 혼자이고 싶었으며 오로지 나 자신과 마주 서고 싶어 떠난 여행인데 말이지요. 결국 어쩔 수 없이 얽혀 사는 사회적 동물임을 증거 하듯 편안하고 따뜻한 관계의 고리가 그리워지는 거였소.
이튿날 아침. 높직한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조망해 본 피렌체는 담담한 색조로 가라앉아 있었소. 엷은 황톳빛 지붕을 인 고만고만한 집들이 신화 속에 잠든 듯 고요했소이다. 그 정밀을 깨며 우뚝 도드라진 두오모 성당, 베키오궁, 노벨라 성당 등이 한눈에 들었소. 충청도의 지형만큼이나 수더분한 산세 두르고 느긋이 누워 아득한 전성기의 꿈에 잠겨있는 피렌체. 언뜻 백제의 고도 공주가 떠올랐소. 옛 영화가 슬슬 망각 속으로 묻혀 버리는 도시. 관광객의 발길이 아니면 그냥 저 혼자 삭아 내려 흔적 없이 사라질 것만 같은 우려조차 들더이다. 르네상스 무렵 그리도 번성했던 시절은 가고 영고성쇠, 이제는 황혼기에 이른 피렌체.
긴 생각에 잠길 여가 없이 일정에 맞추느라 다시 발길 바쁜 여행객이 되어 광장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소. 이 도시에 할애된 오전 시간은 우피치 미술관에 집중 투자하기로 작정했기에, 하나라도 더 눈에 담으려면 빨리 미술관에 당도하는 일뿐이었소. 반궁형 다리 위에 흰 건물과 같은 작은 아치가 이어진 피렌체의 명소 베키오다리를 건너 한달음에 우피치에 이르니, 벌써 줄을 선 사람들의 끝이 보이지 않았소. 입구 매표소에서 구불구불 이어진 줄이 미술관 거대한 건물을 에워싸고도 골목길 한참까지 뻗어 있었소. 얼마를 기다려야 할지 예측할 수 없어 난감하기도 했지만, 일단 줄의 끝에 다가섰소. 인파에 압도당한 반면 괜한 오기도 발동했던 것이오. 미술관 일부만 보더라도 들어가는 보리라 하는.
여행을 다니며 가장 아까웠던 것이 이렇듯 기다리기에 축내 버린 시간이었소. 런던 타워에서도, 베르사유에서도, 카타콤베에서도, 심지어 에펠탑 꼭대기 올라가 보려고 지루할 정도로 긴 시간을 하릴없이 줄 서기에 바치기 일쑤였소. 그러나 그동안의 시간도 활용하기 따라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소. 행선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 안내 책자를 살피며 기다리다 보면 시간은 흐르게 마련. 피곤할 적엔 눈을 감고도 있지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줄은 사라지고 입구에 닿은 자신을 발견하게 됩디다.
우피치 미술관은 르네상스의 중요한 작품을 수집, 소장함에 있어 질과 양이 세계 최대라는 곳이었소. 다 둘러보려면 족히 사나흘 걸린다는 규모 큰 미술관의 하나지요. 여기에 초기 르네상스의 최고 걸작인 보티첼리의 ‘봄’과 ‘비너스의 탄생’이 소장돼 있다 하오. 그 외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의 친정화는 물론 아폴로, 아그리파 등 그리스 제신과 영웅들의 대리석 조각도 무진장이라 하오. 말만 들어도 새로운 기운이 용솟음치듯 한 벅찬 감회가 이는 단어 르네상스. 중세의 긴 암흑기를 거두어 내고 새벽빛으로 다가선 문예 부흥은 신 중심의 중세 문화가 인간 중심 사상으로 바뀌게 된 예술 학문상의 대혁신 운동이라지요.
시간이 꽤 흘러갔으나 줄은 별로 앞당겨지지 않았고, 나는 차츰 초조해지기 시작했소. 원래 낙천적이고 여유만만이라는 이탈리안들은 입장시키는 것도 느릿느릿 천하태평이었소. 이미 열 시가 지난 시계만 자꾸 들여다보자니 속에서 천불이 치밀었소. 그때였소, 장중하고도 경건한 성가곡이 들린 것은. 처음에는 인근 교회에서 나는 노래로 생각했으나 아니었소. 줄지어 선 대열 한가운데에서 시작된 노래가 점차 확산,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소. 한 곡이 끝나자 박수가 길게 이어졌고 다시 오페라 곡이 유려한 화음을 이루며 울려 퍼졌소. 곧게 이어진 골목과 마주 선 건물의 회랑에 스몄다가 되울리는 합창소리는 위엄차고 화려했으며 묵직하나 환상적이었소.
번뜩이는 지휘봉도 없고 오케스트라의 반주도 없는 거리 음악회. 즉흥적으로 모여 부르는 군중들의 노래지만 오래 연습한 합창단원들처럼 풍부한 음량과 원숙한 솜씨에 사로잡히고 말았소. 물론 세계 각처에서 모인 관광객들도 섞였지만 역시 이탈리안들은 타고난 음악가라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소. 그렇게 ‘축배의 노래’에 이어 이태리 가곡과 미국 민요 ‘켄터키 옛집’까지 들었소. 새새에 내가 알지 못하는 곡도 여럿 있었소만, 좋은 음악은 내용의 이해 없이도 마냥 가슴이 아늑해지고 따스해 오지 않던가요. 세계 공통의 언어라는 음악일진대 어찌 귀로만 듣는다 할 수 있으리오. 오감으로 흡수해 들인 음의 세계에 그리 순수하게 몰입되기도 처음이고 황홀히 도취되기도 처음이었소. 지고의 선, 사람들의 눈빛에서 그때 그걸 읽었더랬소.
약속된 정오 시각에 맞추기 위해 천 리라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미술관은 대충 둘러볼 수밖에 없었소. 화창한 봄날, 숲 속에서 춤추며 즐기는 여신들의 그림인 ‘봄’과 가리비를 타고 바다에 떠오른 ‘비너스의 탄생’에 눈도장을 찍고 허둥지둥 나왔다오. 하지만, 두 명작 못지않게 인상적인 거리 음악회가 있어 우아했던 피렌체. 그날의 노랫소리는 하늘에서 시작돼 땅으로 잦아드는 느낌이었음도 덧붙여 기록해두고 싶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