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失鄕記

by 무량화

나는 개고사리입니다. 고비하고는 달라서 식용할 수 없는 나는 그저 산속에 저절로 났다가 스러지는 다년생 풀입니다. 꽃을 피울 줄 모르다 보니 내 나름대로 홀씨에 의해 번식하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교목처럼 의젓한 나무도 아니고 당귀처럼 긴히 쓰이는 약초도 아닌 한낱 보잘것없고 하찮은 식물이지요. 그러나 창조주께서 나를 만드실 땐 분명한 뜻이 담겼을 것이므로 난 내 몫의 삶에 긍지를 가지고 묵묵히 그리고 성실히 살아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꽤나 자랑스러운 우리 조상 얘길 하자면 먼 고생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석탄기로부터 페름기에 이르는 동안에 울울한 삼림을 이룰 만큼 번창하였다는 걸 보면 무척 오랜 역사를 가진 줄로 압니다. 하긴 역사란 것이 뭐 대수로운 게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사물이나 사회의 변천 및 발전된 자취로써 대부분 서로 할퀴고 짓밟은 흔적일 뿐이니까요. 어째서 역사의 유구함을 대단치 않다고 여기느냐고요? 한 예로 외계인이 알려지게 된 건 불과 얼마 안 되지만 이 시대에 그가 차지하는 비중과 오랜 역사의 내 존재와는 감히 비교조차 안 되는 걸 봐도 그렇지요. 하지만 우리 조상들이 의미 없이 사라져 간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현재 요긴히 사용되고 있는 석탄이란 고생대 양치식물의 화석이니까요.


얼마 전 타의에 의해 내 생활의 궤도가 어긋나던 날 이후. 내 마음엔 끊임없는 혼돈과 갈등의 파도가 격랑 되어 출렁였습니다. 일찍이 내 삶 자체를 이처럼 절망해 보고 좌절해 본 적은 결코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가벼운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을 만큼 기분 좋은 날입니다. 밤이슬이 바위틈 약수처럼 달고 시원합니다. 희미한 달무리에 비해 제각기 다른 빛으로 반짝이는 뭇 별들이 보석과도 같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보는 다정한 얼굴들입니다. 옷자락을 살며시 흔들며 바람이 스쳐갑니다. 향긋한 내음이 실려오는 듯합니다. 새콤하면서도 푸르고 싱그러운 바람결입니다. 아름다운 꿈이라도 꿀 것 같은 밤이 깊어갑니다.



풀벌레 소리, 계곡의 물소리는 없지만 그래도 갇혀 지내던 거실에 비하면 견딜만합니다. 아니 이 정도만 되어도 비록 고향을 떠났을지언정 살 만할 것 같습니다.

고즈넉한 정적 속에서 하늘을 보니 지난날들이 생각켜집니다. 다시 가볼 수 없는 고향의 모든 것들이 아스라한 추억이듯 그립습니다. 눈부시게 푸른 하늘 아래 깎아지른 산봉우리. 산자수려한 가야산 한 기슭이 내 고향이었습니다. 기암괴석이 시립 하듯 서있고 그 언저리에 구름 한자락이 머물기라도 하면 영봉의 신비가 더욱 돋보였습니다. 청청한 소나무와 갖가지 잡목이 어우러져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색다른 자태로 장관 이루며 무량겁을 의연히 침묵하던 산. 그 품에서 나는 자랐습니다.


나는 숲이 우거지고 습기가 많은 곳을 좋아합니다. 즉 응달진 곳에서 잘 자라는 음지식물이지요. 그러나 본래 나는 자리를 가리지 않습니다. 원시림의 깊은 산이어도 좋고 아이들이 뛰놀다 가는 야산의 황토 흙이어도 관계치 않습니다. 맑은 바람과 시원한 비, 드넓은 창공과 함께라면 자갈밭도 괜찮고 낭떠러지 바위틈도 개의하지 않아요. 가파른 비탈길, 나지막한 언덕 박토라도 어디든 가리지 않는 일면 질긴 생명력을 지녔답니다. 그것은 끈끈한 생에의 집착이 아니라 주어진 삶에 불만 적게 살고자 하는 내 순수한 본정이랍니다. 나는 허구나 가식을 싫어하는 편입니다. 본래 생긴 그대로 살다가 스러짐이 곧 하늘의 뜻에 거슬리지 않음이라 생각하니까요. 하여튼 神의 축복이었는지 나는 참으로 좋은 곳에 터전을 잡았습니다.


내가 살던 곳은 숲이 무척 울창한 골짜기였습니다. 푸른 숲에선 눈 맑은 노루가 뛰놀기도 하고 산토끼가 한가로이 풀을 뜯곤 했지요. 계곡의 옥류(玉流)는 바위켠에 부딪치며 은가루 되어 빛났고 달이 밝은 밤이면 물소리는 선녀라도 부르듯 청량히 울렸습니다. 방향도 알 수 없는 곳에서 뻐꾸기 노래하고 찌르레기며 휘파람새의 합창이 조화롭게 여울졌습니다. 또 이름조차 욀 수없이 많은 꽃들이 조촐하고 은은하게 피어나곤 했습니다. 내 주변의 노란 양지꽃 하얀 싸리꽃 보랏빛 도라지꽃들을 나는 좋아했답니다. 산꽃들은 화려하기보다 소박한 것이 특징이지요. 야생화들은 바위와 소나무 그리고 억새풀이랑 묘하게 어우러지며, 있는 그 자리에서 운치를 더해줍니다. 혼자 특출남보다 여럿이 함께 어우러지길 원하는 수줍음이랄까요, 겸손함이랄까요. 나는 그것이 참 좋았습니다.


나는 잎과 땅속줄기, 뿌리로 구성되어 있어 봄이 오면 땅속 깊이 잠자던 겨울눈이 자라 싹을 틔웁니다. 봄볕이 소곤대듯 따스히 어루만져 주던 날. 나는 쌓인 낙엽이 부식토 된 거름진 지각을 비집고 머리를 내밀어 긴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노란 솜털을 단채 동그랗게 꼬부라진 내 어린 모습은 지나가던 예쁘장한 멧새도 귀엽다며 돌아보곤 했습니다. 그러다 손가락 펴듯 서서히 고개를 들면 마치 세모시처럼 시원스레 너울거리는 멋진 잎새. 내 자리 옆 습습한 바위 그늘엔 융단을 깐 양 파랗게 이끼가 돋고 버섯도 삐죽이 솟았습니다.


칡넝쿨에 휘감긴 산골짝은 청룡이 기어오르듯 굼실거렸으며 나무마다 음영 다른 녹음이 짙푸르다 못해 검은빛 되면서 여름이 깊어간답니다. 나는 뙤약볕보다 은근한 그늘이 좋고 비라도 내리는 날은 참 신이 났습니다. 아무리 거친 폭풍우가 몰아쳐도 나뭇가지들의 몸부림과 신음소리만 들릴 뿐 나는 자욱한 비안개 속에서 큰 북 치듯 후드득 떨어지는 빗줄기와 놀았지요. 날이 개고도 얼마는 나뭇잎에 구슬같이 매달린 물방울에서 영롱한 빛무리를 받아 마시며 갈증 모른 채 살았지요. 끝없이 청록 물감을 풀어 올리는 무성한 여름을 보내고 나면 가을이 됩니다. 해가 짧아짐에 따라 충분한 광합성을 못하고 흡수력도 약해져 낙엽을 준비해야 합니다. 생이 있은즉 멸하여 본디 자리로 되돌아가기. 순환하는 자연의 법칙에 따르고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한 방편이지요. 이맘때 우린 얼마나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던가요. 붉은색 노란색 갈색 저마다 호사를 하고 조락의 종말을 아픔으로 느끼지 않으며 고요한 끝맺음으로 바꿀 줄 알았습니다.


나도 차츰 물빨아 올리기를 그치고 노란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개암이며 도토리가 정수리를 때리고 떨어져도 손뼉을 치면서 반가이 맞이한 것이 벌써 몇 해째 일입니다. 고목 등걸들이 꺼칠해진 다람쥐 위해 집 마련 의논도 이마 맞대고 하는 때가 이 무렵입니다. 화려한 축제에서 서서히 참잠의 겨울을 영접하고 또 새봄을 기다리며 우리는 모두 우주의 섭리에 순응했습니다. 언제나 흡족한 마음으로요. 허구한 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지루하긴커녕 숲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냥 행복했던 때였습니다. 마치 풋잠에서 깬 듯 잠시만에 아쉽게 스쳐가는 사계절이었으니까요. 하여튼 그때는 나날이 좋은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수석 수집이 취미인 그분이 이 산기슭을 헤매던 그날은 유월인데도 바람 한점 없이 무척 찌는 날씨였습니다. 큰 나무들마저 모두 후줄근하게 더위에 지쳐있었고 저만치 무성한 산딸기만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찌찍거리던 풀벌레도 잠잠하고 썩은 고사목 밑동에 개미만 바삐 오르내릴 뿐 풀잎조차 미동하지 않았어요. 숲에는 오직 계곡의 물소리만 들렸습니다. 그분이 무거운 륙색을 내려놓고 차가운 계류에 얼굴을 씻은 다음 수건을 목에 걸친 채 쉬던 바위 곁이 바로 나의 보금자리였습니다. 평소에는 인적조차 드문 산. 길이래야 약초 캐는 몇몇 발자국이 짚고 간 숲길이지요. 가끔씩 정상에 있다는 암자 찾는 스님의 먹물 옷자락이나 스쳤습니다.


근래 들어 원색의 등산복이 무리져 오지만 그네들의 방문은 달가울 수 없답니다. 달에 성조기를 꽂고 미답의 산봉우리에 오름으로 자연을 정복했다고 오만을 부리는 그들의 치기가 가소롭기조차 합니다. 우주라는 넓은 안목에서 볼 때 한 점 티끌 정도의 의미밖에 안 되는 존재, 무엇이 그리 대단합니까. 거기에다 그네들이 지나고 난 자리는 대부분 상처 입고 훼손되기 마련입니다. 슬쩍 버리고 간 유리병이며 비닐이며 플라스틱 쓰레기는 또 어떻고요. 그래서 우리는 입을 모아 자연은 보호받기 이전 그냥 그대로 모른 척 놓아주기를 하늘에 탄원하고 싶을 지경입니다.



​땀 들이던 그분이 나를 보고는 순간 무슨 대단한 발견이나 한 듯 흡족한 미소를 띠는 것이었습니다. 아른아른한 잎이 무성하기도 하거니와 아주 시원해 보인다며 혼잣소리를 하더니 손삽으로 나를 포기 채 파내서는 비닐봉지에 조심스레 담았습니다. 질식할 듯한 밀폐 공간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첫 경험이었습니다. 비닐. 그것은 나를 채운 족쇄였습니다. 요즘 산세 좋은 명산일수록 깔리는 게 쓰레기라는 말을 듣긴 했습니다. 그중에도 비닐이라는 합성수지는 썩어 없어지거나 변질되지 않은 채 토양을 죽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하더군요. 플라스틱 역시

분해되는데 오백 년이나 걸린다니 기가 찹니다.


흙이 언제는 살아있었나 하겠지만 흙은 물질이면서 끊임없이 호흡을 하는 존재랍니다. 어느 시에, 한 숟가락 흙 속에
미생물이 1억 5천만 마리나 산다고 했던 대로요. 또한 자애로운 만물의 어머니로 모든 것이 여기에 근원을 두고 생명을 부여받아 유지하다가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는 것. 세상 만물 유정 무정 모두가 그렇습니다. 그처럼 흙은 고향과 동의어로 통합니다.


뿐만 아니라 개발이란 미명 아래 무분별이 까뭉개지는 자연은 이제 중환자 정도가 아니라 빈사상태에 있다는 걸 알만한 이는 다들 잘 알고 있지요. 과학문명, 물질주의, 산업사회의 틈서리에서 피곤해진 사람들. 그들의 심신이 진실로 쉬고 싶을 때 마치 고향에 안기듯 너그러운 마음으로 품어줄 수 있는 곳이 어딘가요. 언제 어느 때나 스스럼없이 우릴 받아들이지만 혼자의 독점물일 수 없는, 모두가 함께 나누어 은혜를 누리는 곳이 바로 자연 그 자체입니다.


그렇게 나는 졸지에 항거의 말 한마디, 거부의 몸짓 한번 못한 채 그대로 실향민이 돼버린 것입니다. 미처 예견해보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이름 있는 희귀 식물이 멸종 위기에 처할 만큼 수난당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별스럽지 않은 나까지 징발될 줄이야. 아무튼 나는 이별의 눈물조차 흘릴 사이 없이 륙색 안의 어둠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엔 차갑고 딱딱한 돌들뿐이었습니다. 아담하니 기묘한 모양새를 한 그네들은 처음엔 산에서 살았다 합니다. 어느 해 모진 장맛비에 떠밀려 강기슭에 닿아 오랜 세월의 물결로 깎이고 다듬어졌다는 그들. 내가 살던 산 넘어 계곡에서 늘상 맑은 물로 멱 감으며 세상모르고 평화로이 지냈다는 그네들과 동행이 되어 차를 탔습니다. 선택된다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숙명의 그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우린 지쳤고 또 두려움과 함께 자꾸 고향에서 멀어진다는 사실만으로 불안했습니다. 숲에 있으면서 가끔씩 도회의 문명을 동경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때로는 주어진 둘레 밖의 것에 호기심과 기대를 갖게 마련이니까요. 그러나 제각기 자신에게 알맞은 장소가 있다는 것, 더구나 생물은 환경조건이 맞지 않으면 살 수 없음을 알게 된 건 며칠 후였습니다.


도시는 굉장했습니다. 아주 어마어마했으며 시끌벅적한 곳이었습니다. 나의 좁은 상상의 범주를 훨씬 초월하는 엄청난 물량이 압도하듯 다가서는 낯선 이역이었습니다. 나는 그대로 우물 안 개구리의 표본이 되고 말았습니다. 인파가 복작거리는 도시는 거대한 괴물 같았습니다. 하늘 높이 솟은 고층빌딩의 숲엔 한치의 여백이나 자유로이 숨 쉴 공간마저 없었습니다. 기계 톱니바퀴처럼 꽉 조여 돌아가는 도시는 조금치의 방심도 허락 않을 듯 너무도 비정한 긴박감을 자아냈습니다. 그것은 첨예한 긴장감이었습니다. 숨 막히는 압박감이었습니다.


산업화로 발전된 사회는 박제된 듯 생명 없이 건조한 조형물만 즐비할 뿐 그 풍요로움 속에서 삭막함과 목마름을 느꼈습니다. 채워질 수 없는 갈망만을 먼지처럼 날리며 공해에 시달려 동맥경화증을 앓고 있는 비만 도시. 모두가 쫓기듯 바쁜 걸음으로 표정 없이 지나가고 차들은 꺼먼 연기를 쉼 없이 토해내며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시멘트 냄새와 섞인 기름내가 탁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모두가 기를 쓰고 모여든다는, 그래서 포화상태라고 만원으로 터질듯하다고 비명을 내지르는 이곳에 나까지 끼어들게 되어 왠지 송구하고 미안스러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잘 포장된 고가도로, 높다라니 치솟은 빌딩, 빽빽한 아파트, 한 집 건너 향락과 관능의 빨간 불빛이 유혹하고 그 옆에선 참회와 기도를 위한 십자가가 빛났습니다. 따스한 인정이 예리한 각과 선에 찔려 피를 흘리는 냉혹의 도회 첫인상에서 내가 느낀 것은 연민과 허무였습니다. 그러나 전부가 부정적일 수만은 없는 야릇한 매력을 가지고도 있었습니다. 야누스의 두 얼굴이 바로 도시의 생태라던가요. 외면의 화려함은 생동감 넘치고 희망찬 것이지만 나같이 소심하고 여린 감성을 지니고는 부딪쳐 나가기에 심한 저항감부터 갖게 됨도 당연한 일인지 모르지요. 내심 실망스러운 것만은 사실이었습니다. 발전된 사회란 양(量)의 문제가 아니라 질(質) 이 문제라는 말이 있듯이…….


그분의 집은 대문부터가 거창하고 육중했습니다. 신호가 오가고 삐꺽 열리는 문안엔 축소된 자연같이, 문외한의 안목이라도 대뜸 느낄 수 있을 만큼 잘 다듬어진 정원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한참을 버림받은 고아처럼 밀쳐져 있던 나는 드디어 타원형의 널찍한 화분에 심어졌습니다. 그러고는 황송하게도 창가의 고급스러운 등 장식대 위에 올려졌습니다. 돌들은 어디엔가 다녀오더니 간택받기 위해 몸단장한 규수처럼 윤기롭고 곱게 갈아져 멋진 받침대 위에 사뿐 올라앉아 있었습니다. 처음엔 못 알아볼 정도의 낯선 모습으로 변한 친구들에 나도 놀랬습니다. 그네들 역시 매끄러운 살결이 어색하고 제 몸 같지 않다며 자꾸 면구스러워했습니다. 그렇게 허공만 쳐다보는 그들 눈동자엔 마치 단발령에 상투 깎인 한말의 선비 같은 슬픔이 서렸더군요. 난 그래도 고향 흙에 뿌리 뻗고 형제들이랑 함께 있게 돼 다행이라 여겨졌습니다.


하루가 지났습니다. 또 몇 날이 지났습니다. 어리벙벙하던 나는 차츰 내 자리에 익숙해지며 주변을 눈여겨볼 만큼의 여유도 생겼습니다. 그 댁에는 가족이 다섯이었습니다. 후덕스레 생기신 할머니가 계시고 보라와 분홍이 어우러진 홈웨어를 잘잘 끄는 엷은 눈매가 이지적인 엄마. 그녀가 진아 아빠라 부르는 나를 데려온 분은 무슨 사업인가를 한답니다. 그리고 굵은 테 안경을 낀 고등학생 진수는 늘 핼쑥한 얼굴이며 중학교에 다니는 진아는 예술적 감각을 타고난 소녀로 이젤 세우고 그림 그릴 때의 뒷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집안은 늘 고요했습니다. 차소리는커녕 말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야말로 바다밑처럼 조용한 집이었습니다. 때로 진아가 피아노라도 치는 날이면 정체된 분위기에 조금 초록빛이 스며드는 느낌이었습니다. 할머니만 빼면 모두 바쁜 듯 대부분의 낮 시간은 집이 텅 빕니다. 한낮의 무료를 개켜 얹고 할머닌 보료 위에 정좌하신 채 천수경을 외우며 염주를 돌리고 계셨습니다. 수없이 되풀이 들어온 아제 아제 바라 아제 바라승 아제…….


해거름에나 들어오기 시작하는 식구들은 모두가 자신의 일에만 몰두한 채 가족의 유대는 경제적 개념으로만 겨우 끈이 이어진 듯 보였습니다. 마치 토란 잎에 물 돌듯 제각기라서 왠지 차디찬 유리벽 속에서 자기 위주로 사는 외골수 달팽이 같았습니다. 내가 앉아있는 거실에 어쩌다 식구들이 모여서 얘기할 적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 집에 있는 시간에도 각기 자기 방에서 나오지 조차 않았습니다. 나는 차츰 이 집 분위기에 익숙해져 갔어요. 그럴수록 마음 한구석은 텅 비어가며 황량한 모래바람이 일곤 했습니다.


내 옆엔 외국 이름이 붙은 여러 관엽식물들이 있지만 난 그네들과 쉽사리 친해질 수 없었습니다. 결코 배타적인 성격이 아닌데 이상한 일입니다. 작은 화분 속에 연륜의 무게를 응축시킨 분재는 체통에 격을 맞추려는 듯 난해한 이름으로 위압하려 들었습니다. 나는 그네들을 볼 때마다 17세기 유럽을 풍미했던 바로크 예술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내 옆의 난은 너무 고고하게 사리고 있어 심심산골 흙 내음 풍기는 나와는 대화가 안 된다는 듯 새촘한 태돕니다. 군자의 인품처럼 고상한 모양새지만 성미는 퍽 까다롭게 보입니다.


그래서 나는 질서정연하게 진열되어 있는 수석들과 얘기를 나눕니다. 그네들과는 좀 마음이 통합니다. 고향이 같기 때문인가 봅니다. 그네들은 무생물이지만 그건 살아있는 것과 살아 움직이지 않는 것과의 차이 외 별다른 건 아니니까요. 이곳에서는 나나 그나 역시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물체일 뿐입니다. 얘기에 취해있는 동안 나는 외로움과 갈등을 잊고 그네는 거북살스러운 가면의 분장을 홀가분히 지울 수 있어 정말 좋았답니다. 우리는 언제나 떠나온 고향을 이야기했습니다. 한없이 푸르른 하늘이며 위용 다투던 암벽, 떠도는 구름과 자욱한 새벽안개, 석간수가 고인 옹달샘, 계곡의 폭포며 비밀스러운 산삼이야기. 꿩의 빛나는 깃털이랑 창공에 원 그리고 나는 매, 자귀나무, 박달나무, 용담꽃, 구절초꽃. 싱그러운 오이풀 내음이랑 용굴의 전설 등등.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나도 모르게 까르르 신이 나지만 주변 눈치도 봐야 하기 때문에 그도 좀 피곤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것 묵살할 만큼 굵은 신경줄이 내겐 없으니까요. 언젠가 한번 군자란에게 몸에 밴 교양이 없다고 점잖게 핀잔먹은 기억이 있어 자꾸 주눅이 든답니다. 하지만 교양이란 얼마나 한 위선인지요. 자선사업가의 살찐 목덜미처럼 말입니다. 결국 화제마저 바닥나 버리자 우린 입 다물고 어쩔 수 없이 무기력한 권태의 늪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날씨는 점점 무더워지고 에어컨만이 기승을 부립니다. 난 그 바람이 도무지 체질에 맞지 않았습니다. 온 전신이 흐늘흐늘해지는 더위가 한낮을 볶아쳐도 밤이 되면 산들바람과 이슬에 다시 생기를 되찾아 아침 녘 싱싱한 줄기 되어 곧게 하늘 향하던 그때가 자꾸 그리워집니다.


꽉 닫힌 실내는 건조하고 답답합니다. 공기 순환조차 안돼 나는 잠시 문 열릴 때마다 숨구멍을 있는 대로 열고 한 모금의 바람조차 탐냈습니다. 가끔 분무기로 뿌려주는 실안개 같은 물줄기는 감질만 나고 스멀스멀 근지러운 느낌조차 들었습니다. 물에선 이상한 약 냄새가 나는 것이 처음이나 이제나 역겹기는 매 마찬가지입니다. 길들여진다는 것. 그 편리함이 내게는 왜 찾아주지 않는지 도통 적응이 되질 않았습니다. 거기에다 나는 이 자리가 아무래도 나완 어울리지 않는 불편함과 부조화뿐이라는 걸 체감할 적이 숱했습니다. 오가며 내 잎을 툭툭 치거나 한쪽을 떼어가지고 빙빙 돌리다 내던져버리는 진수. 잘려나간 상처의 아픔은 잠시이지만 메꿀 수 없는 한을 혼자 삭혀야 하는 인고의 세월이 더 아픈 것이었습니다. 소철이라는 등치 큰 나무의 뻣뻣한 잎은 건드리기만 해도 깜짝 놀라 토끼 눈이 되는 식구들도 이 일엔 전혀 개념치 않는 듯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하긴 내가 사랑을 못 받고 대우 못 받는대서 투정 부리는 것 같지만 사실 가끔 시퉁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진아 엄마가 난 잎을 닦아줄 때 보면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정성스레 깨끗한 물수건으로 문질러줍니다. 그러면서 내겐 일별의 눈길조차 보내지 않습니다. 섭섭하다는 게 아닙니다. 때론 천덕꾸러기 같기도 하고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라는 느낌이 들어 괜스레 서글퍼집니다. 잡초 심어놓고 좋아한다며 진아 아빠에게 퇴박을 줄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공연히 내가 죄인 같습니다.


진아는 여학생답게 예쁘고 앙증맞은 아프리칸 바이올렛이라는 꽃무리를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가끔 오똑한 코를 갖다 대며 향기를 맡기도 하는데 무슨 내음인지는 몰라도 오월 숲의 찔레향만큼이야 할라고요. 다만 가끔 진아 할머니가 애틋한 손길로 나를 쓰다듬어주시곤 합니다. 그때마다 할머니 얼굴에 스치는 우수랄까 물빛 슬픔 같은 그림자가 어림을 봅니다.


항라 적삼 입고 은비녀 꽂았던 새댁적 모습을 생각하시는지, 어릴 때 산나물 뜯던 뒷동산을 회상하시는지 알 수 없는 속내입니다. 백중날 시골 다녀오신다는 할머니. 그곳이 어딘지는 몰라도 아마 고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긴 요즘 살만한 도시 사람들은 흙에의 향수 때문인지 재산증식의 방편인지 시골에 농장도 일구고 별장도 사둔다고 하더라고요.


진아 아빠야 워낙 수석에 몰두한 분이니 내 모습에서도 양치류 화석 박힌 돌을 떠올리지 않나 모르겠어요. 주워들은 지식에 의하면 수석은 돌의 모양과 함께 질을 보고 수집한다더군요. 탐석길에 올라 강변 누비며 채집해 모아들인 돌도 있지만요. 수석 장식장에 진열된 돌 중에는 억대를 호가하는 귀물도 있다네요. 중독되듯 그렇게 산수경석이나 문양석 등 명품 관상석에 빠져든 분이거든요.


나는 나 자신을 잘 압니다. 무엇 하나 뛰어난 것도 없고 특별한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자학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에 자족할 줄 아는 처세술을 진작에 익혀두었다고나 할까요. 내가 이곳에 오게 된 건 전혀 내 뜻이나 내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지만 이미 옮겨진 상태에서 적응하며 살려 애씁니다. 되도록 생명 있는 동안 나와 남에 얽매이지 말고 초연하고자 노력도 합니다.


밖의 정원을 내다보면 산에서 늘 대하던 그 녹빛 무성한 푸르름이 점차 짙어집니다. 등나무가 이무기처럼 굵은 몸통을 꼬아 틀고 얹힌 베란다 아래 하얀 벤치가 있는데 녹음 그늘이 참 시원할 것 같습니다. 정원 중앙엔 분수가 힘차게 솟구치며 무지개를 수시로 보여줍니다. 시원히 빗줄기 쏟아져내리는 한여름, 산허리에 걸려있던 무지개를 보려고 발돋움하며 목 빼고 바라보던 생각이 납니다. 더구나 쌍무지개라도 뜨는 날이면 숲은 온통 환호소리로 들떠 있었지요. 산을 울리며 우람하게 쏟아져 내리던 폭포처럼 흉내를 낸 물줄기가 날마다 큰 바위 아래로 곤두박질을 칩니다. 연못에 산다는 비단잉어는 산비둘기만 하다고 얼핏 들었습니다. 수련도 함초롬히 피어 있다는 그곳에 가보고 싶지만 나는 물론 꼼짝할 수가 없습니다. 살아있긴 하지만 움직일 수 없음으로 생물 중의 식물로 구분되는 나이니까요.


나 자신 아닌 그 무엇에 삶의 의욕의 바탕을 둘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의 존재에 물음표를 달기 시작한 건 고향을 잃고나서부터였습니다. 이대로 질식할듯한 일상에서 조금치도 탈피 못하는 건 내 생에 대한 모욕이며 무책임이라 여겨졌습니다. 나날이 여위어가는 느낌뿐이었습니다. 형벌이 따로 있나요. 사실 천국과 지옥도 느끼기 나름이라지만 내게 있어 문명의 이기(利器) 조차 고통이었답니다. 온종일 귀가 멍멍하도록 들어야 하는 에어컨 소리, 밤이면 수정같이 반짝이며 빛 뿌리는 현란한 샹들리에가 눈부셔 곤욕을 치렀습니다.


밀폐된 공간에 생명이 압류된 채 무의미하게 시간만 흐릅니다. 차라리 너른 촌가 소탈한 화단 한 귀퉁이라면 모릅니다. 봉선화, 분꽃이랑 격의 없이 소곤대며 바람결에 쓸려도 보고 빗줄기에 젖어볼 수도 있으니까요. 하긴 나보다 더 가엷은 친구가 새장 속에 있습니다. 하얀 몸통을 공연히 치솟았다가 바로 머리 위 천정에 부딪혀 예쁜 깃털만 날리거나 하릴없이 둥지 속에 틀어박혀 잠만 잡니다. 어쩌다 노래를 부르기도 하지만 해소하 듯한 목소리는 덫에 걸린 짐승의 몸부림보다 더욱 처절히 느껴집니다.


나는 본래 소극적이고 정적인 성품을 바탕으로 하지만 새는 하늘을 날 때가 그의 참모습 아닌가요. 바람을 가르고 두 깃을 퍼덕일 때 진실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음인데. 그에게 무한한 공간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생명의 반납을 의미하는 것. 그네는 얼마나 푸른 창공을 날고 싶겠습니까. 훨훨 하늘 높이 자유롭게 비상하며 맘껏 목청 돋워 노래도 하고 싶겠지요. 자유는 잃어본 자만이 그 진가(眞價)를 안다던가요.


수족관의 뽀얀 형광등 불빛 밑에서 열대어는 체념한 건지 아예 넓은 세상을 모르는지 유유자적 꼬리만 살랑거립니다. 그때마다 하늘하늘 수초가 춤을 춥니다. 뽀그르르 물방울이 오릅니다. 갑자기 그들 모두 가엷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보다 더 안타깝다는 심사마저 일 정도이지요. 동병상련이라서 일까요. 생명의 원천을 수탈하고 그것을 즐기는 인간의 사악함. 악취미를 고상하다고 착각하면서 말입니다.


하긴 사람들은 자유로워지고 자 하는 존재이면서도 결혼을 하여 속박되길 자원하고 소중한 자녀에겐 보이지 않는 고삐를 맵니다. 생활에다 굴레를 덧씌워 내 것으로 거기에 집착하며, 벗어나고자 할 때는 그 사실이 더욱 조여들어 숨 가빠 하면서. 또한 스스로도 이웃과 단절된 생활을 원하는 모양입니다. 독방 감옥과 다를 바 없는 오직 자기만의 성(城). 다만 그 울타리를 자신이 그었나, 타인에 의해 쳐졌나의 차이겠지요. 웅장하고 으리으리한 집일수록 담장부터 중무장하고 그도 모자라 이중문에 창마다 쇠창살 끼워 스스로 갇혀있으니까요. 그래야 안심할 수 있다니 도대체 무슨 큰 죄지은 죄수인지 알 수 없습니다.


게다가 하늘도 잘 쳐다볼 줄 모릅니다. 별이며 구름 따윈 잊은 지 오랩니다. 이렇듯 하늘 우러르기를 겁내고 있다 함은 참으로 두려운 일 아닌가요. 타인과의 진실한 교류도 없고 나눔이나 베풂에도 인색한 채로 타산적이고 이기적이기만 한 현대인. 외부와 차단된 자기만의 공간에서 그렇게 가슴까지 꼭꼭 처닫고 사는 세상이다 보니 갈브레이드란 분은 이십 세기는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정의했던가 봅니다. 믿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온기 대신 모든 상황이 혼미를 거듭하게끔 어긋져 있으므로. 누구나 피부로 느끼지만 한마디 단어로 정리하지 못했던 얘길 해서 일약 유명해진 것이겠지요.


사립문 활짝 열어두고 살면서 누가 와도 반가이 맞던 옛날 인심은 전설이 돼버렸다 합니다. 이 냉혈의 도시에서는. 그래서일까요. 누군가가 내게 진취적인 미래지향형이 아니고 퇴행적인 과거집착형에다가 부정적 사고를 한다고 비웃어도 나는 지난날에 대한 향수를 어쩌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화분 속에 갇힌 채 숨 막힐듯한 공간에 유폐되 있다 보니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 지심(地心)으로 뿌리내리고 하늘 향해 뻗던 잎. 지금은 자유로운 호흡마저 차단된 채 유리창을 통해 빛을 받아들여야 하니 꼭히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습니다. 난 더 이상 피에로이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볍씨일지라도 싹틀 수 있는 요소가 갖춰져야 하는 것처럼 자신에게 알맞은 환경조건은 있게 마련입니다. ‘알맞음’이 욕심이라면 최소한의 여건은 바라도 될 법합니다.


이곳에서의 생활. 나 자신을 긍정적으로 합리화시켜도 보고 자위도 해보지만 도대체 적응이 안 됨은 어쩔 수 없는 일이랍니다. 사막에 살다 북극에 온 것도 아닌데 사치스러운 투정이라 나무라면 난 대답할 것입니다. 서울 아들네 아파트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어느 시골 노인의 경우, 단지 고독과 소외감 때문만은 아니지 않느냐고요. 더구나 그런 분의 경우, 나 자신보다 먼저 사회적 책임과 인륜의 의무를 중히 여기는데 왜 그런 극단의 선택으로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을까요. 바닷가재는 언제나 바닷가재일 뿐 민물에서는 살지 못합니다. 달팽이는 그늘 한점 없이 햇볕 짱짱하게 달궈진 땅에선 견뎌내질 못합니다.


내가 깊은 산중에서 시련이나 자극 없이 안일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극복심과 자제력이 부족해 그렇다고 매도하면 할 말 없습니다. 내게는 이제 그럴만한 여력도, 생존의미조차도 희미하게 빛바래졌습니다. 생에 탄력과 윤택감을 주게 되는 의욕의 불씨가 점차 사그라들었습니다.


나는 드디어 몹시 지쳐버렸습니다. 실금실금 몸살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생기가 없어지고 얼굴은 자꾸 노래지며 생기는 말라 들었습니다. 산다는 것에 이처럼 회의해 보다니 자신이 생각해도 어처구니없을 정도였습니다.


한때 나는 믿었습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아름다운 꽃 피고 녹음 우거진 나무도 겨울이면 앙상한 빈 가지뿐. 그렇게 형체가 없어지지만 봄이 되면 그 공(空)에서 다시 새싹이 돋으니 어찌 없는 것이 있음 아니겠으며 있음 또한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요. 그런 생각을 떠올리면서도 낱낱의 신경은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했습니다.


밤마다 꿈을 꾸었습니다. 가야산 기슭 내 고향이었습니다. 산이 무너져 내리고 나는 늘 압사당했습니다. 숨이 막혔습니다. 답답하던 마음의 응어리가 용암 되어 화산처럼 폭발할 것만 같았습니다. 나 자신까지도 산산조각 나버리고 말 것 같았습니다. 차라리 가만히 눈을 감고자 바라봅니다. 생과 사는 끝없이 반복되는 것. 죽음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 난 새로이 태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무의 눈에도 띄지 않는 벼랑 위 바위틈에 깊이 숨어 살게 되길 기도해 봅니다. 그땐 구름과 바람에 묻혀서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아 아, 귓전에 들려오는 그 물소리 새소리…….


아물거리던 내 몸이 둥실 허공에 뜬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정원 한켠 잔디 위에 놓여있었습니다. 진아 할머니가 내 마음을 헤아린 듯 파리해진 날 보고 쯧쯧 가엾다시며 밖으로 내놓으셨던 것입니다. 우선 상쾌한 바람이 내 숨길을 틔워주는 듯했습니다. 무엇보다 맘껏 하늘을 볼 수 있고 구름을 만날 수 있고 별들과 직접 대면할 수 있음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오늘 밤은 맑은 날씨지만 달무리가 낀 걸 보니 어쩌면 내일 낮엔 비가 올듯합니다. 오랜 세월의 경험과 직감에 의해 날씨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바람의 방향, 구름의 흐름만으로도, 또는 새들이 나는 것, 개미의 이동 등을 보고 날씨를 점치곤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아침엔 태양을 맞아 그 찬란한 빛의 은혜 속에 생(生)의 신비를 일깨우고 저녁엔 시원한 빗줄기에 젖으며 명(命)의 소중함을 다시 알리라. 상상만으로도 새 힘이 샘솟습니다. 아아... 나는 환생을 한 것일까요. <1984-생활수기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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